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8:30 (금)
기술과 정책의 과잉…창작·비평 겸한 연구자 장려해야
기술과 정책의 과잉…창작·비평 겸한 연구자 장려해야
  • 심상민 / 호서대·콘?
  • 승인 2003.05.2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쭦학술쟁점 : 디지털콘텐츠 연구, 어디까지 왔나



 


‘콘텐츠’의 감염 속도는 사스를 훨씬 능가했다. 불과 수년만에 콘텐츠가 과거의 IT, 벤처와 같은 간판들을 제압하고 새로운 보편명사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네티즌들이 2003년의 최대 키워드로 ‘문화콘텐츠’를 꼽을 정도였다. 연구에서도 ‘콘텐츠 러시’를 확연하게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달려간 혁신그룹은 응용연구 진영이다. 일본의 소니,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한국의 SKT, KT 등이 선두 주자들. 이들은 각자 사업고도화 때문에 콘텐츠 인터페이스, 가치평가, 마케팅전략 등 실질 테마에 먼저 매달렸다.


덩달아 정책 당국도 콘텐츠 관련 정책개발과 연구지원에 적극 나서게 됐다. 문화콘텐츠진흥원, 문화관광개발원, 게임개발원, 방송영상산업진흥원, 소프트웨어진흥원, 한국전산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디자인진흥원 등이 대표적인 콘텐츠 관련 연구기관들이다.
이에 비하면 학계의 움직임은 늦은 편이었다. 먼저 전자상거래와 e-비즈니스 연구를 활발히 해왔던 경영학계와 신경제 논쟁을 꽃피웠던 경제학계가 발동을 걸었다. 아주 실용적인 휴대폰 인터페이스 디자인 개발 같은 영역에서는 인지과학계가 재빨리 참여했다. 그러다가 ‘CT(Culture or Content Technology)’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CT’는 한국과학기술원에서 VRRC(가상현실연구센터)를 주도하고 있는 원광연 교수가 2001년 7월 청와대 보고 때 사용한 말. 대략 이 시점부터 콘텐츠에 관한 이공계의 연구가 봇물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에 자극받은 ‘돌아온 탕아’들도 합류했다. 콘텐츠 원형인 인문학과 예술의 진영에 서식하고 있던 이론가와 작가들이었다. 이 흐름은 2001년 12월 문화부가 주최한 ‘인문학과 예술 그리고 콘텐츠의 만남’이라는 포럼을 통해 크게 증폭됐다. 문화콘텐츠학회, 인문콘텐츠학회, 문화산업포럼, 한국콘텐츠학회 등이 흐름에 가세했다. 기존의 언론학회, 방송학회,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 등 관련 학회와 기관들도 가세했다.
여기서 가장 큰 특징은 단연 ‘학제간 통합’이다. 이는 디지털콘텐츠의 본성 자체가 미디어기술과 정신적 가치, 문화이미지를 모두 아우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묘한 특성 때문에 콘텐츠는 과거 개별 학문에서 서로 교호하지 못했던 분과적 연구 습성을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콘텐츠 연구는 새로운 21세기의 메가트렌드인 융·복합화 즉 대통합의 흐름을 제대로 실현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현 단계 콘텐츠 연구에서는 ‘기술과 정책의 과잉’이 가장 우려된다. 디지털콘텐츠가 워낙 첨단 미디어 및 네트워크 기술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보니 자칫 콘텐츠의 외관을 좌우하는 기술부문에 연구 자원이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산업화와 정보화에서 개가를 이뤘던 기술인력과 연구진들이 타성을 버리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생산자동화 하듯, 초고속망 하듯 콘텐츠의 대량생산시스템을 디자인하면 된다는 그릇된 신념이 만연해 있다는 얘기다.
너무 서두르는 디지털방송 쪽을 보면 겉도는 기술 연구와 정책을 여실히 볼 수 있다. ‘품질’보다는 ‘품격’과 ‘품위’를 중시하는 콘텐츠의 특성을 무시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균형적인 콘텐츠 연구를 저해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콘텐츠 연구 러시는 이제 갓 시작 단계에 와 있으며 질적인 수준 제고를 위해 명료한 비전의 설정이 절실하다.
기왕에 콘텐츠가 견인해온 연구의 통합화에 걸맞도록 각각의 연구편제를 재조직했으면 한다. 이는 콘텐츠가 프로젝트 베이스로 주로 기획되고 제작, 유통되듯 연구자들도 복합적인 조직을 생성해 모이고 작업을 완수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자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창작과 비평을 스스로 겸하는 연구자(그룹, 조직)의 장려가 필요하다.
스토리텔링을 말하는 국문학자와 역사학자, 철학자와 소비자후생과 비즈니스모델을 말하는 경제학자와 경영학자, 콘텐츠 관련 기술을 직접적으로 파고드는 컴퓨터공학자 그리고 작가(창작자)들까지도 함께 연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풍토가 새롭게 요청된다. 이런 시스템의 변화만이 실사구시의 정신이 살아 있는 콘텐츠 연구의 새 경향을 연출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