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라면 자기가 쓴 책 한 권은 갖고 있겠지 여기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공계 교수들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저술활동에 나서는 비율이 아주 낮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저술활동을 하는 이공계 선생들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교과서·번역서 빼면 빈약해
교과서들을 빼고 나면 그 폭이 너무 좁아지는 게 이공계 교수들의 저술현실이다. 그래도 한번 살펴보면 먼저 출판사와 지속적인 친분을 맺고 지식대중화에 발 벗고 나서는 유형이 있다. 직접 기획도 하고 번역도 하며, 필자들을 끌어모아서 공동저서도 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사회생물학을 국내에 소개한 개미박사 최재천 서울대 교수, 신세대적 감수성으로 과학과 예술을 가로지르는 정재승 고려대 교수, 수학만큼 축구를 사랑하는 '축구공 위의 수학자'의 저자 강석진 고등과학원 교수, 과학사 분야 대중저술에서 독보적인 임경순 포항공대 교수 등이 여기 해당된다. 이들의 특징은 언론매체에 기고한 칼럼을 책으로 묶어낸다는 것. 최재천 교수의 베스트셀러인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효형출판 刊),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궁리 刊) 같은 책들이 모두 그렇게 나왔다.
이공계 교수들에게 책을 펴낸다는 것은 이중의 고통이다. 먼저 글을 쓴다는 게 이만저만한 괴로움이 아니다. 박창범 서울대 교수는 외국에서 천문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처음 강의를 맡았을 때 의욕적으로 우주론 개론서를 집필했다. 꼭 필요한 양서를 쓰겠다고 공들여 원고지를 채웠다. 보통 단행본은 1천매는 써야하지만 대부분 공대 교수들은 5백매에서 멈춘다고 한다. 더 이상 쓸 말이 없다는 게 이들의 辯이다. 박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고생해서 4교, 5교를 보고 친한 소설가에게 내보였는데 "이게 뭐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절치부심 다시 작성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출판사에서 책에 넣을 사진을 구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은 것. 사진을 모으고 편집까지 하느라 박 교수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중고로 들이고 스캐너까지 샀다. "그렇게 책을 펴내봤자 맥시멈 판매가 1만부입니다. 이건 과학책의 절대적인 한계죠"라고 그는 말한다.
공대 교수들은 이공계 중에서도 책과 안 친하기로 유명하다. 학술진흥재단 연구자정보에서 보면 논문은 몇백편이 넘는데 저서 목록은 비어있는 교수들이 부지기수다. 2∼3권 있어도 정상적 과정을 밟지 못한 자비출판일 경우가 많다. 번역서로는 그렇게 흔한 로보사피엔스에 관한 국내 저술은 한 권도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한림공학과학원과 출판사 김영사가 공동으로 '우리 공학' 시리즈를 펴내는 등 변화의 조짐도 보였으나 이 시리즈는 1차분 네권을 내놓고는 1년이 지날 동안 소식이 없다.
다양한 저술의 계기들
재미있는 기획으로, 알지못할 인연으로 이공계 선생들의 저술이 생겨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연과학의 세계 1·2'(에코리브르 刊)다. 이 책은 서울대가 강의를 가장 잘 하는 교수로 뽑아 그 노하우를 CD로 만들어 배포하기도 한 김희준 교수의 명 강의록을 책으로 가공한 것이다. 권오길 강원대 교수는 '달팽이 박사'라 불리며 팬 층이 생겨날 정도로 인기 있는 저술가인데, 그가 처음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출판사 사장으로 있는 고교 제자의 청을 못 이겨서였다. 제자의 특별한 부탁이고 해서, 후딱 20일만에 써서 줬는데 그게 반응이 좋았다. 권 교수의 경우 필드 바이올로지스트임을 자부하는데 그 동안 한국 산야를 헤매다닌 경험담을 그대로 풀어내면 책이 되니, 권 교수도 자신의 재능을 뜻밖의 계기로 알아차린 셈이다. '공학박사가 말하는 풍수과학 이야기'를 쓴 이문호 영남대 교수는 부모의 묫자리를 잡다가 음택 중심인 우리의 풍수문화에 반발심이 생겨 집필하게 됐다.
이공계 교수들은 다양하게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번역 중심이지만, 교양물도 꾸준히 늘고 있고, 과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비춘 책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과학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도 많이 나타났다. 그러나 전망은 밝지만은 않다. 갈수록 논문 요구는 높아만 가고, 저술은 업적 인정도 안되고, 지원도 없고, 과학시장은 좁기만 한데 이공계 교수들의 저술활동이 계속 성장할 지 걱정이 앞선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