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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학력, 액티브 러닝의 함정
새로운 학력, 액티브 러닝의 함정
  •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 승인 2018.03.05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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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를 규정한 냉전은 1989년 몰타 회담과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종결됐으며, 대체로 이 사건은 현대사의 분기점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 유럽 이외의 지역을 보건대 냉전의 종결이 반드시 세계사 전체의 전환점이 됐다고 할 수는 없다. 미국과 소련의 ‘新냉전’이라고 불린 시대에 세계 각지에서 1990년대 이후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위 사실을 토대로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의 동아시아, 중동, 중남미의 정치상황의 변화에 대해 논하라. 답변은 (중략) 20줄 이내로 기술하되 반드시 다음 8가지의 키워드를 1회 이상 사용하고 그 밑에 줄을 그을 것./ (NIES, 이란 이슬람 공화국, 그레나다, 광주 민주화 운동, 사담 후세인, 시나이 반도, 덩샤오핑, 포클랜드 분쟁)” 

도쿄대 2016년도 세계사 입시 문제다. 이런 유형의 문제는 단편적 지식의 암기만으로는 답안을 쓸 수가 없다. 제대로 된 답을 쓰기 위해서는 관련 지식의 ‘암기’에다 평소에 ‘왜 그렇게 될까’라는 의문을 던지고 흐름을 파악하는 ‘문제 해결형 사고’가 필요하다. 

학력의 양상이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학력을 길러서 지향해야 할 ‘목표’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창의성, 표현력, 소통력에 기반한 문제 해결 능력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목표가 바뀌면 이를 준비하기 위한 학습방법도 달라진다. 이와 관련해서는 ‘액티브 러닝’(active learning)이라 불리는 학습방법이 주목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2020년부터 실시될 ‘新학습지도요령’ 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사이토 다카시(齋藤孝) 메이지대 교수(교육학)는 액티브 러닝을 중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사이토 다카시의 진정한 학력』(김나랑 역, 지식의날개, 2018). 그는 이 책에서 액티브 러닝을 ‘새로운 학력’이라 하였는데, 교과서 없이도 개인이 주체적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생각한 후 이를 타인과 공유·심화해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문제 해결형 학력’을 말한다. 그리고 교과서처럼 체계적으로 정리된 지식을 암기하고 재생하는 능력을 기본으로 삼는 것을 ‘전통적 학력’이라고 하였다.

‘새로운 학력’을 추구하는 경향은 이를테면 전 세계적으로 ‘PISA형 학력’을 중시하는 것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PISA란 OECD 가맹국이 주관하는 국제 학생평가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지식 암기 수준을 평가하지 않고, 실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제출하고 학습자의 지능과 기술을 이용하여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를 평가한다.

그런데 이 PISA의 2015년 랭킹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새로운 학력’ 교육의 본보기로 자주 거론되는 미국은 평가영역인 독해, 수학, 과학 능력 분야에서 각각 24위, 39위, 25위에 그치고 있다. 이에 반해 ‘전통적 학력’ 기반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상위를 독차지하고 있다. 사이토 다카시는 이 원인을 기초 지식에 대한 교육의 유무에서 찾는다. 

한편, 새 시대에 맞는 인재 육성을 목표로 시도됐던 일본의 ‘유토리’(ゆとり) 교육은 20년 만에 실패를 자인하고 말았다. 심각한 학력 저하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유토리 교육은 학습내용의 30% 축소, 수업시간 단축, 주 5일 등교, 과목 횡단형 ‘종합적 학습시간’의 신설을 골자로 한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 따른 폐해를 없애고 학생들에게 여유(유토리)를 주자는 취지였다. 실패 원인으로는 연구 능력과 교육적 센스가 있는 교사 양성에 실패했다는 점, 객관적 평가가 어렵다는 점, 평가기준을 명확히 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꼽힌다. 취지는 그럴듯했으나 실천이 어려웠다는 것.

그렇다면 미래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하다는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이토 다카시는 기초 지식 습득 중심의 ‘교육 내용’을 지루한 주입식이 아닌 ‘액티브 러닝 방식’으로 학습시키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교육부의 「ICT 연계 교육서비스 추진계획」(구영실 외, 2017 KERIS 보고서)을 보면, 향후 중점 추진과제로 학습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실감형 콘텐츠 개발’, 학습자 진단 및 처방이 가능한 ‘지능형 학습분석 플랫폼’ 구축, 교육용 콘텐츠 공유 및 활용이 가능한 ‘오픈마켓’ 구축, 학교에서의 ICT 교육 활용도 제고를 위한 ‘클라우드 체제’ 구축, 학습지원체제 강화 등이 열거돼 있다. 

이러한 방법적인 혁신은 지식의 생산 및 소비 환경 변화에 맞추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너무 표피적인 것에 치우치면 유토리 교육처럼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사이토 다카시의 제안대로 문제해결력의 기초가 되는 지식을 제대로 함양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전히 전인교육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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