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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논쟁의 역사로 탄생한 과학
치열한 논쟁의 역사로 탄생한 과학
  • 김재호
  • 승인 2018.03.08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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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과학자 교수들, ‘과학’을 논하다

 

과학과 과학철학의 한 판 승부가 펼쳐졌다. 재단법인 카오스와 과학 저술가이자 천문학자인 이명현 씨가 기획한 『과학은 논쟁이다』에는 교수 8명이 참여했다. 지난 2017년 봄, 과학자 8명이 두 명씩 각각 과학자와 과학철학자가 월요일 격주로 카오스 홀에 나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물인 이 책은 4개의 과학 논쟁을 다룬다. 바로 ▷과학일반 ▷양자이론 ▷복잡계 물리학 ▷생물학이다. 

질문들은 이렇다. 첫째, 과학(물리법칙)은 정말 존재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부산물에 불과한가? 둘째, 양자이론은 완벽한 이론인가? 셋째, 물리학이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까? 넷째, 생물학으로 인간의 본성을 밝혀내고,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과학은 단지 과학자들만이 발전시키지 않는다. 과학철학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아인슈타인은 철학적 사유를 매우 중요시했다. 그는 철학적 배경 지식만이 과학자들의 마음을 편견에서 독립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책은 강연의 수와 같이 총 4개의 장로 구성됐다. 1장 「과학일반 논쟁」은 홍성욱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가 과학철학자 역할을 이강영 경상대 교수(물리교육과)가 과학자 역을 맡았다. 여기서 역할은 명목상 지칭한 것이며, 책을 읽다보면 모든 교수가 과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의 심정으로 토론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과학일반 논쟁」의 주제는 ‘물리 법칙은 자연에 존재하는가, 인간이 만든 것인가’ 그리고 ‘과학에서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였다. 

홍성욱 교수는 물리 법칙을 인간이 만든 것이라 주장했다. 교수는 복잡한 자연 현상에서 추상화되고 이상화된 요소를 뽑아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고 창조하는 것이 법칙이라며 법칙을 ‘발명’의 측면에서 설명했다. 과학은 인간의 창의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이며, 중력과 만유인력 역시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발견한 게 아닌 뉴턴이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자연을 이해되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게 과학의 역할인 것이다. 이강영 교수는 법칙이라는 단어에는 어느 정도 제한이 붙는다며 홍성욱 교수의 말을 수긍하였지만, 원리들이 관찰 사실로부터 곧바로 추론가능하다는 ‘발견’의 측면으로 반박했다. 
 
모두가 과학자이자 과학철학자

이강영 교수는 ‘과학에서 본다는 것이 무언인가’라는 주제를 논했다. 원자나 중성미자와 같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의 경우 X선, 전자 빔, 약한 상호작용과 같은 신호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본다는 개념 자체를 실험 데이터와 과학적 추론으로까지 확장한 것이다. 이에 홍성욱 교수는 보는 것에는 과학자들의 많은 조작이 가해지기에 완벽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과학에서 본다는 건 육안이 아닌 대부분 기기를 통해서이며 갖가지 훈련과 이론, 해석과 패러다임 그리고 과학자들의 논쟁과 이견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본다’는 개념에도 실재하는 대상의 본질과 무관하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반박을 펼쳤다.  

2장 「양자이론 논쟁」에는 ‘양자이론이 과학과 철학 어디에 더 쓸모 있는가’ 그리고 ‘양자역학이 세계를 완벽하게 기술하는가’의 주제가 제시됐다. 주제의 중심 제재는 빛과 이중슬릿 실험이었다. 김상욱 부산대 교수(물리교육과)와 이중원 서울시립대 교수(철학과)의 논쟁을 따라가려면 먼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이해하고 있어야 할 정도로 청중이나 독자 입장에서도 쉽지 않다. 

전자가 이중슬릿을 지날 때 어느 구멍을 지났는지 확인하려 하면 그 순간 측정을 하지 않았을 때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전자가 구멍을 지났는지를 측정하지 않으면 전자는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나는 파동처럼 행동해서 여러 개의 줄무늬가 되지만, 측정을 하면 전자는 입자와 같이 행동해 오른쪽, 왼쪽으로 두 개의 줄이 된다. 

양자역학은 볼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런 대상을 측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결과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김상욱 교수는 양자역학은 우리 경험과 다르지만 이상한 학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중원 교수는 인식론의 관점에서 양자역학 실험을 설명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과학 이론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다. 이 교수는 기구에 의한 관찰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인간과 연결돼 있고 인간에 의해 충분히 해석된다면 결코 무의미한 정보가 아니라 주장했다. 

한편 이중원 교수는 측정을 통해서 사물을 인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식이라는 절차를 통해서만 대상 세계의 실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측정 도구만으로 사물을 보지 않고 개념 체계로도 사물을 보기에 양자역학은 미시세계에 대한 이해 도모를 위해 인류가 그동안 쌓은 개념 체계와 수학적 도구들을 다 동원하는 이론일 뿐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에 김상욱 교수는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을 해석하는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인식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볼 수 없는 영역을 인식하는 인간, 한계는 뭘까

과학 철학자가 과학에 불만을 토로하고, 과학자들은 몇 가지 실험 증거를 토대로 자각한다. 토론은 3장 「복잡계 물리학 논쟁」과 「생물학 논쟁」으로도 이어졌다. 복잡계 논쟁에서는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물리학과)와 이상욱 한양대 교수(철학과)가 맞붙었다. 통계적 예측은 거시적 결과를 얻는데, 동역학적 예측은 미시적 결과를 얻는 데 쓰인다. 사물의 이치를 뜻하는 물리(物理)가 모든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가 주요 토론 주제였다. 물리학과 사회 현상은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때문에 두 영역이 어떤 지점에서 만날지는 알 수 없다는 데 두 교수 모두 동의했다.

4장 「생물학 논쟁」은 생물학이 인간 본성을 밝힐 수 있는지 없는지 다소 윤리적인 주제가 제시되었다. 과학자 역할의 송기원 연세대 교수(생화학과)는 생물학이 밝힐 것은 본성 자체가 아니라 본성이 작동하는 방식이라면서 인간이 환경과 관계 맺으며 학습하는 게 본성이 된다는 주장을 폈다. 송 교수는 밈(meme)이라고 부르는 우리가 환경과 관계 맺는 방법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과학철학자 장대익 서울대 교수(자유전공학부)는 생물학이 인간 본성을 상당 부분 밝혀낼 수 있고 그 이상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펼쳤다.  

본성과 본성 작동 원리

이어서 생물학으로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토론 주제가 제시됐다. 이에 대해 송기원 교수는 현대 생물학이 인간의 유전 정보를 다 읽어냈다지만 유전 정보를 해독하지 못하고 있기에, 우리가 앞으로 어디로 가야 될지에 대해서 전혀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대익 교수는 생물학으로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자연을 건드리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부류라고 장 교수는 반박했다. 자연은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인간 역시 마찬가지이기에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학은 사실 논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논쟁 없이 성장하지 못한다. 과학이 자연의 작동 원리를 밝히려고 애를 쓰고 있다면, 과학철학은 과학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밝히려 애를 쓴다. 이 책으로 치열한 역사 속에서 과학이 수없이 겪었을 고뇌의 장을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다.  

국내 과학자와 과학철학자 8명이 과학의 주요 쟁점을 토론했다. 그 결과가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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