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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학술진흥정책의 변천, 그 현황과 대안
특집 -학술진흥정책의 변천, 그 현황과 대안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5.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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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 기반 구축·제도화 큰 성과…자율성 확대 등 과제

학술진흥재단이 설립된 지 20년이 넘었다. 학진이 현재의 체계로 오기까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결과 불모지에 가까웠던 학술 진흥사업은 점차 그 형태를 갖추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학계와 학진은 서로의 관계를 조율하지 못하고 있다. 원래 정부 지원 사업이 ‘잘해야 본전’인 것인가, 아니면 정부와 연구자들이 공통분모를 찾지 못해서일까. 이 기획은 같은 목표를 향해 나갈 수밖에 없는 학진과 연구자들을 위해 마련됐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다.

 

● 기획을 시작하며 : 연구지원사업의 궤적
학술연구 기반 구축·제도화 큰 성과…자율성 확대 등 과제

학진과 연구자들의 관계는 양가적이다. 서로를 견제하고 있지만, 결국은 같은 목표를 향해 나갈 동반자인 셈. 그러나 근래 이 두 집단의 관계는 그다지 순탄하지 않다.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막대한 금액을 쏟아부은 기초학문육성사업 지원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는 ‘학술진흥정책’이 아니라 ‘실업자 구제정책’일 뿐이라는 비난과 ‘장기적인 학술진흥정책을 구상하라’는 요구가 뜨겁다. 학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과거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을 했는데도, 평가는 나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 이 두 집단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견해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 국내 학술진흥정책의 변천사를 조망해 보는 것은 이 두 집단이 서 있는 위치를 확인하는 시야를 제공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국내 학술진흥정책의 역사는 짧다. 학술진흥재단이 설립된 것은 1981년. 1978년에 당시 문교부가 설치한 ‘학술진흥국’에서 ‘학술진흥법’을 제정했고, 이 법을 모태로 1981년에 설립됐으니까, 20년 역사다.

‘논문평가’·‘공모방식’ 1980년대 초반부터 시행

초창기 학술진흥재단 사업의 규모는 미미했다. 주목할만한 것은 1982년 학진이 학술원의 학술논문평가위원회가 수행해 오던 논문평가 업무를 넘겨받아 논문평가 작업을 시행했다는 사실이다. 1983년에는 교육부로부터 첨단과학기술분야 연구비 지원 사업을 위탁받아 시행했고, 연구비 지원과제 선정에 ‘공모방식’을 채택했다. 설립 초기부터 논문평가와 공모방식이 사업 진행의 중요한 방향이었던 것. 1986년부터는 지원대상분야가 기초과학분야로 확대됐고, 학문 전분야에 걸쳐 자유공모과제 연구비 지원사업이 시작되면서 연구지원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1981년~1985년까지가 학술진흥 사업의 기반을 조성하는 시기였다면, 1986년~1997년은 지원이 점차 확대되고 인프라 형성을 고민한 시기였다. 이 시기의 가장 큰 사업은 ‘자유공모과제’였다. 전체 대학교수들에게 각자의 관심 분야에 관한 자유로운 연구를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연구과제 선정은 과제 신청자의 자유로운 발상에 기초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1986년 첫 시행 이후 1998년까지 이어진 이 사업은 당시의 연구비 지원 사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자유공모과제의 지원과제 수와 지원액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했다.

 1986년에는 신규과제 6백67건을 선정해 38억6백만원을 지원했는데, 1997년에는 1천3백24건을 선정, 1백69억5백만원을 지원함으로써 지원과제수와 연구비 규모가 각각 198%, 444% 증가했다. 과제 당 평균연구비도 1986년 5백70만원에서 1997년 1천2백76만원으로 223% 증가했다. 1989년부터는 신진교수과제를, 1990년에는 지방대학 육성연구비 지원 사업을 신설했다.

연구소 단위의 연구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대학부설연구소 과제를 지원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이 역시 중요한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는데, 바로 학제간 공동연구체제확립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사실이다. 당시에 학술연구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던 대학부설연구소 지원을 통해 학제간 공동연구체제를 확립하고 우수 연구인력을 양성하고자 했던 것. 대학부설연구소 지원이 대폭 증가한 시기는 1996년과 1997년도였다.

 그 전에는 1백개 남짓하던 과제수가 이때는 2백50건이나 됐고, 선정율도 이전의 20%내외에서 40%로 높아졌다. 지원액도 1996년 1백37억, 1997년 1백65억에 이르렀다. 한편 시기에 교육부에서 추진하던 분야별 중점 연구 중 ‘해외지역연구’, ‘인문사회 중점영역연구’, ‘지역개발연구’ 지원 사업을 1997년부터 학진이 시행했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연구비 관리를 위해 중앙관리제도를 권장·시행한 것도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에 들어서면서 학진은 비약적인 전환을 맞이했다. 그 첫번째는 체제 개편에 힘입었다. 1999년에 한국장학회가 학진에 통합됐고, 부설기관인 첨단학술정보센터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으로 이관하게 됐다. 정부 내부 개편에 따른 것이었지만, 그 결과 학진의 학술정보관리기능은 대폭 축소됐고, 장학사업과 학술진흥 사업에 집중하게 됐다. 같은 해 교육부가 두뇌한국21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업 중복을 피하기 위해 지원사업을 개편했다. 사업의 성격에 따라 단독연구 중심과 공동연구 중심으로 나눠 재편성한 것이다.

업적평가와 학술지 평가, 강화되는 규정들

연구업적 평가도 강화됐다. 연구계획서 위주의 심사 대신 연구업적을 중심으로 하는 평가로 바뀐 것이다. 지원신청자격을 인문·사회분야 연구자의 경우 과거 5년간 국내외 전문학술지 5편 이상 게재한 자로 강화하고, 아울러 연구결과물에 대해 해당 전문학술지 게재를 의무화했다. 이같은 변화는 연구인력들에게는 부담을 줬지만, 적어도 평가의 공정성을 획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동시에 진행된 것이 학술지 평가사업이다. 연구비 관리에 대해서는 1990년대 초부터 개선이 이뤄진 반면, 결과논문에 대해서는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학술연구자와 학술단체가 급격히 증가하고 지원도 방대해졌기 때문에 합리적인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했다. 각 대학에서도 교수임용과 연구성과 평가에 대해 공정한 기준을 요구하게 돼, 학술지 평가가 그 기반이 됐던 것이다.

지난 20년간 학진은 그 규모를 점점 키워왔다. 교육부 소속의 한 부서에서 이제는 일년에 1천억원이 넘는 돈을 운용할 만큼 덩치가 커졌고, 학계와 정부를 잇는 가교로서의 책임도 막중해졌다. 첫해 예산이 4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2002년부터 기초학문육성사업을 진행한 이후 학계에 대한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객관적이지만 합리적이지 못한 평가 시스템

그러나 학진의 외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최근 학진의 사업이 ‘학술진흥’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특히 기초학문육성사업에 대해서는 전례없는 파격적인 지원임에도 불구하고 불만의 소리가 높다. “제출한 연구계획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했는지 모르겠다”라는 의견에서부터 “몇몇 대학의 교수진들이 제 사람만 키워내고 있다”는 의혹에 이르기까지 학계 내부의 의혹과 반목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신청 과제를 죄다 선정할 수는 없기에 평가가 불가피하지만, 평가시스템의 공정성 여부가 여전히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학술진흥정책에 대한 의견은 여러 차례 논의됐다. 문화연대, 민교협, 교수노조, 인문사회연구회, 학진 등 다양한 단체가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 왔다. 가장 많이 제기됐던 것은 ‘장기적인 학술정책을 수립하라’라는 것. ‘학술개발3개년계획’과 같은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대통령 산하 지속위원회 설립 요구도 같은 맥락이다. 평가시스템의 객관성 확보 요구도 중요하다. 조동일 서울대 교수(국문학)는 “평가사업을 학술원으로 이관해, 원로교수들이 평가사업에 참여할 것”을 여러 차례 요구했다. 최종평가 패널을 공개하라는 요구도 끊이지 않는다. ‘상피제’를 비롯한 각종 여과장치들이 행정적인 객관성은 담보해 내겠지만, 합리적인 평가는 담보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학계와 학진은 또 한번의 대전환을 고민할 시점이 됐다. 개인들의 자유과제 중심 사업에서, 업적 평가를 강화하고 공동연구중심으로 사업의 방향을 전환한 것은 분명히 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나친 계량화는 학문의 자율성을 억압하고 오히려 부당한 평가를 야기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자율성과 효율성을 고루 키울 수 있는 제도와 합리적인 연구 평가제도로의 변화, 그리고 심사과정의 투명성 확보 등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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