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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과 함께 하는 학문의 즐거움
자식과 함께 하는 학문의 즐거움
  • 설유정 기자
  • 승인 2003.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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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 '지리학' 대물림하는 서무송 전 건국대 교수

서무송 전 건국대 교수(75세·사진)는 행복한 가장이다. 어린 시절 선택해 일생을 바친 지리학도의 길을 이제 두 명의 아들과 함께 걷고 있어서 즐겁고 든든하다.
"독일 사람들은 칼 하나를 만들어도 몇 대동안 만들었는지를 중요시하죠. 학문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대물림하는 과정에서 함께 다듬고 발전시켜온 것이 서로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아무 때나 모이기만 하면 난상토론을 벌일 수 있고, 가족 여행은 곧 답사로 연결된다. 답사에서 찍은 비디오와 사진들이 자료화돼 연구실을 빼곡하게 메웠다. "문헌 자료, 암석 시료 등,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지리학 자료가 아마 아버님 연구실에 있을 겁니다. 그 곳에만 들어가면 모든 자료를 열람할 수 있으니 자라면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더라구요." 셋째 아들 서원명 씨의 말이다.
아버지가 건국대, 경희대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초등학생이던 아들들을 답사마다 데리고 다니며 들려준 이야기는 '지리를 배우면 인생이 즐거워진다'는 것이었다고. 가령 기차여행을 할 때면 지형이 발달한 모양새를 보고 근처 어딘가에 큰 강이 있다고 멋지게 '예언'하는 식이니 어린 아들들로선 아버지가 하는 학문이 얼마나 흥미진진해 보였겠는가. 서 교수는 일평생을 지리학에 바치고 아들들까지 '끌어들인' 것도 모자라 얼마 전부터는 손자도 장래 희망에 지리학자를 써넣기 시작했다며 웃는다.
88년부터 2002년까지, 일곱 차례에 거쳐 아들 둘과 함께 중국 31개성을 답사한 서 교수는 최근 중국 7만5천㎞ 여행기를 토대로 책을 만들고 있다. "21세기에 우리 민족이 번영을 구가하려면 중국을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지리와 무진장한 천연 자원을 담는 책이 될 것입니다."
세 사람이 공동 저술한 '탐구여행기(도서출판 푸른 길)'가 마무리되면 서 교수는 또다시 제주도의 화산 지역 연구에 나설 계획이다. "아들들이 같이 답사를 다니면 따라다니기 힘들 정도로 걸음이 빠르다고 합니다. 힘이 닿는 한 죽을 때까지 연구를 계속할 생각이에요."
평생을 걸만큼 즐거운 일을 찾았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하물며 자식에게 대물림할 정도라면 '다복하다'는 주위의 질투 섞인 부러움을 받을 만 하다. 인문, 사회, 경제, 과학 등 지표 상에서 활동하는 인간의 모든 학문과 연관되는 학문이 바로 지리학이라고 설명하는 열띤 모습, 지리학에 매혹당한 한 행복한 노학자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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