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27조 1항은 독소조항”…‘경제’ 위한 과학기술 탈피해야
“헌법 제127조 1항은 독소조항”…‘경제’ 위한 과학기술 탈피해야
  • 최성희
  • 승인 2018.02.0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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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계 긴급토론회 ‘개헌 어떻게 할 것인가’

헌법은 미래 사회변화를 담아내는 그릇이 돼야한다. 특히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헌법이 제정된 목적은 국가 권력을 통제하고 국민들의 자유를 지키는 데에 있다. 현행 헌법은 ‘87년 개헌’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총 9차례 개정을 거쳐 왔다. 헌법 제127조 제1항은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과학기술이 경제적 발전의 수단으로서 언급돼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사회에서의 국가과 국민의 관계 규정


‘개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과학기술계 긴급토론회(이하 토론회)가 지난 26일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개최됐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김명자, 이하 과총),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이사장 원광연, 이하 국과연),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이명철), 한국공학한림원(원장 권오경), 국회 변재일 의원(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더불어민주당), 송희경 의원(자유한국당), 신용현 의원(국민의당), 오세정 의원(국민의당)이 함께 주최했다.

김명자 과총 회장은 개회사에서 “작년부터 진행된 개헌 논의가 본격화된 상황에서 여러 단체가 과학기술 관련 조항 개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며 “2월 초까지 여러 의견을 모아 정리하고자 한다”며 이날 토론회 자리의 취지를 밝혔다. 원광연 국과연 이사장 역시 “인간의 사고, 가치관과 행동은 잠재의식에 따라 결정된다. 현재 헌법이 내재한 집단의 잠재의식은 과학기술이 경제발전의 수단이라는 거다”며 수단으로서의 과학기술의 정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뒤이어 보건복지부 기관생명윤리위원회 평가인증사업단, 과총 과학기술입법지원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김현철 이화여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가 「과학기술사회 헌법의 기본 방향과 개념」을 주제로 발제를 했다. 그는 “오늘 대표로 과총 개헌TF가 의논하던 안을 발제하게 됐다. 이 자리를 계기로 과학기술 조항 보완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길 바란다”며 이날 토론회의 취지를 정리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실조건에 기반한 나라의 틀이며, 본보기로서의 국가와 국민을 상호 규정해 성립시키는 법적인 최상의 당위 명제”라며 헌법의 성격을 정리했다. 즉, ‘과학기술사회에 국가는 어떠한 역할을 하고. 국민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담는 것이 곧 헌법이라는 의미다.

국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미 60년대 중반부터 과학기술 사회에서 인권의 문제가 대두됐다. 1976년 성립된 ‘국제인권규약’ 중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15조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과학의 진보로부터 얻어진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각 국가는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리우선언과 의생명과학에 관한 유네스코 생명윤리와 인권 보편선언 등 여러 인권선언에서도 모든 인류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그로 인한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있다. 다시 말해서, 과학기술사회에서의 기본권이 우리나라 헌법 개정에서도 반영돼야하며 국민들 사이 공감대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발제의 요점이다.

헌법의 과학기술 관련 조항을 ‘어떻게 개헌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에 대해서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헌법의 전문에 과학기술 개념 열거 △총강에 국가의 기본적 책무로 선언 △기본권 목록에 과학기술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기본적 인권을 반영할 것 등이다. 또한, 그는 헌법개정 과정에서 ‘과학기술사회를 헌법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개헌, 전략적으로 접근 필요

이날 패널토론의 좌장을 맡은 김명자 회장은 “과학기술계가 국회 개헌 TF논의를 하면서 다른 분야와 형평성을 현실적으로 고려해 소극적인 방안을 내놨다”며 패널토론의 장을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 자리한 패널들은 과총TF가 내놓은 방안과 그 취지에 대한 전반적인 공감을 표했다. 특히, 과학기술이 경제발전의 수단으로서 개념화한 제127조 1항은 독소조항으로서 개정될 필요가 있음에 동의했다.

물리학 전공의 민병주 UNIST 초빙교수는 “현 정부 들어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삶의 질, 안전과 행복 쪽으로 그 초점이 옮겨가고 있으며, 과학기술과 관련된 부분이 전문과 총강에 ‘과학기술’이라는 글자를 추가해 이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회적 공감대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임기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은 조선왕조실록에 세종과 정조시기를 제외하면 과학기술계 학자나 관료에 대한 기록이 없을뿐더러 사회전반에 공감대가 확산되지 못했다는 점을 들며 “‘과학기술’이라는 용어에 혁신을 덧붙여 전략적인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는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즉, 개헌에 있어서도 교육계와의 연계, 재난에 대한 위험관리 등 국민적, 시대적 공감대를 얻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임 원장이 주장하는 요지다.

이어 법조계와 학계의 현실적인 조언도 잇따랐다. 박경주 리인터내셔널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오늘날 헌법을 보면 옛날이야기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에 비해 이번에 마련한 헌법 개정안은 내용이 겸손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헌법은 사회의 모습을 소극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며 특히 기본권 부분은 그렇다. 오늘날 과학기술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에 있다는 점을 헌법이 직시하지 않는다면 국제 경쟁에 뒤떨어질 것”이라며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박경주 변호사는 한발자국 “기본권에서 그 부분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맥락에서 제127조 제3항에 대해서도 그는 “헌법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대통령의 의무를 명시해야할 시대가 올 것”이라며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을 거듭 주장했다.

뒤이어 서혜석 법무법인 로고스 상임고문도 “과학기술을 총강이나 기본권에 넣을 수 있다면 전문에서는 빼도 되겠다. 또한 제22조 3항과 제127조 1항과 상충되지 않도록 유의해야한다”고 덧붙였다. 박상욱 숭실대 교수(행정학과)는 “현행 헌법은 경제발전과 과학기술이 병렬적으로 서술됐던 80년 헌법에서 오히려 퇴보했으며 그나마 현재 과학기술이라는 용어가 제9장(경제장) 밑에 있기 때문에 R&D투자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다”며 보다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주문했다. “경제장은 단순히 경제학이나 경제성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이다”면서 결과적으로 경제발전과 과학기술을 병렬적으로 표기해야한다는 안을 내놨다.

최지선 문선로앤사이언스 변호사의 주장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과학기술의 논의가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근본적인 측면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한다”면서 제34조 사회권과 제35조 환경권 조항에 ‘과학기술’을 명시해야 할 것을 제안해 참석자들의 이목을 이끌었다. 토론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양승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경영지원본부장은 “현재 제127조 3항의 ‘자문기구’는 임의상 기구로 국민경제자문회의처럼 명확한 근거 필요하다. 또한 기존 어구를 삭제하기보다는 총강에 ‘과학기술’을 명시해 국가 운영의 기본원리로 삼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과학기술은 더 이상 경제발전의 수단이 아니다. 미세먼지, 원자력 발전 등 산재한 사회문제들로 미루어볼 때, 과학기술은 국민의 삶의 질과도 긴밀하게 연결돼있다. 김명자 회장은 이날 자리를 정리하면서 “법률학의 관점에서 보면 법과 규제는 미래 비전을 담는 게 아니지만, 사회변동 과정에서 병리현상으로 불거져 나오면 그때서야 뒤늦게 규제를 가하고, 법을 만든다. 과학기술인으로서 이러한 현상을 직시하고 최소한의 개헌안을 내놓은 것”이라면서 “서로간의 의견이 상충되지 않는 선에서 현실적인 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이와 같은 과학기술계의 개헌에 대한 염원이 실제 개헌으로 이뤄질지, 또 과학기술 개념이 헌법에 어떻게 담기게 될지가 주목된다.

최성희 기자 is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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