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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는 어떻게 서구의 콧대를 꺾었을까
레비-스트로스는 어떻게 서구의 콧대를 꺾었을까
  • 교수신문
  • 승인 2018.02.0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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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동서 문명과 근대’_ 제4강 임봉길 강원대 명예교수의 「계몽주의 사상과 그 비판」

네이버 ‘열린연단’의 다섯 번째 강연 시리즈 ‘동서 문명과 근대’가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 강연은 동서양 근대성의 한계와 가능성을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취지에서 기획됐으며 2018년 총 50회 강연이 예정돼 있다. 한국문화인류학회장을 역임한 임봉길 강원대 명예교수「전통 사회와 근대 문명」 발표 중 주요 부분을 발췌해 소개한다.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임봉길 강원대 명예교수.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임봉길 강원대 명예교수.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레비-스트로스는 『종족과 역사』에서 진보적 사고에 대한 것을 길게 설명하고 있다. 인류가 자신의 기원으로부터 성취한 진보들이 너무 분명하고 혁혁하여 이에 대해 논한다는 것 자체가 수사적인 일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문제가 사회적 혹은 문화적 진화의 사고와 연관되는 것에 회의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생물학적 진화의 개념은 자연 과학의 영역에서 통용될 수 있는 가장 높은 확률적 계수(율)를 갖는 가설이다. 그러나 사회 혹은 문화적 진화의 개념은 고작 사실들을 제시(소개) 하는 데 편리하지만 위험한 유혹적인 것(가설)일 뿐이다.”

진보적 사고를 부정하다

한편 그는 다양한 사회들의 발전을 단계화시키면서 진보를 증명해보려는 학자들을 질책한다. 이들은 이 사회들의 몇몇이 몇몇 다른 사회의 발전의 단계와 일치할 수 있다는 원칙에 따라 근대의 다양한 사회의 발전을 단계화시키려 했다. 이처럼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베이징에서 루이 14세 시대를, 동양에서 중세 시대를, 오스트레일리아 혹은 뉴기니 토착민들에게서 석기 시대를 찾았다고 즐거워했다. 그렇지만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몇몇 측면(잔재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접근은 부분을 전체로 취급하고, 두 문명(하나는 현재, 다른 하나는 사라진)의 몇몇 측면들이 유사하다고 같은 것으로 결론짓거나 현재의 측면과 유사한 것으로 결론 내리는 것이 된다. 물론 이러한 추론 방식은 논리적으로 지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에 실제의 사실들에 의해 부정된다.

다른 한편 모든 인간 사회가 대략 같은 크기의 중요한 과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단계화로 인해 사회들의 일부는 역사의 저편에 있어야 되는 결과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역사가 없는 사회나 ‘어린애로 취급되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는 인간 문화의 풍부함과 독창성을 서구 문명의 복제(모조)의 상태나 동시에 시대에 뒤떨어진 상태로 축소하는 행위를 거부한다.

그는 단선진화주의자들을 거짓 진보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하면서, 그들이 단지 문화의 다양성(다양한 차이를 갖는 문화들)을 지워버리려는 의도를 가지며, 과거나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진 인간 사회의 차이를, 모든 사회가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여 지금은 비록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지만, 이 차이성을 같은 목적으로 수렴시켜야 할 유일한 발전의 단계(steps)로 취급했다고 말한다. 이런 처사는 인류 자체가 하나의 동일한 집단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다양한 인류의 사회 집단은 동일한 집단으로 수렴되는 경향보다는 차별화되는 쪽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레비-스트로스는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이는 발전의 불평등(발전의 차이)을 설명하기 위해 ‘정체적인 역사’와 ‘축적적인 역사’의 구별을 제시한다. 우리에게 가장 진보된 것으로 보이는 현대 사회들은 축적된 역사의 도움을 받음은 물론 다른 사회들이 잃어버린 발견(혹은 발명)된 요소들을 자신들 미래에 통합시키고 종합할 수 있었다.

순환 사회와 선적인 사회

사냥이나 어로, 채집을 하며 살아가는 소위 야만, 미개, 원시 사회와 목축이나 농업을 하며 살아온 類의 문화를 가진 민족들은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삶의 커다란 차이를 이루지 못했다. 이들은 해가 뜨면 일어나 활동하고 해가 지면 자는 순환적인 삶을 살았으며, 시간의 흐름과 소위 진보라는 개념보다는 현재의 삶의 방식을 반복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가 말하는 고대 문명 아래에서 살았던 사람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농업 사회인 고대 중국 황제의 가장 커다란 임무는 사계절의 순환과 연속이 순조롭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소위 전통적인 사회는 순환적 삶을 살았으며, 사회의 변화는 차라리 사변으로 받아들였다. 이민족의 침입이나 홍수, 가뭄 등의 재난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발전의 개념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현상 유지가 가장 중요한 관심 사항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이래 전통적인 사회에서의 소위 진보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정체된 역사를 살아온 것은 아니다. 자연의 재해를 막고 좀 더 순환을 순조롭게 하기 위한 노력, 여기에는 사람들을 조직하고, 기술을 창출하는 등 사회의 변화는 느리게, 서서히 변화돼(종교적, 기술적, 사회적 측면에서) 현재나 100년, 200년 전의 삶의 방식의 차이가 거의 없는, 말하자면 나선형의 느린 진보를 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소위 문명의 최상위에 올라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서구 문명항해술과 중상주의를 거쳐 산업혁명 이후에 전통 사회의 방식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변형된 사회?의 특성은 진보의 개념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우월한 기술력을 발판으로 새로운 자원과 판로를 얻기 위한 식민지 개척과 물질적 풍요, 이에 대한 욕구를 바탕으로 한 ‘선적인 문화’로 변형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또한 레비-스트로스가 이미 지적했듯이 이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전파하려 했는데, 이것은 자민족(문화)중심주의의 발로이며, 타문화를 야만, 미개로 매도한 것이었다. 당시의 학자들은 이들의 이런 생각을 학문적으로 합리화시키기도 했다. 소위 (단선)진화론적 사고였다.

이런 “좀 더, 좀 더”의 문명은 달려가는 자전거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는 운명의 이 문화는 ‘선적인 문화’, 앞으로만 계속 나아가지 않으면 쓰러져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문명이다. 계속 기술을 발전시키고, 좀 더 편리하게 만들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의식적’이라기보다 차라리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야 된다. 이런 점에서 전통 사회의 삶과 근본적인 차이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상대적이며,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전통 사회인들은 전통과 관습이 무수히 반복되는 무의식적인 행위와 연결되지만, 다른 하나는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좀 더 새롭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더많은 물자와 노동력이 필요한 문명이었다(정복과 식민지 경영, 고대 노예 국가의 탄생 등 인류 문명의 부정적 요소는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서구의 근대화의 발전은 결국 문명 자신이 갖는 방향에 의해 타민족을 지배하거나 식민지화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으며 이를 알아차린 레비-스트로스는 서구 문명이 인류가 가야 할 진보의 방향이 아니란 것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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