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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학과 ‘진짜’ 교수
위기의 대학과 ‘진짜’ 교수
  • 이덕환 논설위원
  • 승인 2018.01.2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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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破邪顯正으로 힘겹고 혼란스러웠던 丁酉年이 가고 戊戌年 새해가 밝았다. 그런데 대학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버렸다. 청와대 수석이 공개적으로 총장실을 찾아가서 청소와 경비 인력의 고용 문제까지 감독하는 지경이 돼버린 사립대학은 더욱 그렇다. 그렇지 않아도 교육부의 지나친 간섭으로 자율적인 학사 운영이 불가능해졌고, 비현실적인 반값 등록금 탓에 재정이 파탄 나버린 상황이다. 교육부가 강요하는 화려한 구호에 현혹돼 교육을 포기해버린 대학의 위기가 앞으로 더욱 악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대학을 위협하는 요인은 정부와 정치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학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땅에 떨어져 버렸다. 불합리한 대학입시가 공교육을 위축시키고, 사교육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대학에서 배우는 것이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심지어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세계 최악의 저출산도 대학 교육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자칫하면 60년대 ‘牛骨塔’과 같은 대학 무용론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

대학 내부의 문제도 심각하다. 학생들도 대학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수들을 향한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교수들이 자신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교육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들이 정부가 강요했던 특성화·세계화·벤처창업·성장동력·녹색성장·창조경제의 공허한 환상만 쫓아다닌 결과다. 지금도 교육부는 ‘4차산업혁명’과 ‘기본역량’이라는 정체불명의 虛像을 강요하고 있다. 대학에서 교육과 학문 증진을 위한 노력이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학생들의 인식은 정확한 것이다.

대학원 학생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많은 대학원생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등록금만 요구하는 대학원의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 ‘용역사업’과 ‘벤처’의 업무에 동원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정작 학생들에게 필요한 강의는 줄어드는 대신 성적표는 ‘연구학점’으로 채워지고 있다. 결국 학생들이 자신들을 단순히 지식생산과 대학행정에 참여하는 ‘노동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서울지역 6개 대학의 대학원 학생들이 근로자로서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보장받기 위해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의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 달에 출범식을 갖고, 앞으로 수도권과 지방으로 ‘세력’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고용노동부가 대학원생노조를 합법적인 노조로 인정해줄 것인지의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정상적인 학문 증진을 위한 교육과 연구가 사라져버린 대학원의 안타까운 현실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온전하게 교수들의 책임이다. 교육이나 연구보다 개인적인 권력·명예·이익을 챙기는 일에 매달리는 무책임한 교수들이 자초한 일이다.

학생과 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한 교수들의 절박한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을 가르치는 ‘스승’으로서의 권위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최고 수준의 전문성과 스승으로서의 충분한 인격을 갖춘 ‘진짜’ 교수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정치권을 기웃거리고, 대중을 현혹하는 얄팍한 말솜씨로 얻은 인기와 명성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학생과 사회에 모범을 보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연구윤리를 준수하고, 학생의 인권과 학습권도 존중해주는 것이 진정한 스승의 모습이다. 교육의 내용도 바꿔야 한다. 대학은 누구나 실용서에서 익힐 수 있는 얕은 처세술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연구비를 교수가 직접 관리하는 관행도 확실하게 바꿔야 한다. 교수가 학생들의 ‘고용주’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학원 학생들의 연구 참여가 ‘노동’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사실도 분명하게 일깨워줄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의 행정은 대학원 학생이 아니라 직원에게 맡기는 것이 마땅하다.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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