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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과 모나리자의 민낯
디지털 기술과 모나리자의 민낯
  • 김재호 기자
  • 승인 2018.01.22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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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다빈치 얼라이브: 천재의 공간’, 3월 4일까지 용산전쟁기념관.
왼쪽부터 적외선 사진과 오늘날의 색, 원본색에 대한 이미지, 바니쉬(투명 코팅제) 제거 그림, 적외선 사진 색상 반전 그림 ⓒ김재호 기자

화가이자 조각가, 엔지니어, 음악가면서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이다. 인본주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다빈치. 그를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오는 3월 4일까지 용산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다빈치 얼라이브 : 천재의 공간>이 펼쳐진다.

다빈치는 과학의 전 분야에 업적을 남겼다. 그의 디자인은 자동차, 탱크, 교량, 인공위성, 로봇, 인체 등 관여하지 않는 분야가 없다. 끊임없는 호기심과 관찰로 과학의 지평을 넓혔다. 다빈치의 업적을 한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이번 전시회의 특징이다.

다빈치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모나리자」다. 전시회 마지막엔 한 섹션을 할애해 「모나리자」의 모든 것을 전시하고 있다. 다빈치의 작품은 대부분 미완성이다. 특히 「모나리자」는 그가 말년을 보낸 프랑스에서 집중해 작업했다고 전해진다. ‘다빈치 얼라이브’에는 다섯 점의 「모나리자」를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에선 「모나리자」를 과학기술로 분석해보았다. 「모나리자」의 민낯을 물감 성분, 밑그림으로 살펴보고, 디지털 기술로 복원하며 본래의 모습과 그려진 과정을 추적한 것이다.

「모나리자」는 피렌체의 비단 상인의 아내 리사 게라르디니를 모델로 한 초상화이다. 1503년에 그리기 시작해 1517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모나리자」는 포플러 나무 패널 위에 유화 물감으로 그렸다. 스푸마토 기법을 썼는데, 절묘한 붓터치로 붓자국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다빈치가 즐겨 사용한 스푸마토 기법은 물체의 형태에서 윤곽선을 안개처럼 번지게 그리는 명암법이다. 물체와 공간의 설정을 고민한 결과로 쓴 기법이다.

프랑스의 광학기술자인 파스칼 코테는 「모나리자」를 오랜 기간 연구해왔다. 고해상도의 멀티 스펙트럼 카메라로 단층을 촬영해 그림을 분석한 결과, 「모나리자」 그림의 표면 아래 25개의 비밀이 담겨 있다. 중요한 건 「모나리자」가 미세한 수정을 여러 번 거쳤다는 것이다. 복원 작업과 덧칠 등을 통해 완벽한 작품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는 뜻이다. 천재는 엄청난 노력을 하는 인물일 뿐이다.

노력하는 천재의 모든 것을 경험하다

1452년 4월 15일 이탈리아 빈치에서 태어난 다빈치는 공증인 아버지와 농부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상업 분야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 다빈치는 부모님을 따라 피렌체로 갔다.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피렌체에서 다빈치는 예술과 과학기술을 접하며 그의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다빈치는 공방의 견습생으로 들어가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성령의 잉태를 알리는 「수태고지」 작품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다빈치는 여러 명언을 남겼다. 그는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보려는 사람, 보여주면 보는 사람, 보여줘도 안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관찰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또한 다빈치는 “성공한 사람들은 뒤에 물러 앉아 일이 일어나기만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 일을 만들어낸다”고 밝혔다. 직접 하는 것이야말로 재능의 발현이 촉발되는 계기가 된다.

‘최후의 만찬’은 디지털 화면으로 감상할 수 있다. 밀라노에 있는 시제 벽화와 같은 크기로 재탄생시킨 것인데, 5분 동안 그림의 뒷이야기와 다빈치의 고민들이 흘러나온다.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도’는 원과 사각형 속의 인간을 보여준다. 인체의 비율 안에 우주의 질서가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원근법과 기하학의 조화를 다빈치는 고민했다. 이 그림 옆에 다빈치는 “한 사람은 24개의 손바닥 길이와 같다”고 썼다.

다빈치는 “가장 고귀한 즐거움은 이해에서 얻는 즐거움이다”라고 생각했다. 그 모든 것의 출발은 ‘이해’라고 간주한 것이다. 다빈치는 몸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수십 차례 해부실험을 했다. 정확성과 생동감을 드러내는 그의 해부노트엔 두개골, 두뇌, 심장, 몸통, 척추, 생식기관 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 한편, 다빈치는 새장 속의 새를 가여워해 풀어주곤 했다고 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다빈치는 1519년 5월 2일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엔 걸인 60명이 따라 걸었다고 한다. 다빈치는 미켈란젤로, 라파엘 등 예술가와 마키아벨리 같은 정치가, 그리고 과학자들과 많은 교류를 했다. 한 번도 부자였던 적이 없고, 평생 독신으로 살며 채식을 한 다빈치.

대신 그는 고민의 흔적을 수많은 노트에 남겼다. 다빈치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얼라이브), 그 이유는 그의 기록 때문일 것이다. 그가 쓴 글자들은 거울에 비친 듯 거꾸로 적혀 있다. ‘거울 문자’라고 불린다. ‘다빈치 얼라이브’로 그림과 기계, 음악과 기록에 관심 있는 모든 이가 디지털로 복원된 다빈치의 작품들을 즐길 수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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