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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겐,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 자기학대인가?
일본에겐,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 자기학대인가?
  • 양도웅
  • 승인 2018.03.19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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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日 고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안 논란 전문가 토론회 개최
서종진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이 첫 번째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동북아역사재단

“竹島(죽도, 한국명 독도)와 북방영토가 우리의 고유영토라는 것 등 우리나라 영역을 둘러싼 문제도 거론하도록 할 것.” 지난달 14일에 발표된 일본 고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에 실린 내용이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해에 확정·발표된 초등학교·중학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에 실린 독도 관련 내용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로써 일본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竹島는 우리 땅(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됐다. 여기서 ‘고유영토’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한 번도 다른 나라의 영토가 된 적이 없는 영토’라는 뜻이다. 즉, 독도를 한국이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결정에 대응하기 위해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도형)과 교육부(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김상곤)가 지난 14일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일본 고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안 분석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일본 교과서 문제 대응논리를 개발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이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일본이 현행 학습지도요령안을 개정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은 “중국의 대두로 일본의 국제적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저하됐다. 일본 보수 세력은 이에 대해 불안감과 위기감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약화된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 이번 결정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배경은 곧 개정안의 목적이기도 하다.남 연구원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본이 이번 개정안에서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국제이해’다”라고 설명한 뒤, “그러나 실제로는 국제 이해의 정신뿐만 아니라 공적인 역사인식과도 거리가 멀다. 일본 역사에 대한 애정은 과거를 숨기는 것에 의해서 얻어질 수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약해진 자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채택한 ‘자국중심주의’로 과연 국제적 영향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지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내셔널리즘을 고양시키는 이러한 자국중심주의적 교육은, 그러나 국제사회가 일찍이 철회를 요구한 교육 방법이다. 양차에 걸친 세계대전이 그로 인해 발발했다는 인식을 국제사회가 공유한 것이다. 1974년 제18회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국제이해, 국제협력과 국제평화를 위한 교육 및 인권, 기본적 자유에 대한 교육에 관한 권고」를 보면 ‘일체의 국민적·인종적 적대심을 부추기는 교육을 지양할 것’을 전 세계에 권고하고 있다. 

일본의 이번 결정은 과거에 자신들이 했던 말을 뒤집는 것이기도 하다. 현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2013년에 “우리나라는 예전에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끼쳤다”라고 말하며, 일본 총리로는 최초로 일본 제국주의 역사에 대해 공개적인 사과와 반성을 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었다. 국제 사회가 정한 기본적인 룰과 일본 총리 스스로 표명했던 입장과 모두 배치되는 이번 결정이, 과연 일본의 국제적 영향력을 높여줄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일본 교과서 내용의 모순과 과거 일본 정부의 발언

또한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다’라는 주장은 일본의 전체 교과서 내용을 고려했을 때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은 “일본 역사 교과서에는 1905년에 독도를 영토로 편입했다는 기술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은 지리 교과서에 기술된 17세기 이후 독도 고유영토설과 모순을 피할 수 없다”라고 지적한 뒤, “왜냐하면 17세기부터 독도가 자국의 영토였다면 1905년에 새롭게 영토로 편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1905년 독도가 無主地였기 때문에 자국의 영토로 편입했다는 주장도 17세기부터 자국의 영토였다는 주장과 배치된다”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일본은 과거에 독도가 일본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공표한 적이 있다. 홍 연구원은 “1877년 메이지 정부 당시 최고행정기관이었던 태정관의 지령인 ‘울릉도 외 1도 곧 독도가 일본과 관계없다’는, 일본이 1905년 이전에 독도에 대한 어떤 영유 의사도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독도와 관련해 1905년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바로 이 해에 일본이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고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됨으로써 되찾게 된 영토에 독도도 포함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증거가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다(일본은 이에 대해서도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일본은 끝내, 타국에 대한 침략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하는 것을 ‘자학’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자학을 극복하기 위해 반성을 하지 않고 피해자, 피해 국가에게 사과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타국을 무시함으로써 자국의 힘을 키울 수 있다는 사고방식, 일본의 시계는 아직도 제국주의 시대에 멈춰 있는 것일까. 이번 토론회는 얼마나 역사가 현재와 결부돼 있는지를, 동북아에 화해와 평화를 정착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게 해준 자리였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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