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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 '일관성의 원리'를 추구하는 매혹적인 열정
책들의 풍경 : '일관성의 원리'를 추구하는 매혹적인 열정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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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지식』(헤겔 지음/황설중 옮김, 아카넷 刊)· ●지식의 고고학』(미셀 푸코 지음/

단순히 독일관념론의 봉우리로서가 아니라, ‘지식의 백과사전’을 통해 동시대 지식의 총체성을 규명하려고 한 야심가 헤겔에게 친밀감을 갖는 이라면, 그의 처녀작 ‘믿음과 지식’(아카넷 刊)에 담긴 청년 헤겔의 지적 약동감을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종교에 대한 계몽주의의 쓸쓸한 패배로 동시대를 조망했던 비관적 시선이 인간이성에 대한 낭만적 믿음을 철학적 논리로 규명해가는 과정 말이다.

미셸 푸코의 첫 이론적 주저인 ‘지식의 고고학’(민음사 刊)은 헤겔의 이 책과 함께 견줘 읽어볼 만한 책이다. 총체성으로 다가간 한 사람과 그 반대편으로 질주한 또 한 사람이 언뜻 어울리게 느껴지는 것은 이 양자가 지식을 논하는 메타-날러지(meta-knowledge)의 영역에서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책은 이들 철학자에 대한 고정관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독서체험을 제공한다. 헤겔 철학은 “헤겔을 읽다가 맑스를 보니 너무 명료해서 싱겁게 느껴질 정도”라고 표현될 만큼 그 난삽함이 유명하다. 경제학적 백그라운드 없이 ‘자본론’에 도전했다가 미끄러진 평범한 독자에게 이 말은 가혹하게 들린다. 그런데 ‘믿음과 지식’은 충분히 관념적이고 충분히 변증법적인데도 불구하고 잘 읽힌다. 이른바 동시대인들에 대한 헤겔의 구어체적 비판이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지식의 고고학’은 정반대다. ‘감시와 처벌’, ‘광기의 역사’의 풍부한 역사적 사례와 매혹적인 문장은 사라지고 없다. 개인적인 파토스가 철저히 배제된 채 처음부터 끝까지 추상적이고 정교한 인식론적 논의로 일관하는 무색, 무취, 무미의 세계다. 어떻게 이런 상반된 글쓰기를 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말하니 헤겔이 만만해 보이고 푸코는 읽기도 전에 질리는 분위기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30대 초반의 헤겔은 이미 이 책에서 절대이성으로 종합되는 변증법적 사유의 초벌형태를 선보인다.

그는 칸트, 피히테, 야코비 등 당대의 철학자들이 감성을 이성 밖의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이성의 영역을 축소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늘날의 어법으로 말하면 인식론적 이분법에 빠져있다는 비판이다. 푸코는 일종의 자기변론으로 이 책을 썼다. 그의 역사서술은 당대의 주류들에게 그 실증성과 과학적 엄밀성을 의심받은 바 있다. 푸코는 거기에 대한 응답으로 아날학파의 역사학과 바슐라르, 깡길렘의 인식론을 조화시킨, 거기다 니체적 상상력으로 기존의 이론이 지니고 있는 ‘인식론적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합리성이 나타나는 자신의 학문방식을 체계적으로 정당화했던 것.

헤겔의 책에서는 모종의 흥분이 느껴진다. 이제 막 아카데미에 입성한 젊은이가 당대의 철학적 지성들보다 인식론적 우위에 있다는 판단은 얼마나 매혹을 안겨줬을까. 또한 그것을 증명해가는 과정조차 얼마나 스릴 있었을까. 이 책이 헤겔의 책 중에서도 유달리 박진감 있게 읽히는 이유는 이전 세대를 부정하고 자신의 세대를 수립하는 사유의 新生, 지적 모험을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이성의 외부에 위치한 종교를, 인간의 지식과 조화를 이루는 ‘믿음’으로 재정위시킴으로써 계몽이성의 확장을 도모하는 낭만적 열정으로도 가득하다.

어떻게 보면 지식은 지극히 가치중립성을 띠고 있다. 푸코의 책은 인식론적인 얘기를 하고 있어서 얼핏 객관성의 전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제기된 푸코의 논제 또한 당대의 인식론적 ‘성좌’를 어지럽히는 심각한 도전장이다.

그는 ‘모순들’이라는 장에서 자신의 저술에 불만을 품는 세력을 암시적으로 다그치기도 한다. “知性史가 말들의 사용에서의 불규칙성, 양립불가능한 다수의 명제들, 조화되지 못하는 의미작용들의 놀이를 다루는 경우가 있겠는가? 지성사는, 다소간 심오한 수준에서, 언설을 조직화하고 그에게 숨겨진 통일성을 복원시켜 주는 일관성의 원리를 찾아내는 것을 의무로 삼는다”라고 말이다. 푸코는 이어서 모순에 집착하는 작은 실증성을 넘어서는 큰 실증성의 원리에 대해 끊없는 미로를 형성하며 파고든다.

푸코적 사유의 총체성이 담긴 ‘지식의 고고학’과 청년 헤겔이 동시대 철학에 대한 비판으로 고유한 사변철학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두 책은 역설적인 독서의 자리를 통해 ‘총체성’이니 ‘파편성’이니 하는 용어에 대한 집착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한다. 사실 총체성과 파편성은 사유의 본래적인 두가지 모습인지도 모른다. 우리 목소리로 된 ‘지식’의 해부서도 이쯤에서 기대된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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