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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계문명으로 달려가는 인류가 다양성을 지키려면?
하나의 세계문명으로 달려가는 인류가 다양성을 지키려면?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3.12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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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류재화 옮김, 문예출판사, 2018.3)

원시 사회는 현대 사회보다 정말 열등했을까? 서구 문명은 다른 문명권에 비해 과연 진보된 문명이었을까? 인종, 역사, 문화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질문들에 인류학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왔다. ‘서구 문화 패권의 종말’을 선언하고 ‘문화상대주의’를 비판했던 저명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레비-스트로스가 1986년 일본 이시자카 재단에 초대받아 3차례 강연한 것을 엮어 낸 책,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가 문예출판사에서 발간됐다. 문예출판사는 최근 무게감 있는 신작 번역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난해 질 리포베츠키의 『가벼움의 시대』(이재형 옮김, 2017.12)에 이어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가 발간됐고, 다음 번역서로는 하비 콕스의 『신이 된 시장: 시장은 어떻게 신적인 존재가 되었나』, 로널드 랭의 『자아』 등이 출간 대기중이다.

철학과 역사학이 볼 수 없는 것들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는 강의실에서 그가 한 말을 마치 그대로 지면에 옮겨놓은 듯 해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술술 읽힌다. 레비-스트로스의 독자라면, 그가 줄곧 제기해 왔던 우월한 서구문화의 허구성, 문화우열비교에 따른 도덕적 판단 등을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갑기도 하다. 세 차례의 강연을 통해 래비-스트로스는 인류학은 어떤 학문인지, 또 미래의 사회과학에서 더 중요한 위치를 점유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차분하면서도 분석적인 어조로 설명하고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 인류학이 갑자기 정초된 학문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철학과 역사학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기 꿰뚫어보기 위해 필요 불가결하게 고안된 일종의 방법론이란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그 스스로 인류학에 입문하기 전 철학교수 자격시험을 준비하며 기계적으로 훈련했던 도식에 대한 절망감을 토로하면서 말이다. 다소 길지만 『슬픈 열대』에서 그의 말 한 대목을 인용해보자. “그 무렵에 나는 중대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간에 모든 문제는 항상 동일한 어느 방법을 적용시킴으로써 처리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그 방법이란 우선 어떤 문제에 관한 두 가지 전통적인 견해를 대치시켜 놓는 것이다. 그러고는 상식으로 정당화시킨 첫 번째 견해를 도입한 뒤, 두 번째 견해로써 둘 다 파괴시키는 것이다.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제3의 견해를 사용해 앞서의 두 견해가 서로 등을 돌리게 해보면, 양자가 똑같이 부분적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즉 첫째와 둘째의 견해는 용어상의 기교를 통해, 동일 실재의 상호 보충하는 두 측면으로 환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형식’과 ‘내용’, ‘용기’와 ‘내용물’, ‘존재’와 ‘외견’, ‘연속’과 ‘불연속’, ‘본질’과 ‘실존’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수련은 사고 대신에 말장난을 하는 일이며, 따라서 결국은 말에서의 문제로 그쳐버리고 만다. 그것은 용어 상호간의 유음·동음·다의와 같은 것이며, 그것들은 차차 순전히 관념적인 보기를 만들어내는 데밖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훌륭한 철학 연구란 그것을 교묘히 이용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었다.”(『슬픈열대』, 한길사, 1998, 161p)

레비스트로스
레비스트로스

현대인이 직면한 문제에 답하는 학문

1986년의 강의를 책으로 엮었지만, 부제(「오늘날의 문제들에 답하는 인류학」)도 의미심장하다. 이미 20년 전 인공수정, 경제현황, 과학적 사고와 신화적 사고의 관계를 언급했던 레비-스트로스는 강연에서 다양한 형태의 ‘이념 폭발’과 그로 인한 ‘체제 유지주의 혹은 보수주의’의 유착성에 대해서도 논한다. 그래서일까. 2018년을 사는 우리에게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는 현대인이 직면한 문제를 정의하고 파악하는 데에 ‘인류학’이 꼭 필요한 학문임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레비스트로스는 강연을 통해 현대인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자 없는 사회에 대한 연구’가 부분적으로 해답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그는 사회를 가족 및 사회조직, 조직의 경제생활, 종교적 사고의 세 측면에서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론은 늘 동일하다. 현대사회 문명이 다양서을 얼마나 단일한 획일성으로 표준화하며 세상을 균질한 것으로 만드는지, 그리고 그것을 진보라고 믿는지 비판하는 것이다. 
“인류학은 우리 문화와 비교해봤을 때 너무나 충격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다른 문화의 풍속과 종교도 하나의 체계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몇 세기가 흐르면, 어떤 체계든 그 체계의 내적 균형이 생깁니다. 혹여나 이 전체에서 한 요소는 제거할 수 있어도 나머지를 다 파괴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진보한다는 믿음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의 구조주의 방법론이 수시로 변하는 현상 뒤에 숨은 어떤 근본인 ‘내적 원리’를 탐색하는 작업이라고 세 차례의 강연 안에서 수시로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은 ‘비교론’을 가장 경계한다. 그는 강연에서 일본 목수가 서양 목수와 반대 방향으로 톱과 대패를 사용하는 것에 주목하는 것, 뗀석기와 간석기로 역사 시기를 구분 짓는 것은 인류학의 방법론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옮긴이 류재화의 말을 들어보자. “인간은 진보한다는 믿음 아래 자연과 문명을 나누고, 원시인과 현대인을 나누는 상투적 관념성은 구조주의 방법론을 통해서 보면 완전히 무용한 것이 되고 만다. 인류학은 이 모든 차이의 다양성을 차라리 ‘共時的’이라 본다. 우리 현대인에게도 원시인의 사고 체계가 분명히 있다. 빼어난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 우리가 접하게 되는 고차원적인 비유와 상징체계가 그것이다.”

세 강연에서 레비스트로스가 끌어내고 싶었던 결론은 단순하다. 우리는 문자 없는 사회를 기술적·경제적 수준이 낮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와 비교하지만, 그들 사회와 우리 사회의 간극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문화들을 서로 비교해 가치를 따지고, 판단을 부여하더라도 도식화 하는 것은 금해야 한다는 것, 민족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연을 마무리 지으며 레비-스트로스는 선언한다. 지리적 거리와 언어적·문화적 장벽에 의해 분리됐던 집단들이 점차 하나로 섞임으로써 수십만 년 동안 지속됐던 세계가 끝났다고. 각자 집단을 이뤄 생물학적·문화적으로 다른 삶의 방식을 발전시켜온 세계는 사라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 질문한다. 산업문명으로 장벽이 허물어지고, 발전의 기회들은 사라졌으며, 새로운 유전적·문화적 결합이 생성되고 있는 지금, 인류는 어떻게 다양성을 지킬 것인가? 인류가 하나의 세계문명을 향해 가는 지금, 다양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될지 모르는 이 시기에 인류가 모색해야 할 길은 무엇인가? 1986년에 레비-스트로스가 던진 질문은 2018년에도 유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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