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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 역자후기 제대로 씁시다
책 이야기 : 역자후기 제대로 씁시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5.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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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고통의 순간들…번역문화사의 소중한 자료

 

역자후기는 책을 읽는 가외의 재미를 준다. 본문이 공식적인 업무의 공간이라면, 후기는 역자가 고된 노동을 끝내고 피곤을 푸는 사적인 공간이다. 책은 팽팽한 본문과 이완된 후기의 합으로 균형을 잡는다. 독자는 그 공간에서 책과 저자, 번역과정이나 출판사와 얽힌 형이하학적인 비하인드 스토리를 기대하곤 한다.
요즘엔 역자후기를 역자해제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책의 가이드라인을 잘 잡아주는 역할도 되겠지만, 책의 문화적 의미와 독서의 절차를 손상시키는 행위다. 결국 책의 내용을 요약 리뷰하는 정도인데 모범답안을 읽는 느낌이고, 지나치게 길면 그마저도 읽지 않는다. 후기를 생략하는 이런 경향들은 마치 감탄문에서 느낌표를 떼어내는 일과도 같아 씁쓸함을 안겨준다.


이런 사례를 보자.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문학과지성사 刊)의 역자후기는 책머리에 놓여있다. 종종 후기가 앞에 오기도 하지만 여기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번역자인 조한욱 한국교원대 교수(역사학)는 우연히도 천형균 군산대 교수와 거의 동시에 이 책의 번역에 착수했다. 양측 모두 번역이 반 가량 진행되고 나서야 이 난처한 상황을 전해듣고 당황하게 된다. 자칫하면 얼굴을 붉힐 일이었지만, 천 교수는 후배를 독려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번역을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며 물러났다. 척박한 번역 환경을 고려할 때 정말 큰 똘레랑스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 역자서문은 조 교수가 선배에게 바치는 감사편지인 셈이다. 저자 로버트 단턴이 한국 출판계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자기 몫의 한국저작권을 포기했다는 미담도 이곳에 실려있다.
노드롭 프라이의 마지막 책 '두 시선'(세종출판사 刊)을 옮긴 남송우 부경대 교수(국문학)의 역자후기는 비전공자로서 번역에 나서는 것의 비애 같은 것을 보여준다. 역자는 캐나다로 연구년을 떠난 2002년 벼르고 별렀던 프라이 번역에 도전했다. 영향을 받았던 이론가의 마지막 책이고 양도 부담없는 소책자였다. 사실 캐나다로 가기 전 원서를 구해 번역을 시도했지만 서문을 옮기는 정도에 그쳤다. 프라이 한 평생의 생각들이 압축됐으니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캐나다에서 머문 1년 동안 역자는 불과 1백쪽의 이 엔솔로지에 매달렸다. 연구서들을 찾아 읽고 저자의 삶의 흔적을 더듬는 등 애를 썼고 귀국 직전에야 흡족하지 않은 초벌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소중한 연구년을 모두 여기에 바친 셈이다. 한국에 돌아와 돌입한 역주작업은 번역만큼 고되고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결국 개정판에서나 하기로 타협하고 말았다. "독자에게 이 부분을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역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책의 말미에 실린 프라이 문학기행, 프라이의 저술과 삶, 프라이에 대한 논평 등 세편의 글은 역자의 이런 미안함과 책임감의 표현인 것이다.


프레게의 '산수의 기초'(아카넷 刊)를 공동번역한 역자들의 사연은 복잡하다. 1991년 프레게를 처음 만났을 때 둘은 프레게로 석사논문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두 번째로 이 책을 같이 읽은 1997년 그들은 프레게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마친 상태였다. 그 참에 대우재단에 번역을 공모해 운 좋게도 지원이 결정됐다. 공동번역은 논문을 위해 준비한 초벌번역 두편을 비교하는 것으로 순탄한 항해가 예상됐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함께 한줄 한줄 읽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야 했지만 시간강사 처지인지라 만나기가 힘들었고, 만난다 해도 학기 중에 강사들은 갈 곳이 없어 작업공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약속한 기한이 훌쩍 넘어가고, 착수금은 다 바닥이 났고, 출판사에서는 곧 책이 나온다고 광고를 내보냈다. 부담이 물밀 듯 밀려왔다. 할 수 없이 미진한 부분은 넘어가며 빨리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공동번역은 일이 더디고 두 사람의 의견이 갈릴 때 조정자가 없는 게 약점이라고 역자들은 말한다. 그만큼 일치보다는 충돌이 많았다는 얘기고, 프레게의 책이 번역자에 따라 다르게 옮겨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니 더욱 공동번역이 필요하다는 말도 된다.
사연들로 넘쳐나는 역자후기는 고통의 도가니이지만 재미있고 유익하고 감동도 준다. 그로써 책의 완성도는 아마 더 높아질 것이다. 만약 후대의 누군가가 '저(역)자의 문화사' 같은 작업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후기나 서문 만한 좋은 자료가 또 어디 있겠는가. 역자후기가 철저히 주관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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