어느 때보다 약한 일본의 영향력, 어느 때보다 강한 일본의 목소리
어느 때보다 약한 일본의 영향력, 어느 때보다 강한 일본의 목소리
  • 양도웅
  • 승인 2018.04.0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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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竹島는 일본 땅’ 일본 고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안 확정 고시

“竹島(한국명 독도)와 북방영토가 우리의 고유 영토라는 것 등 우리나라 영역을 둘러싼 문제도 거론하도록 할 것. 그때, 센카쿠제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고유 영토이며, 영토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다룰 것.” 지난달 30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고등학생들에게 이와 같이 가르칠 것을 강제하는 학습지도요령을 확정 고시했다. 이로써 일본 초·중등 교육현장에서 ‘죽도는 일본 땅,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는 땅’이라고 배우게 됐다. 일본이 주장하는 ‘고유 영토’란 역사상 단 한 번도 다른 국가에게 빼앗겨본 적 없는 땅이라는 뜻이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유례없는 행동에 대해 우리 정부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교육부는 일본이 확정 고시한 당일, “우리의 영토 주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며, 즉각적인 시정을 촉구한다”고 밝힌 뒤 ‘2018년 독도교육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대해 김율리 교육부 동북아교육대책팀 교육연구관은 “과거에는 학생들이 독도가 우리 땅인 근거를 활자 중심으로 배웠다면, 앞으로는 학생들, 그리고 시민들도 독도가 우리 땅인 근거를 직·간접적인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이미 지난 2월 28일부터 ‘광화문을 찾아온 우리 땅 독도’를 주제로 한 전시가 광화문 세종이야기에서 진행 중에 있다. 

주무부처인 외교부 또한 즉각 “독도는 일제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강점당한 명백한 우리의 영토”이자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 고유의 영토로서, 정부는 이에 대한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고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맞대응했다. 최봉규 외교부 동북아시아국 공보홍보담당관은 “우리나라는 일본과 ‘영토분쟁’ 자체가 없다”라고 보다 명확하게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한국이 엄연히 실효지배하고 있는 독도가, 한국과 일본 양국을 넘어 국제적으로 분쟁 지역인 것처럼 보이도록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확실히 한 셈이다. 

독도의 대한민국 영토 표석(한국령). 사진 출처=동북아역사재단
독도의 대한민국 영토 표석(한국령). 사진 출처=동북아역사재단

이처럼 일본은 주장하고 우리는 촉구하는 모양새는 매년 지리하게 반복되고 있다. 일본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난달 14일 교육부와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한 ‘일본 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안 검토 토론회’(이하 토론회)에서 「일본 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의 변화와 특징」을 발표한 서종진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은 “일본 내부, 가령 일본 학계에서 양심적인 목소리를 내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 제언하는 북방영토(쿠릴열도)와 센카쿠제도(다오위다오)의 당사국인 러시아·중국과의 공조에 대해서는 “각 국가마다 일본과 다른 역사적 관계를 갖고 있다”고 운을 뗀 뒤, “오히려 그와 같은 공조로, 일본의 우익세력들이 바라는 ‘독도는 한국과 일본의 분쟁지역이다’는 프레임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바깥에서 일본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일본이 스스로 변화하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최봉규 담당관과 서종진 박사 모두 “그런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일본 내 양심 세력의 발언이 매우 부족하다”며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일본의 이런 발언을 실질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일본은 이를 이용해 철저하게 내부 결속, 혹은 우익 정권 유지 수단으로 독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서종진 박사가 “일본은 매우 전략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요지부동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선택해온 길은 ‘해결하지 않는 것을 해결하는 것으로 한다’였다. 남기정 서울대 교수(일본연구소)는 “독도 문제에서 이런 외교적 선택이 실패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한 뒤, “우리는 독도 문제가 ICJ(국제사법재판소)에 재소되는 것에 두려움이 있는데, 우리도 오랫동안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료적 근거를 상당 부분 확보했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 자체가 불법이었으며 시마네현 고지라는 것도 국제법적으로 적법하지 않기 때문에 좀 더 당당하게 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남 교수는 “이번 일본의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이 유례없는 강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일본이 강하게 나오면 우리도 그에 맞춰 맞대응 하듯이, 우리가 그 전에 그만큼 강하게 나왔기 때문에 일본도 그만큼 강하게 대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독도 문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주문했다. 

지난 3월 토론회에서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은 일본이 고교 학습지도요령을 이처럼 개정한 배경에 “중국의 대두로 인한 일본의 국제적 영향력의 상대적 저하 등으로 인해 현재 일본 우익 세력이 갖는 불안감과 위기감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등장한 조어 중의 하나가 ‘아베 패싱’ 혹은 ‘일본 패싱’이다. 한반도 화해 분위기 속에서 주요 국가 가운데 일본만 제외되고 있는 형국이다. 학계 일각에서는 일본의 자존감이 어느 때보다 낮아진 상태라고 말한다. 한 국가가 대내외적으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계적으로 저명한 일본 출신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어떤 사상가보다 ‘증여의 힘’을 강조했다. 자존감을 내려놓음으로써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음을 강조한 셈이다. 일본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일본에 있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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