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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의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류를 위한 디저트
설탕의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류를 위한 디저트
  • 연호택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18.03.15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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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음식-음식의 문화사_ 14)단맛 예찬: 별별 디저트, 황홀한 맛의 향연

“서로의 잔을 넘치게 하되 한쪽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가 자기의 빵을 주되 한쪽 것만을 먹지 말라.”--지브란 『예언자』 中 

‘꿀맛 같다’라는 건 맛있다는 말이다. ‘밥이 꿀맛이다’, ‘고기가 완전 꿀맛이다’라는 건 단맛이 맛 중의 맛, 최고의 맛이라는 것이다. 내 경우 ‘음식이 맛있다’는 싱겁지 않다는 것이다. 짠맛이 느껴져야 나는 입맛이 나고 음식이 맛있다. 물론 단맛 또한 무척 즐긴다. 왜 그럴까? 아마 나처럼 단맛에 익숙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디저트나 간식으로 먹는 로꿈(lokum) 또는 라핫 로꿈(rahat lokum)이라는 이름의 터키시 딜라이트(Turkish delight)를 먹어본 사람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강한 단맛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전분과 설탕이 주성분인 이 과자는 달아도 너무 달다.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도 있다. 단맛의 강도가 다른 것이다.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단맛의 즐거운, 터키시 딜라이트 로꿈
출처=위키백과

Lokum(혹은 lokma)이라는 말은 ‘한 입, (한 입의) 맛난 음식(morsel)’이라는 뜻의 아랍어 luqma(t)와 복수형 luqim에서 왔고, 오스만 터키식의 이름 라하툴 훌껨(rahat-ul hulkem)은 ‘목구멍의 위안’이라는 멋진 말이다. 기존의 전통 로꿈은 장미수, 유향(乳香, mastic), 베르가모트 오렌지(bergamot orange), 레몬, 계피, 박하 등으로 풍미를 곁들이고, 프리미엄 로꿈에는 잘게 썬 대추야자, 피스타치오, 헤이즐넛, 호두 따위를 넣는다. 

식사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디저트

서양식 식사의 마무리는 디저트다. 어떤 디저트를 어떻게 먹었느냐에 따라 그날 식사자리의 만족, 불만족이 결정된다. 일반적으로는 디저트 와인이나 샴페인을 마신다. 그럴 경우 식사 마무리가 잘 된 것으로 평가한다. 품격 있는 식사였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평범하지만 진짜 맛있는 식후 클래식 디저트는 커피다. 단 아이스크림을 곁들여야 한다. 따라서 아무 식당이어서는 안 된다. 커피 특유의 관능미를 잘 살리는 커피를 내는 곳에서만 커피를 마시는 분별력이 중요하다. 내린 지 몇 시간이 지난 드립 커피는 기껏 맛있는 음식 먹고 즐거워진 마음을 망쳐놓기 쉽다. 카푸치노, 카페라테처럼 우유를 첨가한 커피 말고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처럼 오로지 커피 향과 맛만 나는 커피를 마시며 아이스크림(이 경우도 망고, 딸기, 레몬 따위의 과일향이 첨가된 것이나, 초콜릿 믹스트 아이스크림은 사양한다)을 떠먹는다. 은은하고 고상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커피와 함께 입안에서 녹아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릴 때의 기분은 더 없이 ‘원더풀!’이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디저트 문화가 애당초 없었다. 서양 문물이 들어오고, 이국의 음식을 맛볼 기회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커피를 가까이 하게 됐다. 1960년대부터 식후 커피 한 잔이 교양이나 세련의 척도쯤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 결과 한국의 중년층 이상의 사람들 대부분은 이른바 달달한 다방 커피 애호가다. 중독돼 있다시피 부리나케 식후에 꼭 다방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간편한 믹스트 커피가 나오기 전에는 커피, 설탕, 크림의 혼합 비율이 2 대 3 대 2가 표준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입맛 내지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버라이어티가 가능한 것이 다방 커피의 융통성이다. 

사람들 입맛의 비위를 맞추는 코카콜라

우리가 무언가 맛있다고 할 때는 맛이 달다는 의미인데, 어떻게 해서 어째서 왜 사람들은 단맛에 길들여졌을까? 많은 사람들이 단맛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코카콜라는 특유의 톡 쏘는 맛 때문에 성공했다. 펩시가 후발주자로 대결 신청을 했지만 코우크를 이기지 못했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펩시의 맛이 더 낫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데 상업적으로 코우크의 매출이 앞선다. 설탕의 폐해, 건강에 해로운 설탕 얘기가 범람하니 슈가리스를 출시해 단맛에 길들여진 인류의 입맛의 비위를 맞춘다. 단 음식을 먹으면 몸의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물론 과유불급은 설탕 사랑에도 적용된다. 과다한 설탕의 복용은 당뇨병, 비만, 충치 같은 질환을 부른다. 그러나 입맛은 야속하다. 여전히 사람들은 설탕 곁을 떠나지 못한다. 설탕 사용량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일인당 소모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인도다. 설탕의 원조국답다. 

이란 이스파한의 명물 디저트 갸즈
출처=구글 이미지

세상의 절반이라는 별명을 지닌 이란의 고도 이스파한. 이곳의 명물은 갸즈(gaz)다. 이란에 가서 피스타치오가 들어 있는 갸즈를 맛보지 않고 떠나온다면 이란 여행은 반쪽 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갸즈는 견과류가 든 과자의 총칭인 누가(nougat)의 일종이다. 우리나라의 콩엿과 흡사한 이 간식거리는 이스파한이 고향인 안제빈(angebin)이라는 식물의 수액으로 만드는데 수액의 비율이 높을수록 더 순수한 갸즈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혼절할 만큼 충격적인 아이스크림의 맛

이탈리아 젤라또, 프랑스 아이스크림이 맛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괴롭히기도 엄청 괴롭혔지만, 문화 전파의 측면에서 사라센 해적 혹은 침입자들로 기억되는 아랍 무슬림들의 시실리섬 정복과 통치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유럽은 아이스크림이 무엇인지 알지도 맛보지도 못하고 평생을 살다 갔을 것이다. 동양 문명의 서양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한 시실리 섬의 아이스크림 맛은 감동 그 자체이며, 중동 특히 터키, 시리아, 이란의 아이스크림은 혼절할 만큼 그 맛이 충격적이다. 특히 이란의 바스타니(Bastani) 아이스크림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그래서 맛보기를 포기하거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서 맛보아야 하는 최상의 아이스크림이다. 천국의 풍미를 제공하는 이 아이스크림의 주인공은 사프란(saffron)과 장미수다. 또한 입안에서 씹히는 피스타치오의 질감이 장난이 아니다. 한 마디로 바스타니 샤프란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이란 이런 것이다’를 알려준다.

이란의 샤프란 아이스크림
출처=https://food52.com/recipes/40575-persian-saffron-ice-cream

예수 사후 사도들은 로마제국 내의 비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한다. 특히 타르수스(Tarsus)의 바울의 손길에 의해 기독교는 세계 종교가 됐다. 초창기 기독교도들은 주피터 숭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왕왕 인육을 먹는다는 소문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 

소문은 무섭다. 단순한 풍문이 아니라 집단적 광기가 실린 악의적 모함이라면 그건 살인보다 잔인하다. 중국인 漢族 사람들은 蕃族(티베트인)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을 사실로 믿었다. 그런데 사실은 번족이 인육을 먹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잡아먹혔다고 한다. 十全老人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청나라 건륭제 시절, 金川 반란이 일어났을 때 농성을 한 한인들이 군량이 떨어지자 결국 포로로 잡은 번족 병사를 잡아먹은 것이다. 그리고는 부위별로 맛을 상세히 기록한 다음 중앙에 보고를 했다. 그 보고서에 의하면 음경이 물컹물컹하니 제일 맛이 없다고 한다. 

호기심 때문이든, 보신을 위한 것이든 많은 남자들이 이상한 식품을 먹는다. 몸에 좋다면 억지로 구토를 참으면서도 사슴피를 마시고, 말로는 징그럽다 하면서도 입으로는 살아서 꿈틀대는 껍질 벗긴 뱀을 아작아작 씹고 있다. 그리고 독주를 마신다. 牛囊(수소의 고환)과 牛腎(수소의 생식기)도 남성들의 애호품목이다. 물개의 물건 海狗腎을 찾는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그런데 막상 맛은 없다고 한다. 

맛없는 음식을 먹고 나서는 디저트로 입안을 씻어줘야 한다. 망친 입맛을 보상하는데 단맛 이상의 것이 없다. 물론 쓴 커피도 있으나 커피 맛이 끝내 쓰기만 한 것은 오히려 역효과다. 뒷맛이 달콤한 스페셜티 커피라야 역겹거나 느끼하거나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음식을 먹고 난 뒤 불만에 가득 찬 미각을 달랠 수 있다. 상처 입은 입맛에는 무엇보다 단맛이 필요하다. 단맛의 위안은 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내키지 않은 음식을 먹었을 때 억지로 혹은 급하게 음식을 삼켜야 했을 때 우리의 소화기능은 자칫 응체되기 쉽고, 위장은 위액분비에 이상이 생겨 배탈 설사 심한 경우 토사곽란이라는 위중한 사태까지 발생한다.

라다단의 역설

일 년에 한 달 라마단을 맞이하는 무슬림들의 식욕은 또 한 차례 시련을 맞게 된다. 어떻게 한 달을 견디지? 라마단은 ‘더위와 건조함을 태우다/시들게 한다’는 뜻의 아랍어 어근 라미다(ramida) 또는 아라마드(ar-ramad)에서 비롯되었는데,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이다. 라마단 기간 동안 금식을 하는 이유는 알라신께서 무하마드에게 꾸란을 계시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단식은 이슬람의 다섯 기둥 중의 하나로 치부된다. 무슬림이 실행해야 하는 다섯 가지 의무에는 단식을 포함 신앙고백, 기도, 적선 혹은 보시, 순례가 포함된다.

라마단 한 달 동안 수후르(Suhoor, before dawn)에서 이프타르(Iftar, after sunset)까지 즉 해가 떠서 해가 질 때까지 알라와 선지자 무하마드와 이슬람을 믿는 형제자매들은 물 한 잔도 마셔서는 안 된다. 갈증도 허기도 그저 견뎌야 한다. 담배를 피워서도 안 되고 성행위도 금지된다. 라마단 기간 동안의 금식-사움(sawm)이라고 한다-에 대한 영적인 보상은 다른 때에 비해 몇 곱절이나 크다고 무슬림들은 믿는다. 그렇다 해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이나 금식을 한다는 건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견딜 수 있을까? 금식의 의무가 면제되는 사람들이 있다. 외국인 여행자, 어린이나 노약자, 질병이 있는 사람,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여성, 월경 중인 여성, 전쟁 중인 군인. 그러나 이들은 라마단이 끝나면 금식을 못한 일수를 채워야 한다, 반드시.

인간은 약았다. 해 뜨기 전 일어나 부지런히 배를 채운다. 낮 동안은 독실하게 신앙의 요구에 따른다. 점심 때 쯤 배가 고프고 뭔가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보는 눈도 있고, 어차피 혼자만 굶는 게 아니니까 꾹 참고 견딘다. 꾸란을 읽거나 기도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윽고 해질녘. 이제 자유의 시간이다. 억압으로부터 해방이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억압된 욕구를 해소할 때가 됐다. 집까지 간다는 건 힘든 일이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장사꾼의 머리와 음식 솜씨 있는 손을 가진 사내들이 시장 공터, 사원 앞에 노변 식당을 열었다. 종일(이라고 해보았자 12시간 내외) 굶은 사람들이 퇴근길에 가족들을 불러내 밥부터 먹기로 한다. 하릴없이 집안에만 갇혀 지낸 여성들도 무료하게 배고픔을 견디느라 휘청거릴 정도다. 양고기나 닭고기를 주문한다. 케밥은 진짜 맛있다. 그렇다고 허겁지겁 막 먹으면 탈이 난다. 물도 마시지 못한 위장에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킨 음식은 독과 다름없다. 그런 사고를 예방하려면 위장의 워밍업이 필요하다. 단 음식이 효과가 있다. 소화시킬 음식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던 위는 잔뜩 긴장돼 있다. 꿀에 재운 대추야자 열매부터 먹는 것으로 무슬림의 첫 식사(정확하게는 두 번 째 식사)는 시작된다. 그래야 탈이 없다.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중동 지방, 아프리카 특히 지중해에 면한 이슬람 국가들은 이런 과정, 간헐적 단식과 흡사한 라마단 단식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머리가 아플 만큼 달디 단 각종 디저트를 만들어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다. 소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사람들보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결혼하고 수 삼년만 지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들의 몸매에 변형이 찾아오는 걸까? 

12대 디저트는 무엇일까

꽤 오래 전 중앙아시아 답삿길에 중앙아의 중심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시켄트에서 며느리 삼대가 한 집에 살고 있는 기묘한 인연을 목도한 적이 있다. 젊은 과부 며느리의 시어머니이자 또한 과부인 중년의 며느리, 그리고 그들의 시할머니요 시어머니인 늙은 과부는 영락없이 뚱뚱했다. 지역 특산인 물 좋고 당도 높은 멜론을 후루룩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고는 뚱뚱할만하다고 생각했다. 날씬이 통통이 개의치 않고, 프랑스에 살거나 리비아에 살고 있거나 차도르든, 히잡이든, 부르카든 전통복식을 입은 이슬람 여성들은 대체로 달콤한 음식을 좋아한다. 수크나 바자르(둘 다 시장이라는 말로 전자는 이집트어, 후자는 돌궐어)의 유명 아이스크림 가게는 부끄럼 타는 젊은 이슬람 여성들로 문정성시를 이룬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최신 백화점 한 구역에는 잘 볶은 견과류를 파는 곳이 있다. 견과류 상점의 주요 고객은 차도르 안에 청바지를 입고 날씬함을 과시하는가 하면 히잡 밖으로 슬쩍 블리치(bleach)한 노란 머리를 내보이며 유행 쫓는 열혈녀의 용기를 보여주는 젊은 여성들. 이들이 좋아하는 견과류는 설탕 코팅을 한 땅콩과 피스타치오 등이다. 이렇듯 설탕의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디저트는 다양해진다. 

구미를 동하게 하는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운 셈라들.
출처=구글 이미지

세상에는 무수한 디저트가 있다. 따라서 맛있는 게 10가지만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무엇이고 제한하기를 즐긴다. 3대 미인, 3대 진미, 3대 홍차, 3대 미항, 3대 축제, 7대 불가사의, 10대 가수 등등. 이른바 10대 디저트는 보기만 해도 침샘을 자극한다. 이런 것을 한 자리에서 맛볼 수는 없다. 여행을 하다가 마침 언젠가 들었던 맛있는 디저트가 눈에 들어온다면 그 때는 망설이지 말고 미각의 호사를 즐길 일이다. 물론 아래에 소개하는 12가지 것들만이 디저트의 전부는 아니다(이는 스카이스캐너가 소개한 디저트들이다). 사람마다 맛에 대한 취향도 다르기 때문이다. 

래밍턴 케이크(호주), 카놀리(이탈리아 시칠리아), 펑리수(대만 타이페이), 로쿰(터키), 바클라바(터키), 에그 타르트(홍콩, 마카오), 셰이브 아이스(하와이), 밀푀유(프랑스), 마카롱(프랑스), 망고 플룻(필리핀), 셈라(스웨덴), 사쿠(태국)

내 경우 이만큼 살고 여행을 다녔으면서도 아직까지 북유럽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셈라(semla)를 맛보지 못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는 나는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에 비해서는 값이 비싼 마카롱을 그 맛에 반해 국내에서도 가끔 사 먹고, 파리에서도, 줄리엣의 고향이라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마카롱 전문 상점에서도 밥 대신 사 먹은 적이 있다. 그런데 슈크림 빵 비슷하게 생긴 셈라, 잘 구운 번의 속을 파고 그 자리에 고소한 아몬드 잼이나 달콤한 잼을 채운 보기만 해도 마른 침을 삼키게 되는 셈라를 몰랐다니. 물론 슈크림, 불어로는 슈알라끄렘므(Chou  la Creme) 또한 맛있다. 

죽음의 맛, 카놀리

영화 「대부」 3편에는 시칠리아 섬의 주도인 팔레르모 오페라 극장에서 카놀리(cannoli)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오페라를 감상하며 독이 든 카놀리를 음미하다가 죽음의 길로 떠나는 마피아의 모습이 그려진다. 영화 스토리, 음악 다 훌륭하지만 나는 도대체 카놀리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언젠가는 저걸 먹고 말아야지. 어른스럽지 않은 욕구가 시칠리아 여행을 꿈꾸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말 맛있는 카놀리를 시라쿠사에서 맛보았다. 시라쿠사는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아르키메데스가 살던 곳이다. “에우레카(Eureka)!” 시라쿠사를 대표하는 성당 두오모 디 시라쿠라(Duomo de Siracusa)에 들어가 사는 일에 조급해 하지 말 것을 다짐하며 의젓한 걸음걸이로 성당을 나섰지만, 몇 걸음 걷지 않아 내 발은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전 시간 막 만들어져 나온 멋진 모습의 카놀리가 수없이 눈앞에 펼쳐져있는 것이었다. 속을 채운 리코타 치즈 맛도 그렇지만 셸(shell, 과자껍질)의 바삭함과 고소함이 너무도 대단했다. “나 여기 며칠 더 있을테니 먼저들 가라”는 농담이 빈말은 아니었다. 

먹음직스러운 카놀리
먹음직스러운 카놀리
출처=구글 이미지

이제 셈라를 맛보는 것이 나의 꿈이 됐다. 그래서 셈라에 대해 공부를 한다. 그것이 미각에 기쁨을 주고 입술과 혀로 하여금 탄성을 지르게 하는 진미에 대한 예의라고 믿는다. 여행을 할 때 미리 알고 보는 것이 더 나은 것처럼, 모르고 먹는 것보다 알고 먹는 것이 더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우연히 맛을 본 것이 뜻밖의 기쁨을 주기도 한다. 
셈라(semla)는 핀란드어로는 라스키아이스풀라(Lakiaispulla), 덴마크 동부 방언에서는 화스텔란(fastelann), 라트비아어로는 붸자 쿠카스(veja kukas), 에스토니아어로는 vastlakukkel(봐스틀락쿡켈)이라고 불리는 북구의 전통 스위트 롤이다. 재 또는 聖灰의 수요일(Ash Wednesday)로부터 부활절 이브(Easter Eve)까지의 40일 간을 사순절(Lent)이라고 하는데, 기독교인들에게는 단식과 참회를 행하는 시기다. 이 때 추운 지방인 북유럽 사람들이 이 달콤한 디저트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특히 재의 수요일 바로 전의 참회의 월요일(Shrove Monday)이나 화요일에 많이들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렌트 번(Lent buns) 즉 사순절 빵이라고도 한다. 뜨거운 우유를 담은 대접에 셈라를 담아 먹기도 하는데 이때는 헤트베그(hetvegg)라고 부른다. 추정컨대 40일간 단식과 참회를 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에 맛있고 영양가 있는 셈라를 만들어 먹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앙트레가 아닌 디저트의 카테고리에 집어넣은 건 양심의 자극 때문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semla의 어원인데, 일단 이 단어는 독일어 Semmel의 차용어다. Semmel 또한 라틴어 simila에서 왔는데, ‘밀가루(flour)’를 가리킨다. 라틴어 simila는 또 ‘곡물(groats)’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semidalis를 차용한 것인데, 실제로는 입자가 아주 고운 밀가루나 세몰리나(semolina)라고 곡물을 빻은 뒤 체질을 한 후 남는 거친 밀가루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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