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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되는 산학연협력과 대학의 본령
강화되는 산학연협력과 대학의 본령
  • 박순진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8.01.2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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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과

지난 정부에서 고등교육법을 개정하면서 제15조 교원의 업무에 종래의 학생 교육·지도와 학문 연구 외에 산학연협력을 추가함으로써 교수가 산학연협력 업무를 부가적으로 ‘선택’하거나 경우에 따라 그에만 ‘전념’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가 마련됐다. 이즈음부터 산업계 친화적인 대학 혁신이 대학 사회에서 화두가 됐다. 지난 연말에는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면서 2018년 5월 시행 예정인 동법 제53조의2에 의해 사립대학은 교원 재임용 심사에서 종래의 학생교육, 학문연구, 학생지도 외에 산학연협력에 관한 사항을 평가에 포함하고 그에 관한 사항을 학칙으로 규정하게 됐다. 이에 따라 대학 교수의 역할에 일정한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돌이켜보면 대학 사회의 이런 변화가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대학체제와 학사운영을 산학협력 친화적으로 개편하는 논의는 이미 오래됐으며 몇몇 대학에서는 실질적인 전환이 있었다.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은 대학의 이런 변화를 노골적으로 부추기고 적극 지원했다.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LINC+사업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러 가지 우려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정부의 지원과 대학의 호응으로 대학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 이어 현 정부에서도 산학연협력을 중시하는 고등교육 정책기조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작금의 화두인 4차 산업혁명은 대학의 산학연협력을 오히려 더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산학연협력을 학생교육, 학문연구, 학생지도 등에 병기해 교원 재임용에 반영함으로써 대학 교원에게 이 업무를 직접적으로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일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고등교육법과 사립학교법의 개정 이전에도 대학은 교육과 연구를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산업계가 활용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는 역할을 꾸준하게 수행해온 터다. 개정 사립학교법이 시행되면 대학 교수의 업무가 명시적으로 확대될 것이고 대학의 역할도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사립학교법의 개정 사항이 학칙에 구체적으로 반영되면 사립대학에 재직하는 교수의 삶은 종래와 여러모로 달라질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갈 일은 대학의 변화가 아무런 부담이나 대가 없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교원의 업무가 확대되면 당장 교수 개인에게 업무 부담이 늘어날 것이고, 대학의 입장에서 보면 대학의 역할이 조정되는 일이니 당연히 상당한 부담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법률 개정에 따라 추가된 교원의 업무에 대응하고 대학의 새로운 역할을 감당하려면 이와 관련된 인력, 조직, 예산 지원이 확대되거나 조정돼야 한다. 대학교육을 산학협력 친화적으로 혁신하자면 대학 내의 재정 투입의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교육과 연구라는 대학의 본질적 영역이 희생되거나 약화돼서는 곤란하다.

반값등록금 정책과 등록금 동결 기조가 장기간 유지되고 있고, 정원 축소와 입학생 감소가 현실화되면서 대학 재정은 바닥난 지 이미 오래다. 연구재단 등을 통해 다양한 연구 프로그램이 지원되고 국가의 연구비 지원 규모가 증가하고 있지만, 대학 차원의 연구 지원은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많은 대학에서 연구비 지원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고, 연구년 제도가 축소되거나 심지어 폐지된 대학도 있으며, 제대로 된 연구 조교와 실험실습 조교가 없어 실험실 운영이 어려워진 사례가 드물지 않다. 실험실습비와 기자재 구입비도 뒷걸음질치고 있다. 교육의 질을 담보하는 일도 만만치 않고 학문 재생산 기반이 붕괴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대학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대학으로서는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기조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고 산업계를 위시한 사회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의 혁신은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정부의 예를 보면 정부는 재정지원사업으로 대학교육의 질적 변화를 지원하고 재정 부담을 해왔으나 대학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산업계 요구를 반영하라는 목소리를 높여온 산업계는 대학 교육을 위해 부담을 함께할 의사는 없고 구체적인 재정지원 실적도 거의 없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려운 재정 여건에도 불구하고 혁신의 노력을 지속하는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 확대와 산업계의 관심을 촉구한다.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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