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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춤추는 별’을 위한 여행안내서
내 안의 ‘춤추는 별’을 위한 여행안내서
  • 김건우 빌레펠트대 박사과정
  • 승인 2018.04.0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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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대학은 지금_ 빌헬름 핑크 출판사의 ‘승객을 위한 철학’ 시리즈 

여기 만화책시리즈가 있다. 1962년 설립된 이후 예술 및 인문사회과학계에서 대체불가능한 위치를 갖고 있는 빌헬름 핑크(Wilhelm Fink) 출판사에서 기획했다. 정확히 말하면, 매 페이지마다 삽화가 포함된 입문서인데, 이는 삽화가 있기 때문에 가벼운 책인 것이 아니라, 충실한 설명을 삽화가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을 뿐 아니라, 엉성한 대목이 없는 내용이 풍부한 삽화책시리즈이기도 하다. 삽화를 담당한 이는 안스가르 로렌츠 Ansgar Lorenz 인데, 그는 모든 책에서 삽화를 맡으면서 책의 설명을 정확히 정리하는 막중한 역할을 섬세한 직관과 정확한 묘사를 통해 달성하고 있다. 더불어, 같은 스타일의 삽화를 통해서 시리즈 전체에 일관성을 부여하고 있다.

가령, 니체를 소개한 책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유명한 문장, “인간은 동물과 위버멘쉬 사이에 묶여 있는 하나의 밧줄, 심연 위에 놓여 있는 하나의 밧줄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위대한 것은 인간은 다리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점, 인간에게 있어서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이행’이고 ‘몰락’이라는 점이다”를 표지로 가져온 식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풍부한 내용과 정확한 삽화 간의 상응은 이 시리즈 전체가 일반 독자와 전문 연구가 사이를 묶는 하나의 밧줄이기도 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승객을 위한 철학’ 

2012년 니체, 아도르노, 푸코를 시작으로 그간 하이데거, 마르크스, 부르디외, 루만을 거쳐 작년에는 벤야민, 칸트, 아렌트를, 그리고 올해는 버틀러와 홉스가 시리즈로 출간 예정이다. 이 시리즈는 직역하면 ‘승객을 위한 철학’(Philosophie f?r Einsteiger)의 이름을 갖고 있다. 이 시리즈에 탑승한 승객은 안전한 이동수단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심연 위에 놓여 있는 밧줄에 위태롭게 스스로 서 있을 것을 요구받는다. 더구나 이 시리즈는 삽화 안의 삽화로서 풍성한 보론들이 있는데 이 보론들을 통해서 승객들은 자신의 목적지에 대한 더 구체적인 지도를 갖게 되고, 그곳에 이르는 다채로운 지성사적인 풍경을 감상하게 된다.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구별 없이 경험하고 있는 근대인은 자신의 시대를 읽어내는 자신의 철학이 필요하다. 이 시리즈의 이름이 ‘승객을 위한 철학’인 이유이고, 승객은 오늘의 시대를 살고 있는 근대인, 보다 일상적으로 표현하면 현대인이다.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진단이 일상이 되어버린 오늘날 그 이유 중 하나는 인문학이 인간의 문화적이고 상징적인 형식들, 또 그것의 토대가 되는 사유의 정수들을 훈련받은 소수가 배타적으로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독점이 탈독점화되고 탈위계화되는 현상과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는 그 독점적인 중심이 주변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중심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되는 사태의 다른 면이기도 하다. 위계와 정점은 그것이 중심에 있다는 그 위치 때문에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의 지속적인 상호침투를 통해서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끊임없이 재설정할 수 있을 때 정당화된다. 더 문명화된 중심과 역동적이고 더 풍성한 주변은 증가연관 속에서 함께 상승하는 것이지 제로섬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 시대는 더 많은 ‘승객을 위한 철학’이 필요하고,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조종사를 위한 철학’ Philosophie f?r F?hrer 역시 ‘승객을 위한 철학’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구별되는 조종사, 지도자와 승객, 관객의 위계적인 분리가 사회적으로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지도자와 지휘자(Leiter) 역시 ‘사다리’ Leiter 가 필요하며, 그것은 승객들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필요한 사다리와 다른 사다리가 아니다.

근대 사회의 근대성

사회학이 분과학문으로 자율성을 획득한 직후 철학을 대체하는 학문으로 사회학을 위치 지웠던 만하임은 “이러한 위험지대 한 가운데 사는 인간은 근대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로서 이러한 전환을 경험한다”고 썼다. 위험지대 한 가운데 사는 근대인, 니체의 표현을 빌려 ‘심연 위에 놓여 있는 하나의 밧줄’ 위에서, 동물과 위버멘쉬 사이에서 불안정하고 위태롭게 있는 근대인은 자신이 딛고 있는 지반이 위험지대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시리즈는 이러한 근대적인 사태를 증언하고, 승객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의 바깥에서 안전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 안에서 그 풍경과 함께 그 안에 있는 자신을 관찰하는 관찰자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승객이 그러한 것처럼,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관찰자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것은 부르디외와 루만이라는 오늘날 사회학의 두 별이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점점 불가능해지는 철학과 사회학의 통일성을 명확한 자기의식을 갖고 가장 높은 자리로 끌어올린 하버마스가 아직 이 시리즈에 없는 것이 의아하다고 할 수 있다. 하버마스가 『근대에 대한 철학적 담론들』에서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 시대에 대한 철학은 근대사회의 근대성에 대한 자기입장이 요청된다. 이런 이유에서 근대사회의 자기의식을 가장 명료하게 철학화한 헤겔이 아직 이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그만큼 헤겔이 이 시대의 자기의식을 이해하는데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헤겔 없이 근대적인 사유의 전모를 모색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루만은 근대사회를 규정하는 ‘근대적인 것’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타당한 형식들의 시대에서 벗어났다”는 노발리스의 한 단장을 언급한다. “일반적으로 타당한 형식들이 사라진 시대”는 총체성의 진리가 보장되는 시대가 아니다. 이 시리즈에 소개된 아도르노에 관한 언급을 인용하면, 그는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거대한 윤리학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magna moralia)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 시대에서 좋은 삶, 올바른 삶은 거짓으로 불가능해졌다고 하면서, 삶의 ‘훼손’ Besch?digungen을 말한다. 상처 입은 삶은 전체의 진리를 상정하고 강제하는 것으로 회복될 수 없다. 헤겔처럼 “참된 것은 전체다”가 불가능해진 오늘, “전체는 거짓이다”라고 말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리즈는 각각의 편이 각자 자신의 진리를 주장하고 있으며, 그렇게 완성될 수 없는, 언제나 미완의 전체를 향한 도정 위에 있는 ‘근대사회의 근대성’이라는 기차에 타고 있는 승객, 우리를 위한 여행 안내서이자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계몽과 ‘춤추는 별’

사실, 이 시리즈가 소개하고 있는 철학자들은 우리에게 낯선 이름은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독자의 독서경험에 따라 다양하고 풍성한 기억들을 소환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물론 그런 경험이 전무해도 무관하다. 우리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위험지대인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경험에 이름을 부여하지 못할 뿐, 각자 자신의 삶에서 나름의, 고유의 진리값들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쾨르가 오늘날 ‘회의의 대가’라고 명명한 맑스, 니체, 프로이트 중 이 시리즈에는 프로이트가 없다.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이 포함되면 이 시리즈가 기획하고 있는 근대의 지성사적인 지도는 더없이 풍성해질 것이다. 하이데거가 “니체의 사유는 플라톤 이래 서구 형이상학의 모든 사유에 상응한다”면서 자신의 형이상학의 위치를 서구 형이상학을 극복할 수 있는 위치에 놓는 것처럼 독자들은 이 시리즈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관찰하면서 자신만의 위치를 확보하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의 푸코 편에서 당연히 다루고 있는 것처럼 비판 그리고 계몽은 칸트적인 의미에서 ‘미성숙으로부터의 탈출’이자 ‘미성숙의 종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책임에도 우리 시대를 설명할 수 없는 책도 부지기수이며, 다른 시대임에도 우리 시대를 이해하게 하고 그 안에 있는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길을 비추어 주는 책도 많다. 오늘날 읽을 수 없는 책은 점점 더 늘어가지만, 과거의 책임에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책,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안 되는 사유들 역시 여전히 너무 많다. 이 시리즈는 오늘날 우리가 과거의 인간보다 더 현명해졌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다시 니체로 돌아오면, 그는 “인간은 하나의 춤추는 별을 탄생시킬 수 있기 위해서 자신 안에 혼돈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시리즈는 우리 안에 하나의 춤추는 별을 탄생시킬 수 있게 하는 책이라기보다 이를 위해서 우리 안에 혼돈의 여지를 마련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시리즈는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타당한 형식들이 사라진 오늘날, 과거와는 다른 시대, 다른 조건에서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길을 스스로 내야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정확한 안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을 비추어 주는 춤추는 별을 준비하는 책, 그렇게 준비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시리즈가 여기 있다.

 

김건우 빌레펠트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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