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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파업이 남긴 것
화물연대 파업이 남긴 것
  • 윤영삼 부경대
  • 승인 2003.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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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화물운송업 화물연대의 파업이 끝났다. 노정교섭이 타결돼 파업이 끝났지만 구체적인 교섭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또 중앙교섭형태의 노사교섭이 시작됐으므로 화물운송업의 불안정이 말끔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화물연대의 구호가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인데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세상을 뒤흔든 이번 파업으로 약간의 국가경제적 피해가 있었지만 필자 개인에게는 큰 피해(?)가 있었다.

나는 노사관계연구자로서 작년 운송하역노조소속의 준조합원조직으로서 화물연대가 결성된 것을 보면서 화물운송업계의 불안정성을 인식하고 지난 3월말 화물연대소속의 화물노동자·지입차주의 노동실태와 생활실태를 조사해 발표한 적이 있다.

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전문가 수준이 못되는 필자는 이번 파업과정에서 언론으로부터 전문가가 부담해야 할 짐을 지도록 톡톡히 강요(?)받았다. 필자는 이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리고 3월부터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연구결과가 없음 등을 알고 우리나라 학계의 척박성, 피상성, 편향성을 절감했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사정이 열악해 설문응답 과정에 과장이 좀 있었겠지만, 화물노동자·지입차주들은 대부분이 적자상태이고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80.9시간이며, 평균 1일 수면시간은 5시간이었다. 중장거리운송자의 경우 주로 밤새워 운송하고 한 달에 15일을 차에서 자면서 피로누적으로 사고위험을 안고 있었으며 3천5백만원의 평균가구부채를 안고 살고 있었다.

이러한 상태는 열악한 것으로 기왕에 익히 알려진, 50%를 넘는 비정규직노동자와 중소영세기업노동자들보다 더 열악한 수준이다. 
이번 파업의 주된 원인은 현상적으로는 이상과 같은 화물노동자·지입차주들의 열악한 상태에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이렇게 만든 화물운송업과 화물노동자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정부정책과 경영정책이 문제다.

이른바 정부의 늑장대응은 촉진요인일 뿐이다. 전근대적인 관행이 있어 왔지만 노동자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공세로 인해 건교부 관계자의 말대로 ‘문제는 심각한데 해결책이 없다’는 수준까지 온 것이다.
지금까지 물류에 대한 이야기와 정책은 많았지만, 화물노동자·지입차주에 대한 치밀한 학술적 논의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대목이 필자가 주목한 점이다. 이런 마당에 동북아경제허브의 한 축으로 물류입국을 주창하다니.

필자는 그동안 물류전공연구자들이 물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왔지만 이번 파업을 겪으면서 이들과 정부 관료들이 정말 물류를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는지 의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물류에 문제가 생겼는데 해결에 도움줄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없다니.
우리 사회에는, 우리 학계에는 투쟁하지 않으면 알아주지도 않고 연구대상으로 여기지도 않는 관행이 팽배해 왔다. 최근 화물연대의 물류 멈춤 투쟁의 노정간 타협결과를 놓고 이 관행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관행은 타파돼야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진정한 혁신이 있어야 한다.

이번 화물연대의 물류 멈춤 투쟁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물류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중요한 만큼 고민도 많아야 하는데 이 중요한 물류산업을 비롯한 모든 것의 발전에 있어서 중심은 인간이다.
물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시설투자 등 하드웨어에만 관심을 갖고 세금과 자본을 투입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물류노동자 등 소프트웨어에도 관심을 갖고 제도화해야 한다. 시설투자하고 인간을 착취해서 발전시킨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제 파업 이후 남아 있는 화물운송업계의 불안정성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은 연구자의 부채로 넘겨졌다. 최근 노동문제연구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것을 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관심과 애정이 줄어드는 것의 한 지표로 본다. 이번 물류 멈춤 투쟁기간은 피해를 감내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근원적 관심과 애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날들이었다.

윤영삼 / 부경대·노사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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