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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교수된 사연
외국인이 교수된 사연
  • 교수신문 기자
  • 승인 2003.05.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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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미국의 대학교수임용

이번호 부터 94년 8월부터 캘리포니아주립대(노스리지)의 연극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아정 교수의 ‘내가 본 미국의 대학교수임용’글을 연재한다. 미국교수임용과정의 합리적인 절차와 체계를 한국에 소개하고, 국내 대학을 벗어나 미국의 대학에 진출할 뜻이 있는 한국의 학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바람이다.

1988년 1월 유학와서 석사과정을 시작한 나는 1992년에 박사과정 코스를 마치고 93년 부터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박사과정 코스를 마치고 논문 자격시험을 통과한 자에게 미국에서는 ABD라는 속어 비슷한 타이틀을 준다. ‘Ph.D’대신 ABD, 즉 ‘All But Dissertation’, 논문만 남기고 다 끝냄이라는 뜻인데 이 ABD상태에서 정규 교수직 지원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ABD의 신분으로 논문을 쓰는 와중에 미국대학에 지원했다. 첫 해는 모두 보기 좋게 탈락이었다. 아직도 영어가 서툰 외국인 학생신분으로 자격이 미달된 점도 이유가 됐겠지만 당시 미국의 실업률이 근래 최악이어서, 학계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자리를 잡는 일이 어려운 시절이었다. 떠도는 소문 또한 흉흉하기만 해서, 2백장의 원서를 제출하고도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람, 거절하는 편지를 몇 백장 받은 어떤 지원자는 그 편지로 벽을 도배했다는 극단적인 일화가 종종 언론에 오르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내가 지원서를 보낼 때는 미국대학의 교수직에 지원해 보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좌우지간 흥부가 강남으로 제비 날려 보낸 그 마음처럼 덧없고 기약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연속 탈락한 1993년이 지나고 1994년에는 지도교수님들의 강력한 추천 덕택이었는지 결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 자리를 잡게 됐다.

미국에서는 교수 임용과정이 원칙적으로 비밀로 부쳐진다. 임용과정 중에 발생한 기록(지원서류, 이력서, 모든 서신 내용과 심지어는 전화 통화한 기록까지)이 모두 파일에 보존되지만, 누가 어느 과정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특히 임용대상을 최종 결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지원자가 알 수 없게 돼 있다.

나 역시 많은 지원자 중에 왜 내가 뽑혔는지 알지 못했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것은 부임하고 나서 친한 동료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단편적으로 들려 준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알고 보니 극심한 경쟁 속에서 내가 발탁이 되도록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은 케네디라는 성을 가진 교무처장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도 나는 9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에게 나를 뽑아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 한 번 하지 않았다. 얼핏 들으면 내가 은혜도 모르고 예절도 없는 사람으로 보일런지 모르지만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의 임용사실은 교무처장과 나 사이에 사사로이 감사를 주고받을 개인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여러가지 학사일정에서 여러 번 만났고, 같은 책상에 앉아 회의를 주관하기도 했지만, 케네디 교무처장은 아직까지 단 한번도 내가 너를 발탁했노라는 생색을 낸다거나 눈치를 준 일이 없었다. 나로서는 평생에 잊지 못할 선물을 받은 셈이지만 교무처장은 자신의 직무대로 할 일을 했을 뿐, 어느 누구에게 개인적인 호의를 베푼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렇게 공과 사를 확실하게 분리하는 합리성이 미국 교수임용과정을 공정하게 지켜 주는 원동력 가운데 하나다.
김아정 /캘리포니아 주립대·연극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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