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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갑질에 몸살 앓는 신임교수 … “문제 제기도 어려워”
대학 갑질에 몸살 앓는 신임교수 … “문제 제기도 어려워”
  • 한태임 기자
  • 승인 2018.01.28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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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교수들, 어떤 고충 겪고 있나?

신임교수를 향한 대학가의 ‘갑질’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흘러나오고 있다. 임용 시 계약 내용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소수의 신임교수들에게 업무를 과다하게 몰아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A대학에 새로 부임한 ㄱ교수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때는 신임교수 OT 날이었다. ㄱ교수는 부푼 기대를 안고 신임교수 OT에 참석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대학 측으로부터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듣지는 못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을’의 입장에서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ㄱ교수는 새 학기 첫 강의를 시작했다.

일주일 후 대학 본부가 새로운 계약 규정을 공포하자 ㄱ교수는 그제야 자신이 ‘연봉제 교수’로 임용됐음을 깨달았다. ㄱ교수는 난감함에 발을 동동 굴렀고, 소식을 접한 A대학 교수회가 대학 본부를 노동청에 고발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에게는 임금의 구성 항목·계산 방법·지급 방법 등이 명시된 서면을 근로자에게 교부해야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 측이 잘못을 인정하고 합의함에 따라 ㄱ교수의 일은 일단락됐다.

비단 A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이 신임교수에게 계약 내용을 알리지 않아 문제가 된 사례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박순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은 “계약 임용으로 채용되는데도 당사자는 계약 내용을 모르고 있다가, 몇 달치 월급을 받은 후에야 뒤늦게 깨닫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상황을 전했다.

대학이 신임교수들에게 과도한 업무량을 부과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서울의 B대학은 신임교수에게 정교수 3배 이상의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 B대학에 새로 부임한 ㄴ교수는 “연구비도, 연구 인력도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연구 결과를 만들어내라고 하니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갓 부임한 신임교수들에게는 당장 연구비를 수주하고 연구 인력을 모집하는 일이 쉽지 않다.

B대학은 신임교수가 달성해야 하는 연구성과와 교육성과도 ‘포인트 제도’로 정량화했다. 예를 들면 논문 1편은 300점이다. 주저자, 공저자 여부에 따라 점수도 세분화돼 있다. 논문을 단독으로 쓰면 300점을 얻지만 공저자일 경우 N분의 1로 점수를 나눠 받는다. 만일 신임교수가 재임용 심사일까지 1천200점을 채우지 않으면 해고를 당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실제 해고된 사례도 있었다. ㄴ교수는 부당함을 느껴도 대학에 항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절대 ‘갑’과 절대 ‘을’의 관계에 놓여 있다 보니, 결국은 대학의 요구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갑질’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당사자로 지목된 대학 측에서는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서울의 몇몇 대학 교무처장들은 “대학 평가 때문에 이전보다 신임교수들의 업무가 과중해진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모든 대학이 그런 것은 아니며, 우리 대학은 신임교수들의 연구실적을 보장해주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선을 긋거나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한태임 기자 hantaei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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