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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골라쓰기'보다 '키우기'에 나서야 할 때
인재 '골라쓰기'보다 '키우기'에 나서야 할 때
  • 설유정 기자
  • 승인 2003.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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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기업, 대학을 키워라 ③ 국내 인재 육성해야

현대 기아차는 현재 미국 대학 학위 소지자 1백여명을 선발 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21일 오는 6일까지 이 기업 관계자들이 MIT,하버드, 듀크, 퍼듀 등 미국 명문대를 순회 방문하고 기업 홍보와 채용상담에 나선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규모의 미국 대학 학위 소지자를 채용을 실시했던 이 그룹의 한 인사담당자는 "아직 업무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변화하는 시장에서 우위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해외 우수 인력 채용을 정기적으로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 엘지도 미국 전역을 돌며 우수 유학생 유치작전을 펴고 있다. 특히 삼성은 아예 5천억원 규모의 유학생 지원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등 해외 인재 유치에 몰두하고 있다. 올 초에는 '신입사원이 대학에서 습득한 지식 및 기술이 기업 필요 수준의 고작 26%에 불과하다'라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설문조사 결과가 신문지상에 연일 '도배'되는 등, 대학의 사회적 주가는 요즘 '폭락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술 개발' 포기하고 '로열티' 의존하는 형국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기업이 우수 인재를 유치하겠다고 해외로 나서는 것만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냐는 것이 대학가의 우려 섞인 항변이다. 한 지방대의 대외협력처장은 "요즘 기업들은 대학 배출 인원을 채용해주는 것만으로도 수혜를 베푼다는 눈치"라며 "기업들이 대학 교육의 최대 수혜자라는 사실은 아예 잊은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국내 학문에 대한 투자는 내팽개치고 해외 인재만 찾는 모습이 마치 "돈과 시간이 드는 기술 개발은 애당초 포기하고 로열티를 무는 쪽으로 돌아선 모습 같지 않느냐"고 지적한다.
물론 교육은 기업이 아닌 정부와 교육기관의 몫이다. 그러나 특정한 기술이나 지식이 필요하다면 기업이 재교육을 해야지, 대학의 기업화를 요구해선 안 될 일이다. 취업이 대학의 존재 목표가 될 수 없다. 키워놓은 인재만 쏙쏙 뽑아가려는 기업의 안이한 태도가 오늘날 대학 교육과 기술 개발 능력을 부실화시킨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인재 육성'도 허상이다. 전문대 및 기타 특수 목적 대학이 아닌 이상, 일반 대학에서의 교육의 목표는 일반 교육(general education)에 다름 아니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기업의 요구 사항을 일일이 만족시키기도 어려울 뿐 더러 지식의 수명이 짧아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피교육자의 평생에 바탕이 될 기본적 능력과 교양 함양의 필요성 또한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은 다양한 전문 지식의 실험장이 돼야 하며 그 중 일부가 산학협동 등 실천적인 학문 탐구가 되는 것일 뿐 전체가 시장 논리에 종속돼서는 곤란하다.
기업이 학문을 키우고, 국가 전체를 살리는 경우는 모범적인 사례는 북유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키아는 국가 R&D 투자의 60%를 담당하며 핀란드 산·학·연 네트워크를 이끌어가고 있다. 에릭슨, 사브 등을 자회사로 거느린 스웨덴의 세계적인 그룹 인베스터는 배당금의 절반 이상을 학교와 과학기술연구소에 환원해 기업의 사회 공헌은 자선인 동시에 투자라는 경영 철학을 실천한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이와 관련, "대학과 연구기관에 대한 적극적 투자가 북유럽과 미국을 기술강국으로 만든 배경"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반면 우리 기업의 투자 규모는 너무 초라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01년에 전경련 회원사 1백93개 기업 중 매출액의 0.5% 이상을 사회공헌활동에 지출한 기업은 17곳 뿐이다. 교육부의 관리, 감독을 받는 장학·학술 관련 기업 재단 42개 중 자산규모가 1백억원이 넘는 재단 또한 19개에 그쳤다. 그마저 IMF의 여파로 상당수의 기업과 재단 활동이 더욱 휘청해졌다. 기부금 유치 실적이 높기로 소문난 한 사립대 대외협력팀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기부가 의무라고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경기에 매우 민감하다"라며, "기부금의 대부분이 기업의 '과시'나 '홍보'를 위한 조건 단서들에 묶여 활용 범위가 적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제 혜택, 교육 공공성 강화로 지원 촉진해야
전문가들은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세제혜택이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국내 공익단체에 대한 기부금에 세제혜택을 주는 금액은 개인의 경우 소득의 10%, 법인은 5% 뿐. 미국이 각각 50%, 10%에 달하고, 일본은 25%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매우 낮은 수치다. 전경련이 지난 1월 2백39개 기업과 78개 기업재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기업 및 기업 재단 모두 기부금의 손비 처리 확대 등 세제상 지원을 사회공헌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꼽았다. 민간 지원을 촉진하기 위해 세법 개정이 절실함을 보여주는 지표다.
대학도 이러한 민간 지원을 당당히 요구하려면 교육의 공익성을 높여야 한다. 재단의 사유물처럼 인식되는 사립대가 있다면 누가 선뜻 돈을 내고 지원을 하겠는가. 기업의 자금과 현장 기술이 공익적인 대학과 만날 때 진정으로 경쟁력 있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
설유정 기자 sy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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