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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으로 복원한 陽明의 삶과 사상 …주자사상 誤解 아쉬워
애정으로 복원한 陽明의 삶과 사상 …주자사상 誤解 아쉬워
  • 성현창 경기대
  • 승인 2003.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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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산책 : 『내 마음이 등불이다』(최재목 지음, 이학사 刊)

성현창 / 경기대 강사·철학

“陽明의 묘지 앞에 절을 올릴 때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는 저자의 고백은 양명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느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흠모해 온 첫사랑과의 재회에서 오는 복받침이었을 것이다. 양명을 소중히 여기는 저자의 심정은 “내 친구 양명”이라는 표현처럼 친근감에서 비롯해 양명학을 소개하고 전파하는 열정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4백쪽이 넘는 책의 분량에서도 느낄 수 있다.

4백쪽 분량으로 담아낸 哲人의궤적

양명의 “사상이 태동한 현장을 중시하면서 각 시기별로 성립한 사상 내용을 유기적으로” 짜 맞춘 책의 구성은, 죽음으로 이끈 지병인 폐병을 비롯해서, 투옥과 용장으로의 좌천, 천자의 명령에 의한 死地로의 세 차례에 걸친 군사행동, 조정대신들의 시기와 질투에 의한 정치적인 압박 등, 보통사람으로는 견딜 수 없는 ‘百死千難’의 우환과의 대결과 초극을 통해서 생성된 양명의 철학이 지금 여기의 구체적인 삶의 체험에 입각한 직접적이고 생동감있는 것임을 알리는 데 충족한 것이었다. 더욱 주도면밀하면서 충실한 원전의 해석과 적절한 배치는 양명의 역동적인 삶과 사상 형성을 이해하는 데 설득력을 한층 더해 준다.

土官으로 하여금 토착민을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 지방을 안정시키는 책략임을 건의한 상소문은 구체적인 사태에 즉해서 연마해나가는 ‘事上磨鍊’이 정치현장에서 응용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양명이 파란만장했고 불운한 삶을 극복한 것도, 부임길에 병든 노년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선 채로 정든 사람들과 젊은 학생들을 향해 강의한 힘도 피처럼 따뜻하고 생생한 인간의 생명력의 근원인 ‘良知’를 그가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기성의, 위로부터 주어진, ‘고정불변의 진리’(定理)를 무조건 수용하여 시민 대중을 계몽할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언설은 주자 사상에 대한 비판의 소리로 들린다. “事事物物, 皆有定理(모든 개별 사물에는 모두 정리가 있다)”의 ‘定理’를 만고불변의 진리로 해석하는 근저에는 주자가 무엇보다도 기성의 규범을 우리들의 행동 평가의 기준으로 삼고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것은 당연한 지적이다.

그러나 一物(하나의 상황, 사태)에는 一理(하나의 이치)밖에 없다고 하는 程朱學의 전제는 행위를 규범화하는 것보다도 일회마다의 행위에서 적절함을 발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윤리문제를 개별적 상황을 떠나 단순히 고정불변의 원리·규범으로 해명하고자 하기보다는, 오히려 개별적 상황에 응해서 고려하고자 하는 현실대응적이고 유연하며 비규범적인 상황윤리적 요소가 주자 사상에 내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양명의 “心卽理(내 마음이 곧 이치다)”는 “이치에 마음이 종속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이치를 조정, 창출하는” 것을 뜻한다. “이치에 마음이 종속된다”고 함은 주자의 격물론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주자의 격물론은 처음에는 만물의 지적인 이해를 요구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조건반사적으로 외계에 대응할 수 있는 상태를 최고의 경지로 삼는다. 그것은 바로 “힘쓰지 않아도 맞으며 생각하지 않아도 터득하고”, “일흔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를 넘지 않는다”는 경지다. 이 경지는 “마음이 최종적으로는 외계에 대한 반응의 자연스러움을 恒常화함으로써 만물과 하나가 되는 것이지” 결코 “이치에 마음이 종속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덕적 양심인 良知의 깨달음

이상의 것뿐만 아니라, 저자는 순자를 정이천 및 주자와 함께 理學의 계통에 포함시키거나, 理와 敬을 차갑고 엄숙한 분위기로만 파악하거나 하는 등의 적지 않은 주자 사상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는 듯하다.

정확한 주자 사상의 이해가 양명 사상의 독창성을 노출시키는 데 직결된다는 것을 간과한 듯한 느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성폭행을 당한 네살짜리 여아가 어머니와 함께 만 35시간 동안 병원, 경찰서 등에서 빈번히 문전박대만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 뉴스는 매몰차게 차가워져 가는 마음과 마음으로 뒤얽힌 이 사회의 단면을 반영한 가슴아픈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피처럼 따뜻하고 생생한 생명력의 근원이며 도덕적인 양심인 양지를, 인간이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깨닫고 실현할 수 있다는 양명의 양지론과 사랑의 철학으로서의 만물일체론을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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