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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케어는 진정한 ‘미국의 법’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까
오바마케어는 진정한 ‘미국의 법’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까
  • 정웅기 존스홉킨스대 박사과정·정치학
  • 승인 2018.03.0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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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질문 하나로 시작해보자. 미국의 보건의료 체계는 세계 최고일까? 뻔한 질문 같지만, 어떤 측면을 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답변이 가능하다. 많은 분야가 그렇듯이, 미국의 의료기술 발전과 혁신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일례로 전 세계 의료기관 평가에서 하버드, 스탠포드, 존스홉킨스와 같은 미국 주요 대학의 의과대학 및 대학병원은 연구 수준에서 거의 언제나 수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대수명, 사망률, 영아사망률 및 모성사망비, 주요 질환 유병률 등을 포함한 상당수 건강결과(health outcome) 지표에서 미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들 가운데 평균 이하에 머물고 있다. 비용지출의 측면에서 보면 사안은 더욱 심각하다. 2016년을 기준으로 OECD 국가들이 평균적으로 국민소득의 9%를 보건의료 비용으로 지출하는 데 비해, 미국은 18%를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하자면,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보건의료에 훨씬 많은 돈을 쓰면서도 그에 값하는 효과는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바바라 조던 컨퍼런스 센터(Barbara Jordan Conference Center) 장내 회의 전경. 카이저 패밀리 재단 워싱턴 사무소(Kaiser Family Foundation, Washington Office)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다.
바바라 조던 컨퍼런스 센터(Barbara Jordan Conference Center) 장내 회의 전경. 카이저 패밀리 재단 워싱턴 사무소(Kaiser Family Foundation, Washington Office)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다.

보건의료 개혁사는 실패의 역사

이러한 심각한 비효율성을 감안할 때, 보건의료 개혁 의제가 미국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보편적 건강보험제도의 달성이 여전히 미국 자유주의 세력의 오랜 과제이자 숙원이라는 사실은 그에 관한 한 가지 방증이다. 그러나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을 확립한 1935년 이래로 트루먼, 존슨, 클린턴에 이르는 보건의료 개혁의 궤적은 숱한 실패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평가되는 2010년의 건강보험개혁법(The 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 이른바 ‘오바마케어’(Obamacare)는 이러한 역사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바마케어는 그 출발부터 공화당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오마바 행정부 내내 50차례가 넘는 폐기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트럼프의 당선, 그리고 상·하원의 과반의석 확보와 함께 폐기 시도는 뚜렷한 동력을 확보한 것처럼 보였다. 2017년을 돌아보면 이같은 시도가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연말에 의회를 통과한 감세안을 경유해 공화당은 마침내 오바마케어의 중핵 가운데 하나인 개인 의무가입 조항(individual mandate)을 제거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지난해 내내 오바마케어를 폐기하려는 노력은 당내 분열로 인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정웅기. 2017. 「개혁 ‘이후’?트럼프 시대의 미국 보건의료정책과 정치」 <보건복지포럼> 통권 제246호, 88-103쪽). 

공화당의 이른바 ‘폐기와 대체’(repeal and replace) 시도는 또 다른 반향을 낳았다. 공화당의 공세에 맞서 민주당이 보다 강력한 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당시 어떤 민주당 의원의 지지도 받지 못했던 버니 샌더스의 ‘메디케어 포 올’(Medicare for All) 법안이 지금은 다음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후보들을 포함해 16명의 상원의원이 공동발의한 상태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후에도 다양한 안이 민주당 내에서 제기됐다. 예컨대 콜로라도의 마이클 베넷(Michael Bennet)과 버지니아의 팀 케인(Tim Kaine) 상원의원이 발의한 ‘메디케어 엑스’(Medicare X)는 샌더스 안과 마찬가지로 모든 미국인이 공공보험을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단일지불자(single-payer) 제도의 수용을 통해 보건의료 체계의 근본적 전환을 꾀하는 샌더스 안과 달리 기존 제도 내에서의 개혁을 선호한다. 따라서 이 안에 따르면, 공공보험은 오바마케어에 의거해 설립된 현행 건강보험시장(health insurance marketplaces)에서 거래되는 한 가지 선택지가 된다. 이는 특히 시장이 잘 작동하지 않아 보험사가 한 개 이하로 존재하는 농촌지역을 감안한 정책이다. 

학술회의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보건의료 개혁의제: 모든 미국인들이 적절히 누릴 수 있는 좋은 의료로 가는 길〉(Health Reform 2020: Towards Affordable, Quality Care for All Americans)의 포스터
학술회의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보건의료 개혁의제: 모든 미국인들이 적절히 누릴 수 있는 좋은 의료로 가는 길〉(Health Reform 2020: Towards Affordable, Quality Care for All Americans)의 포스터

이같은 정세 속에서, 지난 1월 11일 워싱턴에서는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보건의료 개혁의제: 모든 미국인들이 적절히 누릴 수 있는 좋은 의료로 가는 길’(Health Reform 2020: Towards Affordable, Quality Care for All Americans)이라는 주제로 학술행사가 열렸다(학술회의 발표문과 해당 영상 링크: https://tcf.org/topics/economy-jobs/health-care/health-reform-2020/). 이는 향후 미국 보건의료 개혁의 전망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의 대표적 보건의료 정책 씽크탱크인 카이저 패밀리 재단(Kaiser Family Foundation)의 컨퍼런스 센터에서 개최된 이 회의에서는 진보적 성향의 정치-정책매거진 <아메리칸 프로스펙트>(American Prospect)가 센트리 재단(The Century Foundation)과 공동으로 발간한 보건의료 개혁 보고서가 발표됐다. 여러 정책전문가와 전-현직 관료들이 자리한 가운데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여기서는 그 중 세 가지 핵심 개혁안을 간략히 검토한다. 

제이콥 해커(Jacob Hacker) 예일대 교수가 제시한 안은 ‘메디케어 파트 이’(Medicare Part E)의 신규 설치를 그 중핵으로 한다. 모든 사람(Everyone)을 의미하는 이 명칭은 기존의 메디케어를 구성하는 파트 에이(병원보험), 파트 비(외래보험), 그리고 파트 디(약제보험)에 더해 직장보험이나 메디케이드에 가입돼 있지 않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메디케어 프로그램을 가리킨다. 샌더스 안과의 결정적 차이는 고용주의 역할에 있다. 샌더스 안의 재원이 세금으로 충당되는 데 반해, 여기서는 연방정부가 정한 요율에 따라 고용주가 보험료를 납부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기업은 파트 이 수준에 준하는 직장보험을 제공하거나 이를 위한 공여금을 내야 한다. 해커는 고용주의 역할을 보존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 방안이 메디케어 포 올보다 정치적으로 더 현실적인 개혁안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폴 스타(Paul Starr)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른바 ‘미드라이프 메디케어’(midlife Medicare) 안을 내놓았다. 그의 제안은 현행 65세 이상에게만 적용되는 메디케어를 50세에서 64세까지 인구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의료비 통제를 강조한다. 2003년에 제러드 앤더슨(Gerard Anderson)과 우버 라인하르트(Uwe Reinhardt) 등이 <Health Affair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의료비가 높은 이유는 사람들이 서비스를 많이 사용해서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 비해 그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그는 메디케어에서 책정된 요율을 민간 의료보험에도 적용할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이는 민간보험에 지출 상한(cap)을 설정하는 효과를 낳게 된다. 스타는 이러한 가격 규제가 메디케어 엑스보다 미드라이프 메디케어가 정책적으로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는 핵심 기제라고 주장한다. 

끝으로, 컬럼비아 대학의 마이클 스페러(Michael Sparer)는 메디케이드를 비보험인구로 확장하는 ‘메디케이드 바이인’(Medicaid Buy-in)을 제안했다. 의회에서도 하와이의 브라이언 새츠(Brian Schatz) 상원의원이 발의한 동일한 취지의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스페러는 연방정부가 주관하는 전국 프로그램으로서 메디케어 모델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랫동안 여러 주의 보건의료 개혁 연구에 천착해온 경험을 토대로, 그는 메디케어를 근간으로 한 보편적 건강보험의 실시가 가능해질 때까지 개혁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늘날 메디케이드가 대중뿐 아니라 의료공급자와 보험사, 고용주로부터 누리고 있는 높은 인기와 초당파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그는 주 수준에서 먼저 보장성을 적극적으로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혁 아이디어를 둘러싼 이같은 백가쟁명은 향후 미국 보건의료의 지형이 어떻게 변화할지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다. 보건의료 개혁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이는 동시에 오바마케어가 진정한 ‘미국의 법’(law of the land)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지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정웅기 존스홉킨스대 박사과정·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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