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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압도하는 존재와 공존할 수 있을까
우리를 압도하는 존재와 공존할 수 있을까
  • 양도웅
  • 승인 2018.03.0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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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단 제3회 대토론회 개최_「인공지능의 도전, 철학의 응전」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인간이 패한 것은 아니다.” 2016년 3월 구글의 인공지능(이하 AI)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내리 3연패한 뒤 이세돌 9단이 한 말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8년 1월 AI 로봇 소피아는 “앞으로 인간을 지배할 생각인데 이게 그 시작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인간과의 가위바위보에서 승리한 뒤 말이다. AI는 2년 사이에 인류에게 패배감뿐만 아니라 두려움 또한 안겨주는 존재로 진화하였다.   

지난달 27일(화) 고등과학원(원장 이용희, 이하 KIAS) 1호관 국제회의실, 다섯 명의 철학자들이 ‘인공지능의 도전, 철학의 응전’이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는 다섯 명의 철학자들이 KIAS에서 준비한 6개의 질문에 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토론회를 기획한 KIAS에서는 토론회가 공허한 말잔치로 채워질 것을 우려해, 토론 전에 모든 질문들을 토론자들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모든 질문에 답을 요청하지 않았다. 

토론회를 소개하는 리플릿 뒷면을 보면, 참석한 철학자 5명이 모두 답을 하는 질문은 한 문항(첫 번째 질문)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토론회에 참석한 철학자들은 6개의 질문에 모두 열정적으로 답을 했다. 이는 토론이 그만큼 뜨거웠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AI의 시대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거부하기 불가능한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이 AI의 시대에 우리의 철학자들은 어떠한 논의를 주고받았을까.

지난달 27일 고등과학원(KIAS)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초학제프로그램 제3회 주제토론 '인공지능의 도전, 철학의 응전'에서 이상욱 한양대 교수(과학철학)가 발언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고등과학원(KIAS)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초학제프로그램 제3회 주제토론 '인공지능의 도전, 철학의 응전'에서 이상욱 한양대 교수(과학철학)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고등과학원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사)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는 오후 3시에 시작하여 6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끝이 났다. 3시간 넘게 토론이 진행되었음에도 토론회의 열기는 시종일관 치열했다. 토론회의 첫 번째 질문, 인공지능(이하 AI)과 생명체 지능 간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부터 논쟁은 촉발되었다. 

인공지능은 지능인가

신상규 이화여대 교수(심리철학)는 AI에 대해 우리가 지나치게 수세적으로 접근한다면서 “지능이라는 개념은 일종의 있고 없고가 아니라 정도(Gradation)라는 연속적 개념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으며, 기계적인 지능이나 AI에 대해서도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AI는 지능이 없다’라는 일련의 주장들에 대한 일종의 반박인 셈이다. 

이에 대해 초지일관 AI에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 이종관 성균관대 교수(현대독불철학)는 “인간의 삶이란 유일성을 주장하는 삶”이라고 전제한 뒤 “생명지능은 자신에게 필요한 물질을 스스로 조달하면서 그 물질을 스스로 영양소로 생성해내는 데 반해 인공지능은 스스로 무엇을 만들지도 자신의 몸을 만들지도 못한다.”라고 일축했다. AI의 ‘I(Intelligence, 지능)’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표명한 것이다. 

이종관 교수의 주장은 전철 한신대 교수(신학과)의 주장, “진정한 정보는 AI처럼 주어진 자료와 정보에 대한 계산적이고 수용적인 접근 방법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주체와 대상, 그리고 이들이 속한 체계 전체를 비판적으로 종합할 수 있는 방법에서 가능하다”는 것과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AI가 지능이냐 아니냐를 평가하는 논의의 흐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AI를 지능으로 판단하든 판단하지 않든, 보다 진일보한 AI의 시대는 도래 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인식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시급한 것이 기존의 인간중심주의에 근거한 AI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새로운 관점의 도입이라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AI에 대한 기능주의적 관점

이러한 맥락에서 고인석 인하대 교수(과학철학)는 논의를 전환시키기 위해 AI에 대해 “평가의 관점이 아니라 태도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과연 현 시대의 가장 우수한 인력들이, 그리고 거대 자본들이 AI에 매달리는 것이 지구 전체에 행복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던졌다. 즉 AI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표명하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유익한가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신상규 교수의 AI를 새로운 문법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과 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종관 교수는 “AI를 그저 기능주의적으로 다루려고만 한다”라고 지적하며 “이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이종관 교수는 민주주의의 성숙과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독일의 예를 들며 민주와 인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는 AI에 대한 투자와 수용에 대해 신중하고 제한적인 입장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종관 교수의 비판은 곧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이상욱 한양대 교수(과학철학)는 “기능주의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그것(AI)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라고 반박하며 “구체적으로 AI를 활용하는 기술을 교육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일견 AI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듯한 이 발언은,  그러나 AI가 최적화된 영역과 인간의 능력이 최적화된 영역은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은 인간의 능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효율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기능주의적인 접근이 유효하다.”(이상욱 교수)는 것이다.  

AI가 인간을 압도하는 미래의 모습 

토론회가 막바지에 이를수록 토론자들은 AI를 낯선 존재(타자)로 합의한 뒤 논의를 이어나갔다. 즉 AI는 우리와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로 인정한 것이다. 다수의 토론자들은 이 낯선 존재와의 공존을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비추어 말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상욱 교수는 마지막 발언에서 “사람들이 자기보다 똑똑한 존재,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런 기계의 등장에 대해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동물이 인간보다 우월한 지능을 가질 것이라고 상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AI에 대해서는 그러한 상상을 한다. AI와 관련된 여러 디스토피아 영화들이 보여주듯 AI는 인간을 언젠가 공격할 것인가.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인류를 압도하는 AI가 출현한 뒤의 세상은 어떠한 모습일까’이지 않을까. 

인류는 역사상 한 번도 자신보다 육체적으로, 무엇보다 지적으로 우월한 존재와 직접 마주한 적이 없다. 때문에 AI는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타자’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를 압도하는 이 완벽한 타자와 우리는 과연 더불어 살 수 있을까. AI와 함께 하는 인류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우리 철학계의 또 다른 대응(응전)을 기대한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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