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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IT 강국 대한민국... 그러나 스포츠 산업은 후진국? 
스포츠·IT 강국 대한민국... 그러나 스포츠 산업은 후진국? 
  • 양도웅
  • 승인 2018.03.2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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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총 제7회 과학기술혁신정책포럼 개최

지난달 25일에 폐막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전 세계로부터 두 가지 면에서 찬사를 받았다. 하나는 뛰어난 IT·서비스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동계 스포츠에서도 세계 10위권 이내의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 하지만 스포츠와 과학기술이 융합된 영역, 스포츠 산업에서도 이와 같은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스포츠와 과학기술력은 모두 세계 10위권으로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 산업 분야는 10인 미만의 영세 사업체가 96%를 차지하는 실정이다.” 지난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스포츠 산업과 과학기술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제7회 과총(회장 김명자) 과학기술혁신정책포럼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 또한 동일한 것이었다.  

포럼 시작 전, 김명자(뒷줄 가운데) 과총 회장을 중심으로 참석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과총
포럼 시작 전, 김명자(뒷줄 가운데) 과총 회장을 중심으로 참석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과총

올림픽 메달과 GDP의 상관관계

“올림픽 메달 수를 2배 늘리기 위해서는 GDP(국내총생산)를 , 즉 8배 키우면 된다.” 「동계 스포츠와 과학기술」을 주제로 발제한 최해천 서울대 교수(기계항공공학부)는 이렇게 말했다. 올림픽 메달 순위 상위 20개국과 해당 국가들의 GDP를 비교한 결과, 이 둘이 뚜렷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메달 순위 1위를 기록한 노르웨이의 GDP 순위는 30위다. 그러나 1인당 GDP 순위는 3위다. 메달 순위 2위를 기록한 독일의 GDP 순위는 4위, 1인당 GDP 순위는 17위다. 또한 2년 전에 치러진 리우 하계올림픽에서 메달 순위 1위를 기록한 미국의 GDP 순위는 압도적 1위다. 1인당 GDP 순위도 7위다”라고 추가로 설명한 뒤, “우리나라의 기록을 검토해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7위를 기록했고 지난 하계올림픽에서 8위를 기록했다. 작년 기준, GDP 순위는 11위이고 1인당 GDP 순위는 29위다. 올림픽 메달 순위와 GDP가 확실히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스포츠 산업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라고 최 교수는 말했다. 한국은 스포츠 및 과학기술 강국들과 달리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회사를 갖고 있지 않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야구리그(KBO)조차 흑자 구단이 10개 구단 중에 4개 구단밖에 되지 않는다. 구단을 운영하는 것만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모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난 1월에 취임한 정운찬 KBO 총재도 “중계권 가치 평가에 초점을 맞춰 마케팅 수익 활성화에 총력을”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야구의 수준은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뛰어나다.

스포츠 강국이면서 스포츠 산업은 약소국인,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포럼의 공동주최자인 안민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테니스를 치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테니스 산업이 발전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어떻게 하면 풀뿌리 체육을 잘 키울 수 있을 것인가를 함께 논의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특정 스포츠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생활체육인의 수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스포츠 산업 발전과 과학기술」을 주제로 발제한 이기광 국민대 교수(체육학과)의 주장도 안 의원의 주장과 대동소이했다. 이 교수는 “메달 획득이 궁극적으로 스포츠 산업의 발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메달 획득으로 해당 분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증대되고, 그 증대된 관심이 해당 분야에 대한 직접적인 참여로 나아가는 중간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한 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이 중간 과정, 즉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이 직접적인 참여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인프라 확충이다.

발제 후 진행된 패널토론은 강준호 서울대 교수(체육교육과)의 사회로 진행됐다. 토론에서 김영관 전남대 교수(체육교육과)는 엘리트체육 문화에서 생활체육 문화로 전환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우리도 엘리트체육이 아닌 생활체육을 육성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럴 경우, 당연히 엘리트체육에 비해 선수들의 수준이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의 기량이 저하됨에 따라 국민들의 관심도 함께 떨어질 수 있다. 국제대회 성적이 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기량이 떨어지는 부분을 과학기술이 보완·보충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 “R&D는 마케팅까지다”

인프라 확충으로 생활체육 인원을 증가시키고 과학기술로 선수 기량을 향상시키면, 스포츠 산업은 발전 가능할까?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윙크 인사’로 유명세를 탄 산드로 류 사오린 헝가리 쇼트트랙 대표의 유니폼을 제작한 ㈜애플라인드의 김윤수 대표는 “스포츠 산업은 궁극적으로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전제한 뒤, “R&D로 끝나서는 절대 안 된다. 마케팅까지 나아가야 스포츠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R&D 정책의 범위가 기존의 기술 개발에서 기술의 상품화, 상품의 대중화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국내외적으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지난 올림픽에 대해서도 입장을 달리 했다. “스포츠 산업에서는 얼마나 브랜드를 많이 노출시키느냐가 매출을 결정한다”며 “순수하게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보면, 엄청난 행사를 치렀음에도 국내 업체의 노출이 매우 적었다는 점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스포츠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국가가 놓쳤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선수들의 운동 기록을 측정하는 계측기 제작·판매 업체인 ㈜비솔의 박형오 사장도 “스포츠 계측기 회사의 입장에서는 일반인들이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국내에서 수요가 발생하지 않으면 우리 같은 경우에는 절대로 해외로 나갈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국내에서 개최된 올림픽의 경우에도 국제 대회에서 많이 사용된 계측기만을 그냥 사용하고 만다”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와 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 기업의 상품을 사용하는 것은 국내 기업의 상품이 가진 기술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비솔만 하더라도 2016년에 영국, 스위스, 독일, 스페인 등의 경기장에 장비를 공급할 정도로 계측기 분야에서 국제적인 인지도를 확보해 가고 있는 상황이다. 박 사장 또한 “국내 업체의 기술력을 정부가 신뢰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주)진글라이더 파일럿이 프랑스 이제르 강 주변에서 '볼레로 6'를 테스트 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주)진글라이더 홈페이지
(주)진글라이더 파일럿이 프랑스 이제르 강 주변에서 '볼레로 6'를 테스트 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주)진글라이더 홈페이지

열악한 인프라와 부족한 정부 지원 속에서, 패러글라이더 세계시장 점유율 1위(약 25%)를 기록하고 있는 송진석 ㈜진글라이더 대표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정부에 몇 번이나 얘기했었다. 우리 같은 브랜드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왜 지원을 해주지 않느냐고. 일본만 하더라도 패러글라이딩이 실버레저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건’이 돼 있지 않다. 지방 자치단체별로 슬로프 하나씩만 건설해준다면 패러글라이딩 산업은 더욱 커질 것임에 분명하다. 수요는 분명히 있다”라고 말했다. 

토론에 참석한 스포츠 산업 관계자들은 R&D 비용을 직접 지원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사가 갖고 있는 기술과 상품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정부가 앞장서서 만들어줬으면 한다는 공통된 의견을 제출했다. 

임영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 스포츠산업과 과장은 “스포츠만큼 많은 국민이 접하는 분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앞으로는 개발한 기술이 경기장과 스포츠 시장에서도 과연 성공할 수 있는지, 그 점까지 고려해 R&D를 관리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임 과장은 “하지만 스포츠 공학이나 스포츠 산업의 전문가가 매우 부족하다”라고 현실의 한계를 토로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영세업체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마케팅의 기회가 필요할 뿐이다. 해당 업체가 속한 산업이 계속해서 유지 및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개발과 함께 기술의 상품화까지 중요하게 여기는 인식과 사람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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