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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과학저술의 현실
진단 : 과학저술의 현실
  • 고중숙 순천대
  • 승인 2003.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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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는 글쓰기가 어렵다?

 

고중숙 / 순천대·물리화학

이공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한 가지 약점은 글쓰기에 별로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인문사회계의 일을 하는 분들은 전공분야의 주된 언어가 바로 우리가 일상 사용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공계에서는 일상 언어는 거의 보조적이고 수식이나 도표를 주로 사용하며, 특히 근래 컴퓨터가 발달함에 따라 문자 그대로 '컴퓨터 언어'도 많이 사용한다. 오늘날 초중고 생들이 컴퓨터 자판을 너무 열심히 두드리는 나머지 필기가 서툴고 어딘지 낯설게 여겨지는 때가 많은 것처럼 일상 언어와 다른 언어를 많이 사용하다보니 본래의 일상 언어로 표현할 때는 오히려 어색함을 느끼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이공계의 위기'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한편으로 수학이나 과학 등의 딱딱한 이과 과목을 어떻게든 재미있고도 쉽게 가르치고 배우자는 열풍도 거세다. 어찌 보면 이공계의 위기는 그 동안 그러잖아도 내용이 어려운 과목들을 공부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도 너무 어렵게 해왔다는 점에 대한 반성이 그 배경에 깔려 있는 듯 싶다. 그런데 '어려운 것을 쉽게 가르치기'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위해 여러 모로 노력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어릿광대 짓을 하는가 하면, 요란한 소리나 현란한 색채가 나올 수 있는 실험만 골라서 시연하는 경우도 있다. 나아가 마술과 같은 부수적인 개인기까지 동원해서 호기심을 끌기도 한다.
이런 노력들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은 적극 옹호하는 쪽부터 아주 혐오스럽게 여기는 쪽까지 상당히 폭이 넓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옹호하는 사람들도 겉으로는 옹호하지만 속으로는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는 느낌이 강하다. 다시 말해서 시대의 추세가 그런지라 어쩔 수 없이 찬성하기는 하지만 과연 수학이나 과학이(다른 학문들도 마찬가지지만) 꼭 그런 식으로 희화화돼야만 하는지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시금 예전처럼 딱딱하고 힘든 주입식 암기식 교육으로 돌아가자는 뜻도 아니다. 따라서 결론은 가장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데로 모아진다. 이에 대해 미국의 문호 마크 트웨인의 "사람들이 나쁜 일을 하는 노력의 반만 착한 일에 바치면 모두 천당에 갈 것이다"라는 말은 참으로 시사적이다. 너무 쉽게 편하게 즐겁게만 하려고 하면 결국에는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때가 많다. 그러므로 막무가내로 열심히만 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그저 재미만 쫓아다녀도 손해를 볼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잘 인식해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교과서적인 과학과 일상 생활 사이의 갭을 메워줄 가교가 필요함을 많이 느낀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위에서 지적한 대로 이공계 종사자들은 글쓰기에 자신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한편 출판사 쪽에서는 그렇다고 해서 문과쪽 분들에게 과학저술을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간혹 번역은 문과쪽 분들도 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어딘지 불안한 구석을 지우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대중적인 과학교양서가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대학의 교수들, 유명 연구소의 학자들, 언론기관의 과학담당자 등은 물론 자유기고가와 전문작가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폭도 넓다. 이 때문인지 대학생들의 장래 희망 직업 가운데에도 과학저술가는 상당히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도 미국 못지 않게 활발하며 일본도 비교적 큰 국내 시장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활성화돼 있다. 이와 같은 국제적 상황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과학저술의 실정은 위에서 본 이유 및 다른 이유 등으로 해서 아주 열악한 처지에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과학 전문 출판사도 생겨났고 대형 출판사에서도 과학 분야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 좀더 수준 높은 책들을 계속 펴내 이런 분위기를 지속시켜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요즈음 '이공계의 위기' 못지 않게 '인문학의 위기'도 두드러진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겉보기로만 달리 보일 뿐 내면에서는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요컨대 우리는 문화를 잃어가고 있다. 과학하는 문화와 인간을 생각하는 문화를 잃어가고 있다. 따라서 기왕이면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분야를 잘 접목하는 과학저술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우리 고유의 과학문화를 잘 정립함으로써 한 차원 더 높은 '과학적 인본사회'로 옮겨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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