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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은 금속화폐의 악마성 고발하는 연암의 思惟
「허생」은 금속화폐의 악마성 고발하는 연암의 思惟
  • 강명관 부산대·한문학과
  • 승인 2018.02.05 12: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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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허생의 섬, 연암의 아나키즘』 강명관 지음 | Humanist | 424쪽

『열하일기』는 연암 문학의 정상부일 것이고, 그 중 「허생」(흔히 「허생전」이라 부르는 작품)은 그 중 가장 날카롭고 기이한 봉우리일 것이다. 「허생」의 경개는 잘 알려져 있다. 책만 읽는 허생은 아내의 푸념에 집을 나와 변부자에게 빌린 은으로 과일과 말총의 買占을 통해 큰돈을 번다. 그 돈으로 허생은 변산의 군도를 이끌고 무인도로 들어간다. 허생은 그곳에서 생산한 쌀을 나가사키로 싣고 가 飢民을 구제하고, 은 1백 만 냥을 받는다. 1백 만 냥 중 50만 냥은 바다에 버리고 섬에서 나와 40만 냥은 구휼사업에 쓰고  나머지 10만 냥은 변부자에게 갚는다. 이후 변부자의 도움으로 생계를 꾸리던 허생은 변부자가 데리고 온 李浣의 북벌책을 비판한 뒤 종적을 감춘다.
「허생」에 대한 거의 모든 연구는, 허생이 상업과 무역에 종사한 것에 주목해, 「허생」이 상업과 무역을 지지하고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특히 연암의 지적 동반자였던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주장했던 상업·무역론과 허생의 매점·나카사키와의 무역을 병치하면서, 「허생」은 실학파의 상업관·무역관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실학파의 상업관 반영하는 작품?

하지만, 「허생」을 포함한 「옥갑야화」 전체를 찬찬히 읽어보면, 연암은 상업과 화폐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연암의 주장은, 화폐와 상업은 필요하되, 결코 윤리나 도덕 같은 가치에 선행할 수는 없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암의 주장은 경제가 전면화 되지 않는, 달리 말해 화폐와 상업, 상품이 전면화 되지 않는 사회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허생」의 주류적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허생의 상행위는 군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나가사키 무역은 기민을 구제하려는 윤리적 행위였다. 쌀 역시 상품으로 생산된 것이 아니었다. 매점과 무역은 1회로 끝났다. 허생이 벌어들인 은은 다시 상업과 무역에 투입되지 않았다. 그것은 무한히 증식하는 자본이 아니다. 허생은 상인이 아니고, 그에게 상업과 무역은 최종 목적이 아니었다. 허생은 은 1백만 냥 중 50만 냥을 섬에 필요 없는 것이라면서 바다에 쓸어 넣는다. 남은 50만 냥 중 40만은 조선으로 돌아와 기민 구제에 사용하고, 10만 냥은 변부자에게 갚는다. 다시 赤貧이 된 허생은 결코 화폐에 집착하는 인물이 아니다. 화폐를 폐기해 버리기까지 하는 그의 퍼포먼스는, 화폐에 대한 연암의 부정적 사유를 반영한 것이다.

「옥갑야화」의 6화는 화폐 혹은 경제와 윤리의 관계를 주제로 삼는다. 한국 서사문학의 전통에서 매우 낯선 이 주제는, 넓게 보아, 조선의 銀經濟圈으로의 편입, 또 은에 근거한 금속화폐의 유통에 반응해서 설정된 것이다. 이 주제가 내포한 경제적 변화는 과연 긍정적인 것인가? 조선후기 금속화폐의 유통, 그로 인한 상업의 발달(얼마나 발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은 일반적으로 역사적 진보로 해석돼 왔다. 다만 이것은 현대의 역사 기술 속에서 이뤄진 해석일 뿐이고, 실제 그것이 당대 사회에 가져온 효과의 리얼리티를 반영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문헌자료가 입증하듯, 은과 금속화폐의 유통은 화폐의 축적에 집착하는 인간 부류(예컨대 역관)을 낳았고, 한편으로는 그것을 이용한 고리대의 출현은 농민의 경제적 몰락을 가속화했다. 곧 화폐는 농민을 토지로부터 축출하는 새롭고 획기적인 도구가 됐던 것이다. 허생이 무인도로 데리고 들어간 변산반도의 군도는 다름 아닌 토지에서 축출된 농민들이었다.

연암은, 통용 이후 즉각 악마성을 드러낸 화폐에 대해 깊이 사유한 것으로 보인다. 곧 「옥갑야화」 의 「허생」 이전의 6화에서 그는 화폐와 윤리의 관계를 문제 삼고, 화폐가 윤리적 가치에 선행할 수 없다는 판단을 거듭 확인했던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화폐와 상업에 대한 연암의 생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우리가 이제까지 믿어온 화폐와 상업을 역사 발전의 절대적 지표로 삼을 수 없으며, 「허생」 혹은 「옥갑야화」를 그것을 지지하는 텍스트로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허생이 섬으로 들어간 이유

변산반도의 군도는 토지에서 축출된 농민이다. 군도의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조선후기 사족체제가 노정한 제 모순을 해결하는 것과 같다. 모순을 제거해 안정을 도모하려는 사족체제의 자기 조정기획(이제까지 이것을 우리는 ‘실학’으로 불러왔다)은 임병양란 이후 무수히 제출됐지만, 실행된 적은 없었다. 조정기획은 자신의 개혁안을 현실에 강제할 실행프로그램을 결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생이 섬으로 들어간 것은 사족체제의 조정기획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전제한 것이다.

「허생」에서 섬의 존재는 비상하게 중요하다. 섬은 상상 속에서 혹은 현실에서 국가권력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공간으로 존재했다. 민중들은 체제의 수탈이 부재하는 공간으로 고립된 섬을 상상하기도 했고, 또 실제 그런 섬을 찾아 흘러들기도 했다. 섬만이 아니라, 교통 미발달로 인해 국가권력이 미치지 않는 오지도 실재하였다. 전근대에 국가권력이 부재하는 공간을 민중이 간절히 염원했고, 또 그런 공간이 실재했음을 상기한다면, 「허생」의 섬은 오히려 현실적인 것일 수 있다.

허생은 섬을 떠남으로써 권력을 포기한다. 홍길동은 섬에서 왕이 된다(율도국). 홍길동은 혈통에 따른 적서차별이 부당함을 지적했지만, 그는 스스로 왕이 됨으로써 사회적 차별의 문제를 개인화했다. 허생이 스스로 섬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포기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허생의 섬은 지배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허생은 유일하게 문자(한자-한문)를 아는 사람을 데리고 나옴으로써 이데올로기를 폐기한다. 섬은 화폐도, 상업도, 지배자도, 지배이데올로기도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농민으로 구성된 자율적 공간이 됐다. 허생의 섬은 곧 연암의 아나키즘이 실현된 공간인 것이다.

나는 『허생의 섬, 연암의 아나키즘』에서 과거의 「허생」 독법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그 독법이 오류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국민국가의 건설기, 자본주의의 성립기에 상응하는 독법이었을 뿐이다. 달리 말해 「허생」에 대한 기존의 주류적 해석은, 화폐와 상업, 무역의 확대를 역사의 발전으로 보는 근대적 시각에서, 국민국가와 자본주의가 역사적 필연이자 정당성을 갖는 것임을 입증하려는 작업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독법은 나름의 타당성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타당성을 회의해야 시기가 도래했다.

국가와 자본의 권력은 지금 이 땅에서 과잉 충족되고 있다. 모든 것은 상품이 됐고, 노동을 팔아 획득한 화폐로 그것을 소비한다. 인간은 오직 화폐-상품과의 관계에서 정의될 뿐이다. 모든 사회적 관계는 오직 화폐-상품으로 매개될 뿐이다. 화폐의 획득, 상품의 소비는 모든 가치를 배제하는, 생의 독점적, 궁극적 근거가 됐다. 국가는 자본을 지지하는 야누스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인간은 국가와 자본 권력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 이제 관점을 달리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국가와 자본의 권력에서 해방되기 위해 아나키즘이 실현되는 허생의 섬은 작지만 하나의 반성적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옥갑야화」와 「허생」에 대해 과거와 다른 해석을 시도했다. 나의 해석은 가능한 수많은 것 중 하나일 뿐이다. 나의 해석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해석이야말로 우리에게 보다 큰 삶의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강명관 부산대·한문학과

성균관대에서 박사를 했다. 저서로 『열녀의 탄생』, 대표논문으로 「16세기 말 17세기 초 擬古文派의 수용과 秦漢古文派의 성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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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3ㅠ 2018-07-15 00:40:17
아..어렵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