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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로운 이시스 여신부터 로마식 자비까지…예술가들을 매료시킨 깊은 鄕愁
자애로운 이시스 여신부터 로마식 자비까지…예술가들을 매료시킨 깊은 鄕愁
  • 연호택 관동대·영문학
  • 승인 2018.03.1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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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음식-음식의 문화사_ 16)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음식, 엄마 젖

‘The milk of human kindness’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Macbeth)(1605)에 나오는 말로 ‘따뜻한 인정’이라는 뜻이다. 아이에게 엄마의 젖이 소중하듯, 인간 삶에 있어 엄마의 젖과 같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인정, 친절한 인간미가 소중하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사진1. 이시스 여신과 아들 호루스(왼쪽 그림)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오른쪽 그림)
출처 :https://elpidiovaldes.wordpress.com/2014/01/21/jesus-in-early-christian-art-wizard-boy-to-royal-god/

이 세상 순수한 창작이나 창조란 있을 수 없다. 누군가를 보고, 또는 누군가의 어떤 것을 보고 그를 바탕으로, 혹은 변용하여 오리지널과 다르거나 차별화되는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낼 때 우리는 그를 창조적이라고 한다. 이렇듯 창조에는 本이 되는 모델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 자체가 그 어떤 본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수 신성에 걸맞은 모델

기독교 미술 작품에 처음부터 後光 또는 光背라는 것이 있지는 않았다. 예수는 손에 지팡이를 든 마법사였고 그것이면 그를 다른 이들과 구별 짓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기독교 미술이 복잡해지면서 예수가 신성한 존재임을 명확히 드러내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예수의 초상화가 있지도 않았고, 사진술은 발명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렇다고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를 아무렇게나 묘사할 수는 없었다. 예수의 신성에 걸맞은 상징성을 지닌 모델이 필요했다. 결국 기독교 화가들은 이교도들이 아폴로(Apollo)에게 했던 것과 똑 같이 예수에게 후광을 그려 넣었다. 이교도의 모티프가 기독교 예술에 반영된 것이다.

이런 이교도 풍의 차용 내지 모방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이집트 예술을 개작한 여성상이다. 이 여성은 기독교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 됐다. 그녀는 다름 아닌 신이자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다. 이집트 신화에서 대지의 어머니인 이시스(Isis) 여신은 가장 존경받는 신들 중 하나였다. 풍요(多産)의 여신인 이 어머니 여신으로부터 모든 생명이 비롯됐기에 모든 이들이 이시스 여신을 우러러 보고 기도를 바쳤다. 기독교인들은 이 여신의 이미지를 성모 마리아에게 이식했다.

이시스 여신의 자애로움을 강조하기 위해 그녀는 대개 아들 호루스(Horus)와 함께 묘사됐다. 호루스는 天神이며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 아폴로에 비견된다. 자연스레 예수는 아폴로와 대비됐다. 호루스가 아폴로가 되고 아폴로가 예수로 변하는 과정은 그리 어렵지도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호루스의 생일은 12월 25일 무렵인 동지였다(관련설명: http://www.jesusneverexisted.com/melange.html).

인간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어머니 여신으로 숭배할 대상이 필요했던 기독교 예술가들에게 호루스의 어머니인 이시스 여신이야말로 적격이었다. 그 결과 호루스와 이시스 모자의 이미지가 기독교 예술 속으로 옮겨져 왔고, 아기 예수를 사랑으로 감싸고 보살피는 어머니 마리아는 중세 암흑기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이미지 중의 하나가 됐다. 이제 예수는 얼마든지 남성적인 모습으로 그려도 좋았다. 

사진2. 로마 비아 살라리아에 있는 프리쉴라 카타콤(Catacomb, 지하묘지)에 그려진 <br>​​​​​​​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3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 <br>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Catacomb_of_Priscilla
사진2. 로마 비아 살라리아에 있는 프리쉴라 카타콤(Catacomb, 지하묘지)에 그려진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3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Catacomb_of_Priscilla

로마 살라리아 街에 있는 프리쉴라 카타콤 벽화 중에는 성인들의 모습과 초기 기독교 상징들을 담은 그림들이 있다. 그 가운데 지오반니 가에타노 봇타리의 1754년 模作을 보면 아래에서 보듯 선한 목자가 왼손에는 울어대는 수탉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양들에게 먹이를 주는 존재로 묘사돼 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윤리 기준

윤리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구약성경 창세기 19장에 나온다. 롯의 두 딸이 아버지에게 술을 권해 취하게 하고 동침을 한다. 이 일에 대한 큰 딸의 해명이 독특하다. 큰딸이 여동생에게 이르기를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쫓아 우리의 배필이 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아버지로 하여금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해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성경 작가들은 이 이야기를 떳떳하게 실었다. 그에 비해 적장의 목을 벤 유디트 이야기는 정경에서 제외되고 외경에 실려 있다.  

한편 인간의 타락상에 대한 신의 징벌로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의 심판을 받고 파멸 당한다. 구약성경 에스겔서 16: 48?50에는 파멸에 이르게 된 소돔의 상세한 죄들이 나열돼 있다. 교만, 지나친 풍요, 게으름, 궁핍한 이들에 대한 무관심, 우상숭배가 소돔의 죄라고 기록돼 있다. 이러한 죄악들은 혐오스러운 것으로 표현돼 있다. 그러나 죄의 목록에 동성애(sodomy)는 없다. 천사가 몸소 의인을 파악하고 경고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소돔을 찾아왔을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소돔의 성문에서 이들을 만나자마자 끈질기게 자신의 집으로 초청한다. 이방인이 왔다는 소식에 소돔 시민들은 전부 롯의 집으로 몰려가 “우리가 저들을 강간하려하니, 손님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생떼에 대한 롯의 답변 또한 기가 막히다. “처녀인 내 두 딸을 대신 보낼 테니 손님들은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롯의 대답을 들은 소돔 사람들의 반응은 여자는 필요 없으니 남자 손님을 달라는 것이었고, 결국 보다 못한 천사들이 일시적으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롯과 가족들이 위기를 모면하게 돕는다. 누가 보아도 롯과 시민들 양쪽 다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은 또 있다. 로마시대 형벌제도인 餓死刑이 그렇다. 로마시대에는 죄인들에게 감옥에서 굶어죽는 아사형을 언도하곤 했다. 단 아사형을 받은 죄수는 가족 중 한 사람으로부터 젖을 얻어먹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를 로마식 자비라고 불렀다. 루벤스의 작품 「로마식 자비」의 부제는 시몬과 페로인데, 페로는 자신의 아버지 시몬이 감금돼 아사형 선고를 받게 되자 몰래 아버지에게 자신의 젖을 먹인다. 그러다 간수에게 들키게 되지만 그녀의 헌신적 행위가 오히려 관리들의 마음을 움직여 시몬은 석방되기에 이른다.   

사진4. 루벤스(1577~1640)의 「로마식 자비(Roman Charity)」. 부제: Simon & Pero.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사진출처=http://blog.daum.net/gijuzzang/8514378

아래에서 보듯 수많은 화가들이 로마식 자비를 그렸다. 로마식 자비란 젖이 곧 생명임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누구의 것이든 젖은 고귀한 생명의 음식이기에 아사형을 언도받은 죄인조차 젖의 수혜에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이다. 영유아기의 아기에게 엄마의 젖은 그것 하나로 모든 영양이 공급되는 유일하면서도 최고의 음식이다. 그러나 그 시기가 지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어릴 적 먹던 엄마 젖이 그리울 때도 있으나 그렇다고 다시 젖을 먹고 싶어 하는 어른은 없다. 엄마의 입장에서도 늘 자신의 젖을 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설혹 그래야 할 경우라도 마음대로 양껏, 아낌없이 줄 수도 없다. 자식의 생명이던 젖의 질을 뜻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엄마의 젖에 대한 강력한 향수가 있다. 엄마의 품을 벗어나며 생존을 위해 더 이상 엄마의 젖을 찾지 않는 대신 인간은 동물의 젖을 자신의 생활 속으로 들여와 음식으로 삼는다. 젖이 완전식품임을 알기 때문에 제 새끼에게 어미젖을 물려 키워야 할 양과 소, 낙타로부터 젖을 짜 날 것으로 마시거나 가공해 식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젖은 모성의 상징이다. 자식에게 젖을 물리는 암컷의 모성은 위대하다. 유감스럽게도 수컷은 생명의 젖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수유를 통한 생명 전달의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그런데 박쥐의 한 종류인 다약 과일박쥐(Dayak fruit bat)는 수컷이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 포유류 동물 중 부유수유를 하는 유일한 종일 것이다.

젖의 어원

‘젖’이란 말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젖의 어원을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젖의 어원이 무척 궁금하다. 어원을 파헤치기에 앞서 젖과 관계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먼저 살펴보려고 한다. 

막내 타이탄 크로누스(the youngest Titan Cronus)와 그의 여동생이자 부인인 레아(Rhea) 사이의 딸인 헤라(Hera)는 고대 그리스 종교와 신화에서 올림포스 12신의 하나로 결혼, 여자, 출산, 가족의 여신이다. 이 여신은 로마제국에서는 주노(Juno)로 개명한다. 그녀는 신들의 여왕으로써 자신의 막내 남동생이자 올림포스 산을 지배하는 제우스(Zeus)와 결혼한다. 이로 미루어 오누이간의 혼인이 당시 인간 세상에는 다반사였지 않나 싶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포세이돈, 하데스, 디미터, 헤스티아(Hestia) 등이 이들 오누이 부부의 형제자매들이다. 아무튼 제우스와 레아 이 둘은 신혼 첫날밤을 사모스 섬에서 지낸다. 이 때 헤라의 젖가슴에서 힘차게 뿜어져 나온 젖이 밤하늘에 흘러서 영롱한 빛을 내는 띠가 되었고 이를 은하수(Milky Way)라고 한다. 

거듭 말해 어린아이에게 있어 젖은 생명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한 나라의 건국 시조들은 사람의 젖이 아닌 동물의 젖을 먹고 자란 것으로 기술돼 있는 경우가 많다. 왜일까? 전설에 따르면 흉노의 묵돌 선우가 오손을 멸망시키고 당시 갓난아기였던 엽교미 곤막만이 살아남자 그를 들판에 버렸으나 주변의 늑대들이 그를 보호하자 그를 신령한 존재라고 여기고 키웠다고 한다.

연호택 관동대·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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