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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교수가 빈대떡 부쳐먹기로 한 사연
‘잘 나가는’ 교수가 빈대떡 부쳐먹기로 한 사연
  • 심우경 / 고려대
  • 승인 2003.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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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이야기: 정부자문위원 3년의 경험


일이 밀려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연구실에서 눈을 좀 붙였더니 잠이 오지 않아서 컴퓨터를 켜서 몇 자 적어 본다. 요즈음 나에게 속상한 일이 너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소위 자문위원회라는 것이 대표적인데 3년 전 난데없이 건설교통부 장관 명의로 2년 간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이하 중도위) 위원으로 위촉한다는 위촉장을 받으면서 시작된 것이다. 한 마디 사전에 나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날아온 것이라 어이가 없었고 내 전공이 조경학인데 웬일인가 싶어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로 물어봤더니 대학 안배 때문에 나에게 위촉하게 됐다는 대답이었다. 일리가 있는 말처럼 들렸고 교수업적평가에 사회봉사 점수가 있으니 내심 잘 됐다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중도위’는 국회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끝발이 센 위원회라고 해서 속으로 출세를 이렇게도 하는구나 싶어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자랑도 했다.
 
첫 ‘중도위’ 회의시간의 기억

첫 회의에 나갔더니 쟁쟁한 원로 교수님들이 자리잡고 계셨고 풋내기 위원을 환영해 주셨는데 자신들은 20~30년 그 일을 해오고 있다고 공갈 반, 자랑 반 하셔서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회의가 진행되는 것을 보니 신입 위원은 정족수 채우는데 불과했으며, 더구나 회의비를 5만원 주고 테이블에는 맹물 한 병 달랑 놓여 있는 것이었다. 구청에 가도 과일 정도는 놓이는데 소위 중앙부서 회의인데 너무 한다 싶었다. 첫날부터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교수 대접이 말이 아닌데 이런 데 시간을 낭비해야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가문의 영광이니 내키지 않더라도 학교를 대표해서 참고 나가야 하느냐 하는 갈림길이었다. 들러리를 서다 보니 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이제는 벗어날 수 있겠지 하고 후련했는데 연초에 다시 위촉장이 내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날라 왔다.  


‘중도위’의 역할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올라온 도시계획을 최종 심의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책임이 막중한 위원회다. 그런데 올라 온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에 도시계획전문가가 있나 싶고, 위원회에서는 짧은 시간 내에 자세히 검토할 여유도 없이 내용을 뚝뚝 잘라 낸다. 지방에서 올라 온 공무원들은 아무 소리 못하고 풀이 죽은 채 체념하고 돌아간다. 더구나 가관은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연구하라고 설립해 놓은 ‘국토연구원’이 일을 도맡아 성의 없이 해 놓는 것이다.


며칠 전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온통 매스컴의 톱 뉴스가 된 신도시 부지 선정 건인데 ‘중도위’가 열리기 전날 건교부에서 소위 언론플레이를 해 버린 것이다. ‘중도위’ 심의도 하기 전에 매스컴에 터뜨린 배경은 ‘중도위’를 정책수립의 들러리로 보고 위원들을 무시한 처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나는 회의가 있는 날 학생들하고 2박3일로 경주권 답사계획이 있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양해를 구한 터였는데 이런 일이 닥쳐 경주로 내려가는 버스 속에서 담당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더니 얼버무려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사태가 비일비재하다. 대학 내에서 조차 들러리 자문위원회가 많으니 사회를 욕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젊은 교수들이 자문위 맡아야


그래서 이제는 집에 앉아 빈대떡이나 부쳐먹기로 했다. 고급 술집에 가서 시중드는 예쁜 아가씨들과 술을 마실 때는 부러울 것 없이 기분 좋지만 아침에 일어나 생각하면 아가씨 눈치보느라고 비싼 술도 제대로 마시지도 못하고 비싼 팁 생각하면 이중·삼중으로 속이 쓰렸던 경험을 많이 해봤다. 이 글을 쓰며 내게 걸쳐 있는 교내외 모든 자문위원은 다 정리하기로 맘먹었다. 이 글을 읽은 후배 교수들은 행복한 고민한다고 욕하겠지만 해 보니 별거 아니고 후회만 남는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정부의 각종 자문위원은 50세 미만의 원칙을 중시해서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 교수들이 맡을 것을 제언한다.


내가 67학번이니 이제 10여년 교직생활이 남았는데 앞으로는 욕심껏 사서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책이나 읽고, 강의 열심히 하고, 좋은 글을 쓰도록 해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나는 사은회 때마다 반복해서 하는 잔소리가 ‘너희들은 들어올 때는 금 덩어리였는데 왜 나갈 때는 풀이 죽어 돌덩어리가 되느냐’라고 묻는 것이었다. S대는 다이아몬드를 받아서 쇠 덩어리를 만들어 내보내고 있다. 그래서 우리 대학은 돌 공장이고, S대는 제철소인 것이다. 이제는 사은회도 없어졌으니 잔소리 할 때도 없게 됐다.

심우경 고려대 교수 (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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