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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없는 자식
아비없는 자식
  • 서규환 인하대
  • 승인 2003.05.29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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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서규환/ 인하대 정치외교학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학문적으로 나는 아비없는 자식이었다. 1970년대, 대학의 문은  닫혀있을 때가 훨씬 더 많았다. 그 때까지 나를 가르친 것은 대학의 교수들이 아니었다. 서점의 책들이 나를 키웠다. 문학, 예술, 철학, 사회과학 등의 경계를 별다른 부담을 느끼지 않고서 넘나들었다. 이 '불량한', '산만한' 독서의 행로가 정당하다는 느낌 같은 것은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책들을 읽고서 점차로 강해졌다. 오늘날 학제적 연구라 부르는 것의 모범이 이미 그것들 속에는 성숙해 있었다. 학제적 연구는 전공이 다른 연구자들이 개별적으로 연구한 결과들을 산수적으로 한 곳에 모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주제의 질적 본질에 관한 것이다. 전문화와 분화에서 파생하는 종합적 통찰력의 빈곤이나 왜곡을 넘어서려는 데에 그 본질과 의의가 있다. 그러므로 연구자는 학제적이어야 한다. 학제적 연구자가 되려면, 상대적으로 좀더 긴 시간과 강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는 독일 빌레펠트대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 제3세대의 기수 클라우스 오페 교수와 사회사적 개념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라인하르트 코젤렉 교수 아래 박사학위논문을 쓰던 중 딱 한번 한국을 다녀갈 수 있었다. 그 때 나를 아껴주던 한 교수는 "박사학위논문을 빨리 끝내고 귀국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충고했다. 실망이었다.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돌아와야 한다"는 말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학자이며 사회학자인 오페와 역사학자 코젝렉은 나를 박사로 만들어준 부모로서, 논문을 언제까지 완성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칼렌다와는 무관하게 그들은 각기 자신의 방식으로 나를 지도했다. 졸업기준은 칼렌다가 아니라 완성도였다. 오페 교수는, 단 한번의 예외가 있었기는 하지만, 글을 제출하면 일주일 정도 안에 논문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제시해주는 방식이었다. 늘, 칭찬은 인색했고 결함에 대한 논평은 가혹했다. 예외는 박사학위논문 심사가 끝난 다음에 일어났을 뿐이었다. 코젤렉 교수는 나의 어깨가 으슥해지도록 칭찬하고서는 어머니처럼 부드러운 음성으로 읽어야 할 책들을 말해주는 방식이었다. 권유하는 책들이 비판이었다. 형식과 내용에서 서로 다른 이 두 비판들 사이에서 나의 사유는 넓어지고 깊어진 것 같다.

 칼렌다를 무시하고, 논문을 완성하고, 나는 귀국했다. 그 교수의 예언적 진단대로 나는 고생했다. 그렇지만 교수가 된 다음, 나는 부모로부터 배운 방식을 모방해 학위논문을 지도한다. 물론, 진정한 모방은 모사를 넘어선다는 것 역시 배운 것이다. 우선, 나는 내가 지도할 수 있는 주제만을 지도한다. 나의 독일 지도교수는 한국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한국문제를 지도하지 않았다. 학위논문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그 논문의 언어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학위논문의 주제와 관련해 세미나를 함께 하는 방법을 택한다. 이 방법은 제자의 논문을 지도교수가 통제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 믿는다. 오페 교수의 마르크스세미나와 코젤렉 교수의 루소세미나는 내가 사유하는 문제틀을 체계화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였다. 또한, 학위논문 글을 제출하면, 매번 최우선으로 그것을 읽고, 곧게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관련되는 책들을 읽게 한다. 때로는 밥을 같이 먹으며 부드럽게 비판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학위논문통과기준을 칼렌다가 아니라 완성도로 삼는다. 그러므로, 나는 대학원을 시작하는 그들에게 두 가지를 말한다. 그 하나는 완성된 이층양옥집에서는 사람들이 살 수 있지만 미완성된 초고층빌딩에서는 사람들이 생활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완성하려는 건물의 규모를 입학한 그 처음부터 구상하고, 건물의 얼굴, 그 미학적인 차원까지 미리 고려하고 언어를 조탁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마도 나의 제자들은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은 자신들의 발걸음을 막아서며, 아직은 멀었다고 비판하는 나에게서 아버지의 폭력을 느꼈을 지 모르겠다. 이것이 정당하다는 것은 오직 밖으로 나간 그들이 논문의 완성도와 질에 따라 평가받을 때일텐데, 한국의 현실과 세평은 아직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국에서 여전히 어느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는지만을 보는 한, 아비를 버린 자식들은 아비없는 자식들과 함께 세대를 넘어 해외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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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2003-06-04 15:39:00
생활이라는 현실에 눈뜨기 전 학문의 길을 택한 사람이라면 분명 학문하는 삶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교수의 삶이나 말을 듣고서 그러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교수의 말 하나만을 믿고서 배고픈 공부의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공부의 어려움과 그것을 극복했던 교수의 지난 삶은 사석에서 자신의 말을 통해 마치 영웅처럼 그려지며 자신은 어떠 어떠한 교수밑에서 누구와 함께 이렇게 저렇게 공부했다고 말하면서 그러한 이들이 현재 사회의 좋은 위치에 있으며 자신이 이들과 동류라는 것을 자랑삼는다. 물론 이것이 학생들에게 부작용만 낳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교수 정말 대단하구나" 이런 생각으로 자부심을 갖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학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성실히 그들을 지도한다면 그것은 별 문제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말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실제에 있어서는 학생을 지도하기 보다는 온갖 세상의 명예와 영욕을 좇아 학교 내외의 보직따라 움직이는 철새 놀음을 하며 그러한 업무를 학생들에게 던져주면서 그것을 처리하는 것도 공부라고 하면서 생활을 보류한 무능한 성인으로 취급당하는 대학원생들의 시간과 정열을 소진시키는 교수라는 작자가 우리 나라의 대학에 얼마나 많은가?

그러면서도 핑게는 언제나 학생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 지방대학이라서 어쩔 수 없다. 교수가 잘 되야지 학생도 길이 있는 것 아니냐 하며 모든 핑게는 학생에게로 돌려버린다. 학생은 스스로 자신의 무능함을 이제 명확하게 교수로부터 낙인받게 된다.

이 땅의 대학 교수님들 진정 당신의 지금 모습은 학문하는 이의 모습입니까? 정말 당신이 받았던대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늘 학생들에게는 베고픈 소크라테스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떠들면서 연구실에 앉아서 가증스러운 배부른 소크라테스를 그리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까?

어찌 선생들이 자신의 삶의 모습이 바담풍이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바람풍하지 않는다고 꾸짖는 겝니까?

* 이 글은 절대 서규환 교수님께 드리는 글이 아니라 교수 신문이기에 올리는 글입니다. 진정 참된 학자이기만을 바라며 연구와 교육에 매지하는 교수가 이 땅에 몇이나 될런지, 참된 학자 운운하며 사기꾼으로 살아가는 이가 더 많은 것은 아닌지... 서규환 선생님의 글을 보고서 반성하고자 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