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20:50 (목)
“백과사전을 베껴도 표절이 아니라고?”
“백과사전을 베껴도 표절이 아니라고?”
  • 이해나
  • 승인 2018.03.05 1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년간 이어진 한태식 동국대 총장의 논문 표절 논란, 해법은?

“이번 사건(한태식 동국대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은 더 이상 동국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연구윤리 전반에 경종을 울리는 사안입니다.” 

지난달 27일 동국대 서울캠퍼스에서 만난 김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 동국대 지부장(멀티미디어학과·사진)이 말했다. 그는 인터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6일 민교협 등 4개 단체가 주최한 ‘동국대학교 한태식 총장 표절 무혐의 판정 한국연구재단 규탄 기자회견’에서도 강경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날 4개 단체는 성명서를 내고 교육부에 재조사를 촉구했다. 

논란이 된 논문은 한 총장(법명 보광)이 지난 2013년에 쓴 「서산대사의 정토관」이다. 이 논문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중 총 4쪽을 베꼈다는 것이 4개 단체의 주장이다. 이 논문은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HK)지원사업의 연구 결과물이었다. 표절로 판명된다면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한 연구비를 회수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직접 조사에 착수한 한국연구재단은 지난해 10월 ‘총 5개 불교학회의 통상적 판단 기준을 조사한 결과 2013년 기준 백과사전의 인용 표시 없이 인용한 행위에 대해 제재 기준이 없어 이를 표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정을 내렸다. 김 지부장은 “제자들에게 할 말이 없다”며 “안 된다는 세부 규정이 없으니 앞으로 논문을 쓸 때 백과사전을 그대로 베끼라고 가르쳐도 된다는 뜻이냐”고 말했다. 그는 “동국대 구성원뿐만 아니라 공정한 연구 학술 활동을 위해 애써 온 모든 연구자의 의욕을 꺾는 비상식적인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한 총장의 논문이 표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정한 한국연구재단은 예산 4조8천17억원(지난해 2월 기준)을 운용하는 교육부 산하의 대표적 연구지원기관이다. 4개 단체는 한국연구재단의 판정 과정이 석연찮다고 주장한다. 한국연구재단은 ‘5개 불교학회의 전·현직 학회장 또는 편집위원장의 의견을 청취해 표절 무혐의 판정을 내렸다’고 밝혔는데, 어떤 논리와 근거로 그런 판정을 내렸는지 회의록을 공개하라는 요청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국연구재단 측은 “이미 학회 선정 과정에서 표절 의혹 제보자(김영국 연경불교연구소장)와 피조사자(한 총장) 간 협의를 거쳤다”며 “회의록은 외부공개 동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공개가 어려울 뿐”이라고 반박했다. 

불교계에서 한 총장이 갖는 권위가 표절 무혐의 판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냐는 질문에는 “조사위원회가 따로 있었고 학회의 의견은 참고만 한 것일 뿐”이라며 “위원회와 학회 확인 결과 외압은 없었다고 했다”고 답했다.

김 지부장 역시 “한국연구재단은 표절 판정 기관이 아니”라며 구조적인 한계를 인정했다. 현재 표절 관련 판정을 명확하게 내릴 수 있는 국가기관은 없다. 인사청문회 등에서 매번 논문 표절 문제가 반복되지만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 이유다. 김 지부장은 “장기적으로 논문 표절 관련 논란을 해결하려면 공신력 있는 교육부 산하의 표절 판정 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