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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벽
숨은 벽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8.02.1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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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문단에 친구 하나 있어 지금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낭인처럼 떠돌 때 만난 친구라 지금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얼굴만 떠올리면 즐거워진다. 옛날 생각들이 나기 때문이다.

하나는 평론가라 하지만 시간강사요, 또 하나는 시인이라 하지만 출판사 영업사원이었다. 하나는 ‘정규’ 코스를 ‘잘’ 밟다 대학 서울로 와 길 ‘잘못’ 들어 꽤나 헤맸고, 또 하나는 고등학생 때 벌써 가출, 막일도 하고 군대까지 다녀와 ‘뜻한 바’ 대학에 들어갔다.

신분도, 지위도, 돈도 없을 때라 무엇을 해도 거리낄 게 없었다. 술을 마셔도, 당구를 쳐도, 토론을 해도, 노름을 해도 어디에 크게 구애될 게 없었다. 더불어 쫓길 일도 없었다. 그 무렵은 그런 삼십 대가 어디나 많았으니까. 특히 시간에 쫓기지를 않아 ‘내’ 집에도 사람을 들이고 저 집에도 가보았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밤새워도 좋았다. 지친 눈으로 희뿌윰하게 밝아오는 새벽빛을 보던 일이 무릇 몇 번이던가?

한국 남자들은 경험에 따르면 서른 중반이 고비다. 그때쯤 갑자기 시간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오르막 같던 길이 내리막이 된다. 이십대를 ‘논밭에서’ ‘운동장에서’ 보낸 게 후회막급이다. 하지만 뒤돌아볼 시간조차 없다.

한 사람은 박사논문 쓰는데 정신없는 와중에 또 한 사람은 아이엠에프다 뭐다 해서 직장에 직장을 전전해도 희망이 없다. 사회 체질이 점점 더 급박히 ‘신자유’ 천지가 되다보니 천천히 하는 사람, 느긋한 사람, 말미 두는 사람은 받아주지 않는다. ‘아래로’ ‘아래로만’ 내려가다 급기야 실직, 얼마간 더 있으니 신용 파산을 신청해야 하게 됐다.

돌이켜 보면 짧은 것 같지만 당할 때는 길기도 길고 끔찍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은행에 자기 이름으로 돈을 출납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고 나서 몇 년, 이 친구가 산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북한산이다. 택시 운전 하면서 일요일, 아니 휴무일은 무조건하고 북한산 행이다. 집은 고양, 북한산의 바깥쪽을 타기 좋은 곳이다. 연신내 같은 데서 몇 발자욱이면 바로 산을 탈 수 있다. 장수 막걸리 한 병 배낭에 넣고 덥건 춥건 눈이 오건 비가 오건, 죽어야 사느니라, 오르락내리락 어언 4,5년. 아, 장구한 세월!

그 사이에 운 좋아 대학 선생이 된 친구는 허리 디스크에 이어 목 디스크까지 얻어 ‘반불구’가 됐다. 그러자 택시 운전 친구가 산행을 권한다. 산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것이다. 술독을 빼는데도, 공부 독을, 사람 독을 빼는데도 산이 특효란다.

그랬다. 산이 좋았다. 나쁘지 않았다. ‘초짜들’ 몰려드는 구기터널 앞에서 오르기 시작, 승가사 가는 길 거쳐 사모바위 쪽은 길어야 한 시간 반. 한 일 년 오르고 내리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어지간히 회복되는 듯하다. 언제 한번 백운대 가봐야지? 백운대는 이름하여 북한산 ‘최고봉’,  높이 해발 836미터. 아직 범접을 하지 못했다.

대신에 친구가 같이 가자 한 또 다른 곳이 있다. 이름하여 ‘숨은 벽’, 등산 고수들조차 위험에 빠뜨린다는 인수봉과 예의 그 백운대 사이에 놓여 있는 높은 암벽이다. 산 바깥에서 안 보이고 산 안에 들어야 비로소 보인다고 숨은 벽이라 한다나.

두 번을 갔다. 산 속에 들어 한 번 본 그 모습이 바깥에서는 다시 떠오르지 않아 못 잊어 한 번 더 들어가 보았다. 과연 숨은 벽, 숨은 벽이다.

어려서는, 젊어서는, 보이지 않더니! 어지간히 세월 흐르고 보니 알기는 알 것 같고, 하지만 실은, 벽 너머는 벽을 뚫어서 볼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닫는다.

아무리 눈을 밝게 뜨고 세상을 보려 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 눈 뜨고 숨은 벽이 바로 앞에 보인다고 보는 게 아니요, 모든 게 그렇다고 그런 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된다는 뜻이다.

얼마 전에 참 좋다고 생각했던 세 사람의 이름을 한 지면에서 만났다. 노엄 촘스기, 오에 겐자부로, 와다 하루키.

‘내’가 아는 벽이 벽이 아니요, 눈에 보인다 한 벽이 벽이 아닐 것이다.

그냥 냉연히 벽에 관해, 숨은 벽에 관해 생각하고 싶다. ‘내’가 보았다고 생각할 때 벽은 헛것일 수도 있겠다.

책을 읽는다고 눈이 밝아지는 것도 아니고, 안 읽는다고 안보이던 것이 보이게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상하게 요즘 눈 먼 사람이 된 것 같다. 마음의 눈을 뜨고 싶은데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보이지 않는다. 벽 너머는 아예 생각지도 못한 채 한 치 두 치를 세는 느낌이다.

더 생각하고 싶다. 사물을 바로 보고 싶다 했던, 바로 보겠다 했던 김수영 시인의 시 구절을 생각하는 날이다.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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