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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사람] 무주군 ‘공공건축가’ 정기용
[주목, 이 사람] 무주군 ‘공공건축가’ 정기용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1.02.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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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20 14:44:01

`“지금 사람들은 자기가 발 딛고 살아가는 땅에 침 뱉고 욕하고 더럽다 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어떤 땅을 만들어 놓았는지 보려 하지 않습니다.” 정기용 한예종 교수(건축과)는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도시 구미를 시작으로 지역의 건축현장을 답사해 나갔다. 감탄할 고적을 답사한 것이 아니라 비판하고 개조할 현실을 답사한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무주 프로젝트’의 주체가 되었다.


동숭동 무애빌딩, 계원조형예술대학, 공항동 성당 등을 건축한 ‘거물급’ 건축가가 낙후된 지역 건축에 개입하게 된 데는 거의 기적처럼 보이는 몇 가지 인연이 있다. 우선, 무주를 답사하며 지역 환경운동가들과 맺은 인연.


무주군 안성면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청년들은 마을에 골프장에 들어서는 것을 막은 후에, 예술인 마을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 마을을 찾았던 정 교수를 자문으로 초청했고, 정 교수는 마을회관을 흙으로 짓는 일을 하게 된다.


이렇게 세워진 진도리 마을회관은 정 교수가 교보환경문화상을 수상하는 계기가 되었고, 심미적 측면 뿐 아니라 경제적 측면도 만족시킴으로써 대안적 공동체가 실험하는 생태건축의 모델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진도리 마을회관은 정 교수가 김세웅 무주 군수와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된다. 정 교수는 마을회관 상장식에서 김 군수를 만나 농촌 건축의 열악함과 해결책을 논의하며 의기투합했다. 이 만남을 계기로 정 교수는 면사무소 4개의 신축과 리노베이션, 농민회관, 무주군청 리노베이션, 무주시장 리노베이션, 공설운동장 스탠드 그늘, 서창향토박물관, 적상면 버스정류장, 부남면 미니천문대 작업등을 맡게 된다.


그러나 입찰에 의한 발주가 그나마 합리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비리와 날림이 만연하는 지역 건축 관행이나, 지역 건축가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지자체 장의 입장을 생각할 때, 이들의 의기가 어떠한 난관을 만났을 것인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정 교수가 경제적 난관을 포함한 여러 가지 장애물을 극복하고 ‘무주 프로젝트’를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 건축에 대한 신념 때문이었다고.


실제로 정 교수는 지역의 정체성을 되찾는다는 지역 건축의 이상을 추구하되 이러한 이상이 지역민의 공간 속에 구현되게 한다. 새로 지은 면사무소의 외관이 기존의 관공서 건물과 다르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공건축물의 설계에 지역민의 요구를 반영하는 공간을 마련한 것은 주목을 요하는 점이다. 이를테면, 안성면 면사무소에는 목욕탕, 보건소, 물리치료실이 들어 있다.


건축가가 이런 공간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안성면에 목욕탕이 없어서 주민들이봉고차를 타고 대전으로 목욕을 다니는 상황이나, 안성면 주민의 65%가 노령인구라 의료 서비스가 시급한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 나라에는 공공건축가 제도가 없다. 지역에 머물면서 지역의 특징을 관찰, 이해하고, 건축물에 지역민의 요구를 반영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무주프로젝트에서 정 교수는 사실상 무주의 공공건축가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그가 서울을 벗어난 지역을 답사한 것이나 공공건축가의 역할을 떠맡게 된 것은 그의 진지한 건축관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외관이 아닙니다. 건축은 시대 의식, 재료, 생활, 이웃과의 관계, 역사가 총체적으로 집약된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측면을 강조해선 안 됩니다.”


정 교수가 말하는 좋은 건축은 예쁘게 만든 개별적 건축물이 아니라 주위 공간과 조화를 이루며 인간적인 신뢰가 축적된 정직한 건축이다.

 
그러니 정 교수가 서울의 건축 현실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특히 그는 서울의 공간에서 식민지의 역사와 군사독재의 반영을 발견한다. 국회의사당의 둥근 지붕이 남의 것 흉내에 불과하고, 늘어선 기둥들이 건물을 받치는 기능과 무관한 가짜일 때,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 국회의사당을 부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비유인 동시에 진심이다.


그가 이상주의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이상은 건축을 통해서 실현되고 있다. 그가 무주에서 공공건축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도 현실적 제도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무주에서 이상을 믿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김정아 기자anonio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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