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 논설위원 영남대 |
대통령은 예컨대 화물연대의 파업을 그런 국가기능 마비의 위기로 보고, 위기관리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하면서, 미국의 테프트 하틀리 법을 예로 들었다. 미국에서도 인권 침해의 우려가 있는 것으로 비판되는 그런 법을 설마 이번 방미에서 배운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그 법보다 더욱 강력하고 광범한 노동쟁의조정의 법이 우리나라에는 벌써부터 있다. 그런 법이 없어 위기관리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화물연대 파업의 요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문제가 됐으나 정부는 이를 방치하고, 특히 이번 파업이 터졌을 때 정부가 신속히 대처하지 못하여 위기가 생긴 것이지, 별안간 화물연대가 힘으로 밀어붙였다거나 관련법이 없어서가 아니다. 전교조의 집단행동도 마찬가지이다. 교육부의 NEIS를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 침해라고 본 것에 대해 대통령은 월권이라고 비판하나, 전혀 근거가 없다.
냉전 후 미국이 세계자본주의 패권을 주장하는 현실에서 민족의 주체, 민족의 자결은 더욱 절실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국민의 자기 주장, 자기 표현은 존중돼야 하고, 그 주장을 조정하여 새로운 합일을 이루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와 반대되는 반민족, 반민주의 대통령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1987년에는 전해 2백76건에 불과했던 노동 단체행동이 3천7백49건으로 급증했으나, 당시의 노대통령조차 "이러다간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 후 남북화해를 위한 각고의 노력도 이어졌으나, 이제 그것이 얼어붙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우리는 20년 전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진심으로 노대통령이 다시금 민족과 민주를 향한 대개혁을 약속한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절실한 것은 정부의 외교력과 정치력의 발휘이지, 그 외부의 힘에 핑계를 대고 그 힘에 맞서는 힘을 과시하는 어리석음이 아니다.
박홍규 / 논설위원·영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