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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부르는 홀로 아리랑   
함께 부르는 홀로 아리랑   
  • 최상진 경희대 명예교수·국어학
  • 승인 2018.03.1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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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최상진 경희대 명예교수·국어학

이공계와 달리 인문학 분야 연구는 대개 혼자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요즘은 인문학도 연구팀을 만들어 다양한 연구 활동을 하지만 아직도 단독 논문이 더 많다. 그래서 교수들은 쪽방과 같은 연구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대학 내에는 소속 학과는 물론이고 다른 학과 교수들과 내왕이 없는 교수들이 적지 않다. 이런 교수들은 집에서 도시락을 싸 오거나 간이 냉장고에 준비된 간편 음식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연구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자정에 가까운 밤늦은 시간 어두운 연구실 복도로 나오다 보면 섬뜩한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연구실 안에서의 자유로움은 교수만의 특권이기도 하다. 

늘 학교 연구실과 집 사이를 오가며 연구밖에 모르던 반듯한 교수가 있었다. 어느 날 하루가 지나도록 그 교수가 집에 들어오지 않자 이상한 낌새를 느낀 부인이 학과 조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이 집에 귀가하지 않는다’고 하며 ‘혹시 학생들과 어디 가셨느냐’고 물었다. 학과 조교가 ‘그런 일 없으셨다’고 하고 연구실로 가 보았다. 노크를 했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연구실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보니 교수가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급히 119에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숨을 거둔 지 꽤 시간이 경과한 뒤였다. 오래전 어느 대학 국문과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다 잊혀졌지만 당시 국어국문학계에서는 많이 회자됐던 일이다. 

모 일간지에서 한 대학생이 편의점의 김밥과 음료수를 사서 화장실 변기를 식탁 삼아 점심을 때우는 인증 사진을 실은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른바 ‘혼밥’족이다. 학교 교정을 걷다 보면 교내 벤치, 강의실 복도, 운동장 스탠드에서 홀로 식사를 하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대학은 들어왔지만 학과 동료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학교에 와서 하는 일상은 강의를 듣고 공강 시간 교내외에 널려 있는 커피숍에서 홀로 휴대폰과 노트북을 가지고 놀다가 집에 가는 일이 전부다.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고 자기만의 섬 속에 살아간다.

대학생뿐만 아니다. 직장인 가운데도 혼밥족이 있다. 도심에는 직장인 혼밥족을 위한 식당이 성업 중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직장인들은 대부분 같은 팀 직장 선후배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근처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그 틈에 끼지 못하면 혼밥을 먹는 처지가 된다. 직장인의 왕따는 단순한 정신적 소외감을 겪는 정도가 아니라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전철을 타 보자. 남녀노소가 거의 휴대폰을 보고 있다. 가히 반려기계 수준이다. 앞 사람, 옆 사람에 아무 관심이 없다. 오로지 혼자만의 가상공간에서 옳고 그름을 걸러내지 못한 쏟아지는 정보들을 보며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결정한다.  

교수님들께 청하노니 안사람이 불편해하는 도시락 싸지 말고 연구실에서 나와 교수식당에서 식사하시기를 권한다. 그곳에 가서 여러 교수들 틈에 비집고 들어가 앉으셨으면 한다. 따뜻한 밥과 따뜻한 사람들이 거기 있다. 홀로 밥을 먹는 대학생과 직장인들에게도 청하노니 노트북을 가방 깊숙이 넣고 주변의 친구를 찾아 먼저 밥 먹자고 전화하기를 권한다. 아마도 친구들이 반갑게 전화를 받아줄 것이다. 전철에 타신 분들에게도 청하노니 반려기계에 묻혀 있지 말고 고개를 들어 사람을 봤으면 한다. 때로 사람이 사람을 짜증 나게 하고 두렵게 하고 절망하게 하지만 세상은 올곧고 착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이 세상은 돌아간다. 만일 선량한 사람보다 사악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면 이미 인류는 오래전에 멸망했을 것이다. 

거리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로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 보자 다 함께 가 보자.’ 우리는 다 사람이다.

 

최상진 경희대 명예교수·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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