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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교육에 담긴 국가전략
언어교육에 담긴 국가전략
  • 이강재 서울대 중문학과
  • 승인 2018.04.02 09: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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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미국의 몇 대학을 방문하여 미국의 중국어 교육 현장을 살펴보았다. 우리보다 말하기 능력을 더 강조하는 미국의 교육 풍토나 방학 중 이루어지는 집중교육이라는 특수성에 의한 교육 방식 등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강의실에서 구체적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과 이러한 교육 방식이 어떤 역사적 유래 속에서 나왔는지 등은 기대 이상의 소득이 되었다. 그런데 미국의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외국어 교육에서 미국 국방부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초기의 외국어 교육이라는 것이 상업자본의 시장개척이나 선교의 목적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해 왔다는 것은 세계중국어교육사(장시핑 저, 이미경 역, 2016년 역락출판사)를 통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고 또 일반적으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미국은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의 국가안보 교육프로그램(National Security Education Program, NSEP로 약칭함)의 중요한 항목 중에 글로벌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하는 외국어 플래그십 프로그램(The Language Flagship - Creating Global Professionals)”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 프로그램은 2002년 한국어, 아랍어, 러시아어, 중국어의 네 가지 외국어에 대해 시범적인 실시를 한 후, 그 결과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에 의해 2006년 이후에는 이란어, 포르투갈어, 터키어가 추가되어 7개 언어로 확대하여 진행하고 있다. 25개의 플래그십 센터를 선정하여 그 센터에서 주관하여 교육을 진행하도록 지원하며, 여기에 외국어에 대한 국가표준(National Standards for Foreign Language Learning)을 설정하여 교육의 성과에 대한 공통의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2004년부터 시작하여 공자학원(Confucius Institute)이라는 이름의 교육기관을 전 세계 각국의 대학에 설치하고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일종의 소프트파워 전략의 하나로 중국의 문화와 중국어를 세계에 전파할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4백여 개 이상이 설치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이미 20개 이상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또한 중국의 국가전략의 하나일 수 있는 것이다. 공자학원처럼 우리나라도 세종학당을 통해 전 세계에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2015년말 기준으로 전 세계 54개국에 138개의 세종학당이 세워져 있다고 하니 언어교육에 대해 우리나라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러한 언어교육이라는 것이 제국의 논리만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문화 상호주의에서 출발해서 문화교류 활성화의 하나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 국가발전 전략이 빠져서도 안 된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플래그십 프로그램은 자국 내에서 진행하는 것이고 공자학원이나 세종학당은 자국이 아닌 해외에서 진행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언어교육을 국가전략의 하나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함이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외국어 교육에서 미국의 경우처럼 국가전략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더 많다. 언어교육이 그 자체로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인문학 교육이라는 것에 대한 중시와 함께 좀 더 적극적으로 국가발전과의 관련 속에서 큰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데, 이를 각 대학의 상황에 따른 판단에만 맡겨버린다면 단기적인 취업이나 상업자본의 영향에 의한 특정 언어의 쏠림 현상을 피할 길이 없게 된다. 이것이 대학에서만의 문제가 아니고 중등교육 현장까지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전략으로서의 외국어 교육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한 이유이다.

또한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어 교육 역시 일시적인 한류의 영향에 힘입어 외연의 확장만을 생각하기 보다는 한국의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교육에 좀 더 힘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외국에서 한국어를 학습하는 학생들이 드라마나 K-Pop 등을 통해 한국을 가볍게 접하기 쉽지만, 이를 넘어서서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통해 우리의 깊은 사유의 세계까지도 갈 수 있도록 한국어 교육의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단순한 수단으로서의 한국어가 아닌 깊은 사유를 위해 필요한 한국어가 되었을 때 외국에서의 한국어 교육이 완성된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외국에서의 한국어 교육 역시 국가전략 차원으로 좀 더 많은 투자와 연구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외국어 교육이든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어 교육이든 사실상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모두 중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상업적인 영향 속에 그냥 내버려두기 보다는 국가의 장기적인 발전전략 차원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이강재 서울대 중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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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 2018-04-03 00:15:12
좋은 글 읽었습니다. 한국어교육 카페에 출처를 밝히고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