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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禁忌'에 도전한 공연 3선…연극 「네버더시너」, 뮤지컬 「레드북」, 뮤지컬 「킹키부츠」
'禁忌'에 도전한 공연 3선…연극 「네버더시너」, 뮤지컬 「레드북」, 뮤지컬 「킹키부츠」
  • 윤상민
  • 승인 2018.02.15 2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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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볼 만한 공연 3선_ 사형제, 여성인권, 편견에 도전하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이 다가온다. 그간 시간, 공간의 제약으로 대면하기 힘들었던 친지들을 만나 밀렸던 대화를 할 수 있는 즐거운 기간이다. 하지만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때문일까. 한 설문 조사에서는 이번 설 연휴에 고향을 찾지 않겠다고 응답한 이들의 비율이 30%를 넘어 씁쓸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짧은 연휴라 이동이 어렵다면, 홀로 혹은 가족과 함께 공연장을 찾는 건 어떨까? 정신없이 달려온 戊戌年의 두 번째 달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 보는 의미에서 말이다. 사형제, 여성의 권리, 다름을 인정 않는 편견까지, 세상의 禁忌에 도전장을 던지며 관객들에게 질문하는 세 편의 공연을 소개한다.

 

연극 「NEVER THE SINNER」(네버더시너) 공연 장면.  사진제공=달컴퍼니
연극 「NEVER THE SINNER」(네버더시너) 공연 장면. 사진제공=달컴퍼니

연극 「네버 더 시너」, 대명문화공장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1924년 여름, 미국 역사상 가장 끔직하고 극악무도한 사건이 벌어진다. 니체의 超人論에 빠진 시카고대생 레오폴드와 롭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잔혹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 재즈의 낭만이 흘러넘치던 시대에 벌어진 이 사건으로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힌다. 분노에 찬 시카고 시민들은 두 청년을 사형집행 할 것을 요구하지만, 노련한 인권변호사 클라렌스 대로우의 등장으로 재판은 뜻밖의 방향으로 흐른다. 거기에 연일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재판을 실시간 보도하는 언론까지 가세한다.

세기의 재판의 최종 판결은? 사형이 아닌 종신형이다. ‘사형제도는 정당한가’에 대해 정면으로 질문을 던지게 만든 바로 그 실화재판을 재연한 연극 「NEVER THE SINNER」(연출 변정주, 이하 네버 더 시너)가 지난 달 30일부터 대학로 대명문화공장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공연중이다. 「네버 더 시너」는 영화 「스위니토드」(감독 팀버튼), 「007 스카이폴」을 비롯해 연극 「레드」를 쓴 영국의 작가 존 로건의 첫 번째 집필 연극이며 올해 국내 초연으로 선보이고 있다.

「네버 더 시너」는 동일한 소재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쓰릴 미」로 이미 국내 관객에게 그 얼개가 알려져 있다. 연극과 뮤지컬의 차이점은? 국내 뮤지컬계에서 매우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쓰릴 미」가 단 두 명의 등장인물을 내세워 대사와 노래, 그들의 미묘한 심리변화에 집중했다면, 「네버 더 시너」는 각자의 주장과 논리를 가진 등장인물들이 3개월이라는 재판 기간을 2시간 안에 압축해 밀도 높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로우 변호사의 명대사인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에 모든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로우 변호사를 맡은 윤상화 배우마저도 “제가 그만한 인물이 못 되는데 그의 말에 무게감과 설득력, 인간애가 배우 윤상화의 몸에서 나오는지 매일 부딪히고 있어 벅차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반대 입장인 크로우 검사의 캐릭터는 명쾌하다. “피해자의 아버지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사회에서 이번 사건 때문에 정의의 수레바퀴가 미끄러지지 않을 것을 요구합니다.”

특이한 점은 대로우 변호사와 크로우 검사의 날선 논고와 구형, 변론이 이뤄지는 재판장에 판사가 없다는 점이다. 변영주 연출은 객석을 판사로 설정했다. 판사가 등장하는 장면에 객석에 희미한 불이 들어오도록 해 관객을 극 속에 적극 개입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피해자 가족이 겪을 고통, 정의 구현이라는 여러 가치 속에서 사형제를 바라보는 당신의 생각은? 특별한 무대 전환, 장면 전환보다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말의 향연 속에서 점점 변해가는 인물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네버 더 시너」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뮤지컬 「레드북」 공연 장면.  사진 제공=바이브매니지먼트
뮤지컬 「레드북」 공연 장면. 사진 제공=바이브매니지먼트

뮤지컬 「레드북」, 세종M씨어터
‘빨간책’ 속에 감춰진 욕망, 세상을 쏘다

수많은 뮤지컬 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창작뮤지컬 「레드북」(연출 오경택)이 지난 6일부터 관객을 만나고 있다. 「레드북」은 ‘2016 공연예술 창작산실 우수 신작’에 선정돼 이미 그 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1년여 수정작업을 거쳐 러닝타임 10분을 다이어트 한 시범공연은 지난달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객석의 함성을 더 크게 받았다.

「레드북」은 「여신님이 보고계셔」로 창작뮤지컬 신화를 쓴 한정석 작가와 이정석 작곡가 콤비가 내놓은 작품이다. 영국에서 가장 보수적이었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슬플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하는’ 엉뚱하지만 당당한 안나와 고지식한 변호사 브라운이 펼치는 로맨틱 코메디다. 안나가 고품격 문학회 ‘로렐라이 언덕’에 들어가 자신의 야한 추억들을 쓴 소설이 잡지 <레드북>에 실리며 일어나는 사회적 파장과 그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시대의 통념과 편견에 맞서 나가는 이야기. 지난해부터 혐오프레임, 페미니즘, 미투 운동 등으로 여성인권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요즘,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레드북」은 한국사회의 현실과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빨간책. 뮤지컬 「레드북」의 한글표현이다. 한정석 작가는 유쾌한 여성작가의 이야기를 써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좀더 흥미로운 부분을 가미해 야한 이야기를 쓰는 여성 작가로 주인공을 설정했다. 하지만 한 작가는 “안나의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발전하면서 「레드북」의 상징도 진화했다”며 “단순한 ‘빨간책’이 아닌 그 안에 있는 상처, 열정, 신념 같은 ‘red’ 안에 담긴 가치에 주목해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플롯만 놓고 보면 무거운 주제로 뮤지컬의 분위기가 어두울 것만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안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브라운의 넘버 「당신도 그래요」를 들을 때면, 고뇌와 갈등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왜 심장이 뛰는지, 왜 수염이 자라는지 모르지만 나는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 나는 저 별들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몰라요, 왜 빛나는지 뭘 말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겐 너무 아름다워요. 당신도 그래요. 내게는 그래요. 이해할 수 없어도, 설명할 수 없어도 당신이 좋아요.”

2018년의 「레드북」은 지난 시범공연을 성공으로 이끈 배우와 제작진이 공연을 책임진다. 안나 역에는 제6회 예그린어워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유리아 배우와 더불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아이비가 더블로 캐스팅됐다. 브라운 역도 기존 캐스팅 박은석 배우와 함께 이상이 배우가 더블로 캐스팅돼 색다른 호흡을 보여준다. 아이비는 「레드북」을 이렇게 말했다. “여성의 권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주는 작품이면서도, 남녀에 상관없이 어떤 편견이나 차별을 이겨내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용기와 꿈을 갖게 해주는 이야기다.”

 

뮤지컬 「Kinky Boots」(킹키부츠) 공연 현장.  사진 제공=CJ E&M
뮤지컬 「Kinky Boots」(킹키부츠) 공연 현장. 사진 제공=CJ E&M

뮤지컬 「킹키부츠」,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Ladies & Gentlemen, 그리고 … Kinky Boots!”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핫한 뮤지컬”<The New York Times> “공연장이 댄스파티인 것처럼 진동했다!”<Variety> “이 쇼는 뮤지컬과 구두, 두 가지 모두가 당신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걸 일깨워준다”<Daily News>

뮤지컬 「Kinky Boots」(이하 킹키부츠)에 쏟아진 호평들이다. 실제로 「킹키부츠」는 지난 2013년 브로드웨이 개막 이후 토니어워즈 6관왕, 올리비에어워즈 3관왕에 올랐다. 더 놀라운 사실은 「킹키부츠」가 2013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했던 뮤지컬들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공연되고 있다는 사실. 흥행으로 이어지는 작품이 20%를 밑돈다는 것이 정설로 통용되는 브로드웨이에서 CJ E&M이 글로벌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한 「킹키부츠」는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극은 인터미션 포함 140분.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구두공장에서 구두만이 전부인 세계에서 살던 찰리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찰리는 유행에 뒤떨어진 수제화만 고집하던 공장이 저가 수입구두 때문에 폐업 위기에 처하고, 오랫동안 가족처럼 지내던 직원을 해고할 위기에 처한다. 틈새시장을 개척하라는 충고에 찰리는 우연히 만났던 아름다운 여장남자 드랙퀸 롤라에게서 힌트를 얻는다. 아름다우면서 튼튼한 ‘킹키부츠’를 만드는 것. 하지만 여장남자 롤라와 6명의 엔젤들은 보수적인 구두공장 직원들과 세상 정 반대지점에 있는 것만 같다. 찰리는 어떻게 이들의 다름을 인정시키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할까?

「킹키부츠」도 연극 「네버 더 시너」처럼 실화를 소재로 했다. 1980년대 영국의 수제화 공장들이 문 닫는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브룩스 신발공장의 스토리가 배경이 됐다. 1999년 BBC 다큐멘터리, 2005년 영화로 만들어져 2006년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던 이야기가 뮤지컬로 재탄생한 것이다.

「킹키부츠」는 한 남자의 도전 스토리와 함께, 편견과 억압에 맞서 ‘진정한 나’를 찾고, 그 과정 속에서 뜨거운 우정과 사랑을 성취하는 내용을 때로는 화려하고 격정적인 군무가 함께하는 넘버로, 때로는 부드러운 선율의 넘버로 보여준다. 작품의 중심메시지인 ‘Just Be Who You Wanna Be’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인생역전에 도전하는 찰리, 드랙퀸이자 편견에 맞서는 아름다운 여장남자 롤라, 롤라의 천적인 마초 돈의 호흡 속에 서서히 울림을 키워간다. 그리고 2막의 끝자락에서 나도 모르게 함께 외칠 지도 모르겠다. “Ladies and Gentlemen, 그리고 킹키부츠!”

윤상민 학술문화부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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