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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형 사립대, 갈림길 선 교육부의 정책 방향타 될까? 
공영형 사립대, 갈림길 선 교육부의 정책 방향타 될까? 
  • 문광호
  • 승인 2018.03.1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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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공약임에도 아직 안갯속

공영형 사립대 추진을 둘러싼 대학가의 움직임이 분주한 가운데 교육부(부총리 겸 장관 김상곤)의 미온적 대응으로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상지대, 영남대 등 12개 대학은 전국공영형사립대추진협의회(대표 박병섭, 이하 공추협)를 구성하고 공영형 사립대 도입을 주장했다. 지난 2일에는 김한정·오영훈·조승래(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학공공성강화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위원장 김지수)가 주최하고 공추협이 주관하는 ‘공영형 사립대의 의의와 효과 그리고 운영방안’ 토론회도 열렸다.

18대 대선 당시 정부책임형 사립대라는 이름으로 처음 언급된 공영형 사립대는,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대신 이사회에서 공익형 이사가 과반수를 차지하는 등 대학 운영에 정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대학을 말한다. 이봉주 조선대 교수평의회 의장은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음에도 등록금은 8년째 동결 상태에 있고 교수 인건비는 올라간다. 결국 연구 환경이 열악해지고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줄어든다”며 “그럼에도 정부는 등록금 인상에는 반대하고 있으니 보완할 수 있는 차원에서 공영형 사립대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학 구조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재정 상황이 열악한 사립대를 중심으로 공영형 사립대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 

대학 서열화 해소, 사립대 여건 개선 기대

단순히 사립대의 재정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영형 사립대의 도입 취지는 궁극적으로 대학의 서열화를 해소하는 데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9대 대선 당시 에세이집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근본적으로 대학 서열화를 없애야한다”며 공영형 사립대 추진을 주장한 바 있다. 김명연 공추협 정책위원장은 “공영형 사립대 추진의 가장 큰 이유는 공교육 정상화와 관련돼 있다”며 “초중등 교육도 대학이 서열화돼 있고 학벌주의가 강하다보니 대학 서열화 완화시키지 않으면 모든 입시가 정책이 백해무익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공립대 비중이 20%밖에 안 되기 때문에 대학의 평준화가 힘들다”며 “공영형 사립대와 연합해서 대학서열체제를 완화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다”고 설명했다.

사학재단의 비리를 감시·감독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김 정책위원장은 “(공영형 사립대의 이사를) 꼭 정부가 임명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정부, 재단이 이사회를 공동으로 구성해서 공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국가가 운영권을 가져가야 공적역할 담보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개인의 사적 이사회가 인사와 재정을 그대로 사용하면 공공성 담보에 한계가 있다”고 역설했다.

교육부의 상반된 행보, 기본역량진단과 공영형 사립대

교육부에서는 현재 공영형 사립대 추진을 위해 한국방송통신대 산학협력단을 통해 정책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동시에, 오는 27일 1차 보고서 제출을 시작으로 대학 발전 지원을 위한 대학기본역량진단 역시 진행된다.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은 대학들은 재정지원이 축소, 제한되고 정원 감축이 요구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학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공영형 사립대와 모순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지관 한국대학학회장은 “학령 인구 감소 등 변화를 대비해 대학들을 공영화 시켜서 유지하겠다는 것이 공영형 사립대의 취지다”며 “그런데 대학기본역량진단은 징벌적 조치로 재정을 축소, 조정하고 하위권 대학을 구조조정 하겠다는 것으로, 공영형 사립대의 방향과 달라서 모순적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교육부에서 상대적으로 공영형 사립대에 힘을 싣고 있지 않다는 주장까지 터져 나온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언급된 시범 사업 추진이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보여준다는 비판이다. 박순준 한국사립대학교수연합회 이사장은 “지금 법과 제도를 만들기 곤란하니까 시범 사업하자는 게 일부 주장인 것 같은데 그 점은 신중해야할 필요가 있다”며 “사립대학이 수적으로 굉장히 많은데 특정 대학을 선정하는 경우에 그것이 사업을 주도하는 쪽의 주장처럼 과연 지배 구조를 개선하는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오너십이 강한 쪽에서는 학교의 지배구조를 폐쇄적으로 가져갈 우려가 있다”고 시범 사업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이어 박 이사장은 교육부의 공영형 사립대 추진에 대해 “국정 과제이기 때문에 일단은 수행하고 있지만 (시범 사업의) 부작용을 내다보면서도 전면적으로 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윤 학회장 역시 “시범 대학으로 몇개 대학을 선발해서 공영형 체제를 갖추게 만든다는 것은 원래 취지와는 너무 다르다. 잘될만한 대학만 선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며 “결국 (시범 사업은) 특혜를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고 비판했다.

교육부·여당, “신중하게 추진 중”

공영형 사립대의 추진 방향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교육부는 아직 정책 연구 중이라는 이유로 말을 아꼈다. 김민하 교육부 사무관(사학혁신지원과)은 “공영형 사립대는 발전가능성이 있는 건실한 대학을 지원을 하는 것이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대학을 한정해 지원하는 방향으로 결정된 바 없다”며 “기본역량진단과의 관계는 사업 추진과정에서 정리돼야 할 부분이다”고 밝혔다.

여당도 당장은 공영형 사립대에 관한 뚜렷한 입법 계획이 없다. 조승래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은 “당장 입법하는 것은 아니고 정부와 보조를 맞춰가야 할 것 같다. 부실대학 퇴출과 관련된 법들은 나와 있고 토의 중이니 법들의 추이를 볼 것이다”며 “열린우리당 때 사립학교법 개정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 신중하고 정교하게 파고들지 않으면 역풍이 불 수 있어 단계를 밟아 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공영형 사립대의 지원 방향과 대학구조개혁평가의 평가 방향이 달라 서로 충돌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립대의 발전가능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공영형 사립대는 또 다른 대학 줄 세우기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출산율 감소,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예견된 사회의 변화를 대비하는 방책으로서 김상곤 장관의 교육부가 내놓을 청사진에 귀추가 주목된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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