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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헤게모니 세력, 미국과 중국
두 개의 헤게모니 세력, 미국과 중국
  • 교수신문
  • 승인 2000.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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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된 중국위협론, 미국패권 강화 위한 논리적 기반 제공
자연지리적으로 볼 때, 미국은 동북아시아의 국가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무늬’에 주안점을 둔 인문지리적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은 근대이후 동북아시아에 새롭게 그려지고 있는 인간의 무늬를 주도해온 동북아시아 국가다.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은 미국을 동북아시아에 내재화시킨 결정적 계기였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미국이 동북아시아에 내재화된 것이라기보다는 점차적으로 동북아시아가 미국중심의 세계질서, 즉 미국의 패권이 작동하는 동심원적 세력범위 안으로 포섭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북아시아지역에서 미국의 등장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아래 동북아지역을 끌어들이는 통로가 되었던 셈이다.
냉전초기 워싱턴의 정책결정자들에 의해 정교화되었고, 후일 남한을 비롯하여 미국의 패권이 작동하는 동심원적 세력범위의 주변부에서 반공병영국가의 출현을 뒷받침했던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라는 개념은 냉전체제 이후 점차적으로 문명안보적 개념으로 대체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냉전시대 봉쇄이론의 대부였던 죠지 케난을 대신해서 클린턴의 보좌관이었던 앤서니 레이크는 개입과 확장이라는 새로운 전략이론을 내놓았다. 이것은 미국이 계속해서 세계문제에 개입함과 동시에 미국적 표준에 입각한 인권과 민주주의를 세계로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비용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문명안보적 관점에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문명안보’, 베스트팔렌 체제의 폐기?
유고공습의 논리적 토대가 됐던 뉴인터내셔널리즘 또한 이러한 문명안보적 개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기조는 ‘보편적 가치’의 수호를 위해 기존의 국제법적 제약을 뛰어넘어 개입할 수 있고, 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개입의 주체는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표현을 빌자면 ‘민주주의국가들 간의 클럽’이며, 개입대상은 주권을 빙자하여 국민에 대한 인권유린을 자행하는 이른바 ‘불량배국가들’이다. 이것은 현존하는 국제법 체계의 초석으로 간주되고 있는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 정신을 뛰어넘어 세계화된 체제 내에서 베스트팔렌 체제의 폐기를 요구하는 매우 혁명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문명안보 개념이 지니고 있는 위험성은 1648년 유럽에서 베스트팔렌조약을 낳았던 30년간의 지리한 종교전쟁 - 종교가 달랐던 영주들 간에 서로가 믿는 가치의 실현을 위한 개입과 영토확장의 결과였던 - 과 같은 문명충돌의 이미지를 유포시키고, 결국 문명충돌에 대한 자기충족적 예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한편으로 문명안보개념은 21세기 미국의 패권이 지닌 심도와 강도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문명안보개념에 입각해서 볼 때, 미국의 패권이 위협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들 중 적어도 몇 가지가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에 한해서일 것이다.
첫 번째, 유럽연합의 강화로 인해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로 대표되는 대서양연대가 약화되고, 유럽연합이 대서양을 문명의 접착제가 아니라 격리대로 인식하는 독자적인 문명권으로 발전할 가능성. 두 번째는 러시아가 범슬라브연합의 새로운 종주국으로서 부상하면서, 미국중심적 문명권의 확산에 저항하는 새로운 문명권의 중심으로 등장할 가능성이다. 세 번째는 이슬람문명권의 연대가 강화되면서, 반미적 성향이 강화될 가능성이며, 네 번째는 중화문명권이 경제·군사적으로 확대강화되면서,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미국에 맞서는 신냉전의 구도를 형성할 가능성이다. 다섯 번째는 미국이 반미주의라는 독소를 제거하고 경제적으로 부활시킨 일본중심의 대동아공영권이 다시 반미적 성향을 띄게 될 가능성. 마지막 여섯 번째는 미국에 의해 ‘불량배국가’라고 규정된 국가들로부터의 반문명적 위협이 온존 강화될 가능성이다.
이와 같은 가상의 시나리오에 대한 미국전략가들의 우려는 역으로 미국의 패권을 견제함으로써 자칫 패권의 독주가 낳을 수 있는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반대편의 가능성을 시사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즉, 미국패권중심의 세계질서가 세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진보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일정한 부작용을 감내할 수 있다는 묵시적 합의가 깨어지는 경우, 더욱 출현의 가속도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반미패권연대’의 정치적 지도는 이미 미국전략가들의 머리 속에 그 윤곽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반대로 동북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동북아지역에 내재화되어 있는 미국의 이미지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미국의 패권은 전세계적인 것이며, 그것의 역기능을 견제하기 위한 노력 역시 전세계적 수준에서 모색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자연지리적으로 동북아시아국가가 아니면서도 인문지리적으로 동북아시아국가에 포함되듯이 중국에게도 동북아시아국가인 동시에 동북아시아국가가 아니라는 이율배반이 존재하고 있다. 많은 경우 중국을 동북아시아국가로 인식하는 것은 중국인들이라기보다는 한국인과 일본인들이다. 중국인들은 오랜 역사를 통해 ‘중국과 그 밖의 세계’라는 인식을 지녀왔고, 이슬람문명권과 슬라브문명권, 힌두문명권과 티벳을 중심으로 한 불교문명권에 접해있는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동북아시아는 만주족을 중심으로 한 일부 중국인들의 무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중국이 동북아시아의 일부가 아니라 동북아시아가 중국의 일부라는 의식이 남아 있다.
반면 중국을 동북아체제의 일원으로 보고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동북아시아에 한정된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북아시아로의 팽창과정에서 중국과 조우했던 미국의 관점에 불과할 수도 있다. 태평양에 연한 동북아시아의 중국, 혹은 중국의 동북아시아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중국관은 근대화된 중국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중국이 한 세대 내에 세계적 패권국가가 될 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예측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러한 예측은 미국 내에 유포되고 있는 중국위협론의 골간을 이루면서, 오히려 미국의 패권을 강화시켜주는 역설을 낳고 있다. 과거의 황화(Yellow Peril)론과 일본위협론을 연상시키는 중화위협론은 불량배국가론과 마찬가지로 동양에 대한 서양사회의 뿌리깊은 오리엔탈리즘과 군산복합체의 프로퍼겐더에 의해 증폭되면서, 미국의 패권강화를 위한 논리적 기반을 제공해주었던 것이다.

한·일 지식인의 ‘희망사항’ 불과한 중국역할론
다른 한편 동북아시아라는 지역범주에 포섭되기를 거부하는 중국인들의 의식은 남북한과 일본이 동북아시아 지역협력체제에 대해 가지는 입장과 부조화를 연출하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한반도는 중국의 중서부내륙지역, 그리고 대만과 마찬가지로 세계국가를 향한 도정에서 중국이 잠시 거쳐가야 할 간이역일 뿐 궁극적인 파트너로 취급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중국적 패권질서의 관점에서 볼 때 지금의 한반도는 중국중심적 패권질서가 태평양을 호수로 삼고 있는 미국중심적 패권질서와 조우하고 있는 중요한 경계선이며, 최근 중국인들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중서부내륙지역은 이슬람문명권 및 슬라브문명권과의 협력을 통해 유럽과 직통함으로써 중국이 새로운 유라시아대륙의 세계국가로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는 곳이고, 대만은 티벳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지배권을 확보해야하는 중국의 일개 지방에 불과하다.
동북아시아지역에 주요한 근대화의 동력을 두고 있고, 동북아지역이 주요관심사이기는 하지만 결코 동북아시아국가라는 정체성에 만족할 수 없는 중국에게 동북아시아 지역협력구도만을 강변하는 것은 전적으로 동북아시아에 속해있는 남북한과 일본 지식인들의 짝사랑일 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생존전략과 동아시아
유력한 도전자로 중국을 상정하고 중국과 미국간의 패권경쟁 속에서 형성될 수 있는 틈새를 남북한의 활로로 삼아야 한다는 전략적 고려가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패권은 중국이 단독으로 도전하기에는 훨씬 더 강력하며, 한 세대 내에 세계적 패권국가가 되기에는 중국의 내적 역량이 너무 취약하다. 중화주의는 미국적 패권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대항이데올로기이지만, 사안별로 미국적 패권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국제협력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반패권연대적 성격을 지닌 동북아시아 지역협력구도에 있어서 중국이 담당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일부 한국인과 일본인들의 기대와 집착은 동북아시아에 남겨진 과거 중국의 잔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만, 결코 동북아시아적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없는 중화주의에 의해 배반당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냉전질서의 해체 이후, 미국의 독점적 패권에 대한 가장 강력한 도전자로 떠오른 중국과는 달리 남북한의 입장에서 동북아시아 지역협력의 문제는 자국 전체의 운명이 걸린 문제이며 이를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동북아시아라는 지역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오랫동안 ‘동아시아=동북아시아’라는 잘못된 등식에 의해 소외되어 왔던 동남아시아지역과의 새로운 연대에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이미 북한이 발을 들여놓고 있는 ASEAN과의 경제·안보협력은 중국과 미국 양자에 대한 남북한의 발언권을 강화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미국, 두 헤게모니 세력을 동아시아 지역협력체제로 끌어들이면서 선의의 헤게모니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견제할 수 있는 약소국들의 발판이 필요하며, 남북한은 동남아시아지역과의 새로운 협력의 틀을 통해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명섭
한신대·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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