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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평가 패러다임 바꿔야-연계성 고려한 지원체계 필요
지원,평가 패러다임 바꿔야-연계성 고려한 지원체계 필요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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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좌담 과학기술정책, 이대로 좋은가

지난 몇 해 동안 과학계의 성장은 눈부신 것이었다. ‘위기론’을 말하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계에서는 많은 양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중 몇몇 논문은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과학계에서는 위기를 논의하고, 문제점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 중에는 지금과 같은 연구 지원 정책에서는
과학 논문의 질적 성장을 담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책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과학계가 원하는 정책은 무엇인지,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그들의 속내를 털어놓는 자리를 마련했다.
과학계의 의견이 새로운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바란다.

■ 일시: 2003년 5월 9일
■ 장소: 교수신문사 회의실
■ 토론: 김종득 한국과학기술원 교수(화학공학과)
              송종국 과학기술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과)
              진종식 한국과학재단 기초연구단장(서강대 화학과)
■ 사회: 최영진 교수신문 주간(중앙대 정치외교학)

사회자 : 바쁜 시간에도 불구하고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과학계는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질적 성장을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현행의 과학기술정책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자리는 현행 과학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연구지원 정책이 공정하게 운영될 수 있는 방안,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한 의견까지 두루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술정책 전반에 대한 문제점과 현황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송종국 : 전반적으로 과학기술을 진흥하기 위해 투자에 힘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에 이르기까지 과학진흥에 관한 예산이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문제는 세부적인 프로그램 진행에 있습니다. 전문가를 육성하고 키워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대부분의 연구개발사업은 목적 지향적입니다.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이후의 연구들과 연결되지 않아 지속적인 연구를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성이 없습니다. 국가 연구개발사업에 보완돼야 할 것은 개인 연구자 중심의 지원사업입니다. 교수뿐만 아니라 연구를 전문적으로 하는 연구자들이 장기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9~10년간 장기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종득 : 일관된 정책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정부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중단하는 과정에서 헷갈리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상품을 만들라고 했다가 순수 연구 논문을 제출하라고 요구사항이 바뀝니다. 정책 입안자들이 뚜렷한 기준을 가지고 일관된 지원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이전에는 개인에게 지원하는 연구비가 많았는데, 지금은 그것이 다 없어지고 그룹연구만 남았다는 겁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소수의 연구자들은 지원 받기 어렵습니다. 많은 아이디어를 선발해서 적은 금액이라도 지원하고, 이중에서 추려서 더 많은 연구비를 지원하는, 단계적인 방식을제도화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의 실정에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절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오세정 : 동감입니다. 개별연구지원이 많이 없어진 동시에 신진연구자 지원사업도 부족합니다. 발전을 위해서는 창의적 연구의 저변을 넓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것을 할 수 있는 신진 연구자 지원 사업은 고작 2~3개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신진연구자 사업, 중진연구자 사업이 개별적으로 운영될 뿐, 신진연구로부터 중진연구로 이어질 수 있는 제도가 없다는 것 즉 지원프로그램 자체에 연계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응용연구 쪽으로만 지원이 몰리면서, 기초연구에까지 응용연구·그룹연구의 성과를 요구하는 경향도 바로잡아야 하구요.
진종식 : 과학재단은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창의적인 연구를 지원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또 과학기술부 장관도 이 사실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실질적인 행정에 들어가면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기획예산처의 승인을 받아야만 과학기술부의 예산이 집행되니, 과기부가 독자적으로 연구지원 사업을 벌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행정적인 교통정리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리고 변명 같지만 현재 1백억을 지원하는 젊은 과학자 지원사업 뿐만 아니라, 선도과학자 지원사업, 지역대학우수연구자 지원사업, 우수여성과학자 지원사업 등 개인 연구자를 지원하는 사업들이 있습니다.
김종득 :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연구자들의 의견을 모아 문제제기를 하고 이슈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지금 과학기술자문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해도 기존의 인적 자원으로 변화를 끌어낼 수 없다고 봅니다. 국가 운영을 논의할 때 과학에 대한 관심 없는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는 대안이 없습니다. 10년 후 우리가 어떤 기술로 국가 경제를 이끌어 나갈지 고민하는 대통령과 정부가 돼야 합니다.
오세정 : 현 정부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있다고 봅니다. 김대중 정부 때에도 대통령의 의지로 과학지원 예산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자신 있게 가치 있는 논문을 썼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외국 저널의 에디터와 말해보면 한국에서 나온 논문은 게재할 만하지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하더군요. 이제는 정말 가치 있는 논문을 써야하는데, 지금의 기초과학정책 가지고는 힘듭니다.
진종식 : 실제로 논문 수를 늘리기 위해 덜 익은 결과를 빨리빨리 생산하는 기술이 늘었습니다. 깊이 있는 연구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지금은 못 기다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3년을 지원한다고 해 놓고 1년마다 평가해서 연구비를 올리거나 삭감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재단도 시간을 두고 연구 성과를 기다리자는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논문의 질적 평가를 위해, 임용지수를 요구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 현행의 연구평가는 여전히 논문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양 중심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현 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또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세정 : 논문 평가에 있어서도 임팩트 팩터를 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인용지수를 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질적인 영향력을 의미하는 거니까요. 연구의 질을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연구비가 적더라도 3~4년 이상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연구 성과를 1년 안에 내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억압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학제간 연구를 지원할 수 없습니다. 물리학과 생물학을 접목시킨 분야만 하더라도, 정말 연구할 것이 많은데, 제대로 심사해 줄 수 있는 인력이 없어서 지원을 못 받거든요. 학제간 연구의 경우 평가가 좀 떨어지더라도 장기적으로 지원을 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합니다.
송종국 : 우리가 가진 결정적인 약점은 기획에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 연구기반부터 다지지만 우리는 그 중에 하나를 뽑아서 지원하거든요. 즉 미국에서 나노기술을 연구하면, 개발을 위해 기술개발예산법을 만들며 기반을 조성하지만 우리는 그 로드맵에서 괜찮아 보이는 것 하나만 뽑아서 예산확정하고 지원하는 겁니다. 단시간 내에 정책 기획에서 연구선정 및 발표까지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선진국에서는 2~3년의 시간을 두고 하는 일을 우리는 6개월~1년 정도에 해 버립니다. 그렇다 보니, 사업을 진행하면서 계속 방향이 바뀌고, 결국 원래의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경우도 많은 거죠.
김종득 : SCI를 기준으로 내세우는 것은 카이스트에서 출발해서 온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서로 다른 학문들을 일괄적인 양으로 평가하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연구 성과는 ‘종합평가’를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SCI는 그 중의 한가지 방법일 뿐이구요. 물론 지금은 평가 풀이 적기 때문에 종합평가를 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구자와 평가자가 토론을 해서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을 택한다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한꺼번에 날 잡아서 일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에 걸쳐 토론을 해서 상대방을 설득해서, 이기면 지원받는 겁니다.
송종국 : 과학기술계 내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투명성·객관성·공정성을 최고의 기준으로 내세우며, 얼마 안 되는 인력 풀에서 상피제(相避制)를 적용하다 보면, 결국 전문가들은 빠지고 엉뚱한 분야의 학자들이 와서 평가하는 것도 부지기수죠.
진종식 : 상피제는 과학재단이 앞장서서 만든 제도인데, 이를 학진과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이 벤치마킹해서 결국 거의 모든 평가기관이 이 제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다른 분의 말씀대로 이 제도로는 결과 평가의 질을 보장할 수 없게 됐습니다. 정작 전문가들은 참여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피제를 완화하는 방향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대신 본인이 직접, 연구자와의 관계가 특별하다면 미리 알려줘서 이를 평가에 반영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심사자가 평가의 불공정성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심사 기관이 그 책임을 문책 당하기 때문에, 재단을 비롯한 기관은 불공정성 시비를 피하기 위해 더 강화된 기준을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자 : 현재의 평가 시스템은 불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교수사회 내부에는 변화의 기미가 보입니다. 실제로 교수 임용 심사 때도 스스로 특별한 관계에 있는 지원자에 대해서는 평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교수도 있습니다. 제도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입장은 어떻습니까.
김종득 : ‘많은’ 학생들이 진학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과학기술계는 최상위층의 유능한 인력이 이끌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기술계에 꼭 와야할 유능한 인재들이 의과대로 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이것은 사회적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학생들도 사회를 보는 눈이 있는데, 이공계 출신 인력이 처한 사항을 보면 진학하지 않겠지요. 기업을 원하는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투자를 해야하고, 사회는 비젼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고 있는 겁니다.
오세정 : 이번에 저희 과의 우수한 신입생들이 서울대를 그만두고 해외의 명문대로 진학했습니다. 외국대학 선호 현상, 우수한 인재를 외국으로 유학시키는 제도들이 정말 한국 대학의 토양을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납니다. 이제는 국내 대학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교육과정이 바뀌어야 하는데, 우리는 모든 대학이 대동소이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과 기업이 연계해, 연구자를 키우는 과정과 특정 기술인을 키우는 과정을 세분화시켜 나가면, 취업란을 극복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종식 :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취직하지 못했습니다. 이공계의 위기는 오히려 인력이 너무 많아서 생긴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더 많은 학생을 유치하는 것이 대안은 아닙니다. 오히려 돈도 벌고 능력도 있는 학자들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과학기술인력의 성과 문제를 고민할 수도 있겠지요. 예를 들면, 연구비의 오버헤드를 연구자에게 인센티브로 지원하거나, 오버헤드를 대학재정에 보태고 대신에 강의 없이 연구에 몰 두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겠지요.
송종국 : 돈이 꼭 좋은 연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인센티브가 너무 많으면 문제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차라리 연구자의 전문성을 높이 사는 방법은 어떻겠습니까. 평소 연구업적을 인정받은 50대 개인연구자를 중심으로 정말 본인이 과학자로서 하고 싶었던 과제를 신청하게 하고 이것을 한 10년 정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그 예입니다. 일년에 1백 명씩만 지원해도, 창의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연구자들에게는 과학자로서의 자부심을, 외부에서는 중년 이후의 과학자의 삶의 모델을 제시하는 성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김종득 : 극소수에 해당하는 방안이기는 하지만, 국가가 과학기술인에 허락한 재산권이 있습니다. 바로 특허입니다. 현재 우리 제도 아래서는 특허기술을 낸 사람이 별다른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하지만, 미국의 경우 특허로 인한 수입의 20%를 평생 지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술력에 대한 성과를 보상하는 방법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자 : 전반적으로 과학이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같은 의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개인연구자를 지원하고 또 청소년들에게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다양한 지적도 나왔습니다. 전반적으로는 학자들을 믿고 기다리는 문화가 확립돼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요구인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진행·정리 :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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