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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부치기’식 정책의 한계…교육부실 초래
‘밀어부치기’식 정책의 한계…교육부실 초래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3.05.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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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모집단위 광역화 정책 뒤걸음질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가 여전히 모집단위를 광역화를 정책방향으로 설정하고 있으나 대학은 더 이상 교육부의 손짓에 따라가지 않고 있다. 교육현장을 무시한 정책에는 정부의 재정지원에서 불이익을 받더라고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과간의 지나친 폐쇄성을 깨고, 학생들의 선택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모집단위 광역화’정책이 실행 5년만에 교육부의 일방적인 집행과 대학의 형식적인 적용이 낳은 사생아로 전락한 것이다.

재정지원도 싫다, 교육이 먼저다

형식적인 적용의 대표적인 사례가 학부제와 모집단위 광역화의 혼돈. 지난 20일 전국 국·공립대학 인문대 학장들은 “학부제를 폐지하고 학과제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전국의 국·공립대학 가운데 학부제를 실시하고 있는 대학은 거의 없다. 대부분 학생을 전공 선택 없이 뽑고, 2학년에 올라갈 때 학과를 배정하고 있을 뿐이지 운영은 학과체제다. 학생모집의 기술적인 방법인 ‘모집단위 광역화’와 교육과정의 구조적 개념인 ‘학부제’조차 혼돈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시행 5년이 지나도록 교육부의 정책이 얼마나 대학과 겉돌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또 교수들은 교육부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대학본부에 대한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다. 대학마다 처지와 여건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전체 대학이 행·재정지원을 바라고 같은 정책을 적용하면서 혼란의 불씨를 키웠다는 것이다. 학부제가 전문대학원과 학사과정 개편이 선행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않고 있는 것도 ‘일단 시행하고 보자’는 정책집행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전공간 유사성도 고려하지 않은 채 모집단위를 묶은 대학들은 뒤늦게 원위치 시키고 있다. 모집단위 광역화를 우수학생 유치방법으로 생각하고 영어영문학, 경영학 등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는 학과를 상대적으로 인기 없는 기초학문과 묶었다가 부작용을 키웠던 것이다.

결국 대학들이 모집단위를 축소하면서 표면으로 내세운 것은 학생들의 부적응과 교육부실 이다. 모집단위 광역화 이후 취업에 유리한 학과로만 학생들이 몰리자 대학들은 궁여지책으로 성적순 배정을 했고, 그 결과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공부하지 못한 학생들이 자퇴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또 대학이 모집단위만 광역화 이후 커리큘럼을 개편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공학점만 낮추면서 졸업하는 학생들이 전공도, 기초지식도 갖추지 못한 채 졸업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한편, 모집단위 광역화 폐지와 관련 교수사회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모집단위 광역화 이후, 명칭만 ‘학부’로 바꾼 채 교육과정 개편도 없이 여전히 학과체제를 유지해 온 것이 부작용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이다.

교육부 정책기조는 그래도 ‘광역화’ 

대학들이 모집단위 광역화에 대한 부작용으로 되돌아서고 있지만 아직도 교육부는 대학개혁에서 유효한 방법이라며 정책기조로 모집단위 광역화를 붙들고 있다. 최근 모집단위 광역화와 관련 교육부 관계자는 “경직적인 운영을 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모집단위 광역화의 기조는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학생선택권에 대해서도 대학은 다른 의견이다. 수요자 논리에 따라 학생중심의 교육을 한다는 것은 무책임하게 선택권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요건을 갖추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손동현 성균관대 교수(철학)는 “모집단위 광역화가 시행초기에 환경부터 조성했으면 지금쯤은 안정적으로 정착됐을 것”이라며, 교육부의 몰아가기식 행정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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