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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는 정말 ‘새’ 학기일까
새 학기는 정말 ‘새’ 학기일까
  • 정지혜 편집기획위원/건국대·신경생물학
  • 승인 2018.03.1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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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정지혜 편집기획위원/건국대·신경생물학

새 학기가 시작됐다. 아직도 눈비가 내리기는 하지만 3월은 3월이라 겨우내 조용했던 캠퍼스가 분주해졌다. 방학을 지내고 다시 만난 학생들이 여전히 활기차고 발랄해 보이지만, 개강 일주일 만에 고민보따리를 안고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걸로 보아 졸업이 가까워지는 만큼 마음도 무거워지는 모양이다. 

6년인가 7년이 지나면 체내의 모든 세포가 다시 태어나 ‘생물학적으로 새 사람’이 된다는 과학자들의 농담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 우습지 않은 농담이겠지만 터무니없는 얘기만은 아니다. 우리 몸은 어제나 오늘이나 같아 보이지만 사실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은 계속해서 분열하고 죽어나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성인의 경우 60조개 전후의 세포가 있다고들 하는데, 종류에 따라 각 세포의 수명이 다르다. 

예컨대 대장의 일부인 결장 세포는 3~4일마다, 피부 세포는 몇 주마다 다시 만들어지지만, 뼈세포는 수십 년을 산다. 적혈구는 몇 달마다 만들어지지만, 백혈구는 1년도 넘게 살 수 있다. 그러니 아닌 게 아니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온 몸의 세포가 이전 시점에 존재하던 세포와는 완전 다른 때도 있기는 할 것이다, 뇌세포만 빼고. 대부분의 뇌세포는 한 번 태어나면 평생 동안 대체되지 않는다. 

온 몸의 세포가 바뀌는데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교체된 새 세포가 이전 세포가 하던 일을 그대로 정확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어쩌면 여전히 바뀌지 않는 뇌세포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성인의 뇌세포는 전혀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오랜 학계의 정설이었다. 수뇌부가 바뀌지 않고 수족들만 바뀌는데 무슨 변화를 느낄 수 있겠는가. 기본 철학과 기조가 바뀌지 않았는데 정책의 이름이 무엇을 변화시키겠는가. 그러다 1960년대, 성인의 뇌에서도 일부 뇌세포가 다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 후로 ‘대부분의’ 뇌세포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걸로 정리되었다. 이후 성인의 뇌에서 태어나는 뇌세포에 많은 과학자들이 주목해 왔다. 새로 태어난 젊고 신선한 세포라니, 뇌기능 강화에 중요하고 지대한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안고서. 

취업률과 졸업 유예비율 및 대학원 진학률 등 우울한 숫자들과 2월을 보내고 3월이 되면 나는 여전히 대학 신입생 시절처럼 온 몸의 세포가 새 세포로 교체된 것 같은 새롭고 긍정적인 기분이 든다, 단순히 세로토닌이 과다하게 분비되어 그렇겠지만. 그러면서 다시 고민한다. 세포에서 시작해 인공장기를-심지어 미니 인공뇌 (비슷한 구조물)까지-만드는 알파고의 시대에 대학의 선생들은 또 학생들은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교육과 대학도 일정한 시간차를 둔 인간의 몸처럼 완벽하게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지난 7일자 네이처지에는 그간 많은 과학자들의 기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춘기 이후 성인의 뇌에는 새로 생겨난 세포가 사실은 거의 없다는 충격적인 논문이 실렸다. 사람의 뇌조직 샘플을 보다 정밀해진 방법으로 연구해보니, 13세까지의 샘플에서는 새로 생긴 뇌세포가 발견되지만 18세 이후 성인의 뇌에는 새 뇌세포가 거의 없더라는 내용이다. 신입생과 재학생들로 분주한 캠퍼스를 내려다보며 신규 개설 교과목과 각종 최신 학내 프로그램의 세련된 이름 너머로 그동안 교육계와 대학이 시도했던 변화들의 실효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개강을 맞아 과다하게 분비되는 세로토닌 기운 사이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3월이다.

정지혜 편집기획위원/건국대·신경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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