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停頓期에 들어간 대학
停頓期에 들어간 대학
  • 전인수 / 홍익대·경
  • 승인 2003.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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쭥사교련 연속기고 쨝 : 위기극복에 동참 못하는 지식인



냉혹하게 교육시장 개방을 논의하고 싶다. 때가 좋지 않으니 좀더 시간을 갖자는 궁색한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 국가백년대계의 초석이 되는 교육은 공공재이니 사유재와 달리 취급해야 한다는 명분도 내세우고 싶지 않다. 문제의 근본을 직시할 때 해결책은 생긴다. 치마로 얼굴을 가린다고 떨어지는 폭탄이 피해가지 않는다. 치부만 드러낼 뿐이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시장은 매우 매력적이라 규제가 풀리면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게 돼 있었다. 한때 사업가들은 사회로부터 욕먹지 않고, 땅이 있고, 인허가 있는 사업을 최고로 꼽았다. 대학시장은 이러한 기준에 딱 들어맞아 로비를 통해 진입장벽을 낮췄고 그 결과 지금은 공급과잉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은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거나  성장이 기대에 못미치게 되면 정돈(shakeout)에 들어가게 되는데 지금 우리대학은 정돈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있게 될 교육시장개방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 생각이 옳은가.
교육시장 개방은 이미 시작됐다. 내로라 하는 지식인이 모여 있는 대학이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고 하면 소가 웃는다. 교육시장이라고 교육에 시장이란 수식어를 달 때부터 개방은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미 우리의 교육 소비자는 초등학교부터 외국교육을 받으려 모친의 손을 잡고 아버지를 떠나는 현실이니 개방은 97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개방을 국내에 외국 교육기관이 진출하는 것, 즉 내수시장(in-bound) 개방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개방 반대니 개방의 문제점이니 하며 야단이다. 지금 우리가 떨고 있는 이유는 그나마 외국에 가지 못하고 국내에 남아 있는 소비자까지 앗아가면 어떻게 하나 라는 피해의식이지 개방 그 자체가 아니다.  
좁게 생각해 내수시장 개방으로 보자. 그렇다면 강력한 경쟁자가 내수 교육시장에 진출할 것인가. 외국교육사업자의 눈에 매력적으로 보이면 내수시장 개방은 피해가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대학의 등록금 수준, 각종 규제 등을 고려할 때 강력한 경쟁자는 결코 진입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염려하는 것은 정부의 역차별이다. 수도권에, 그것도 등록금을 자율화하는 조건으로 외국대학을 정부가 유치하면 얘기는 다르다. 역차별은 있을 수도 없고 상상해서도 안된다.
아웃바운더(out-bound) 개방 또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교육소비자는 극히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국내에서 교육 받기보다 외국에서 받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가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비용과 편익을 계산해 외국행을 결정한다.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안고서도 유학을 가는 편익은 두 가지다. 취업기회가 더 많거나, 기회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에서 공부하면 한국과 미국 및 아시아 노동시장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고, 중국에서 공부하면 부상하는 중국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하지만 공급이 많아 희소성이 줄어들면 이러한 편익도 머지않아 없어질 것이다.
이처럼 교육시장개방은 새로울 것이 없고 문제점 또한 일시적이다. 따라서 대학문제의 본질은 교육소비자가 향후 10년간은 줄어들어 성장이 기대에 못미쳐 대학시장이 정돈에 들어가게 됐다는 점이다. 문제를 피해가기는 어렵다. 더구나 사립대학의 교수들은 좋든 싫든 대학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 고등교육의 70%이상을 담당하면서 교육시장이 이 지경으로 되는데 과연 사립대학 교수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했던가. 의사결정은 모두 교육사업가와 정부가 해놓고 그 고통은 온전히 교수들에게 지우는 어처구니를 우리는 보고 있다.  
  차제에 사립대학은 교수협의회 혹은 교수회에 권한을 주어 묘책을 강구하게 하라. 인수합병을 하든 임금을 삭감하든 가장 큰 고통을 겪는 교수들을 위기관리에 동참시켜라. 일용직노동자 취급하면서 해고하는 작태를 하지말라. 교육사업가도 정신 좀 차려라. 대학은 결코 욕먹지 않는 땅장사가 아니다. 졸업생, 재학생, 지역사회가 함께 하는 지식공동체다. 이 나라 교육정책 당국도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진입장벽을 낮춰 공급과잉현상을 유도한 장본인이 바로 정부다. 시장이라는 말만 붙이면 모든 논리가 서는 모양인데 적어도 시장의 논리로 대하지 말아야 할 영역도 있다. 오죽하면 시민단체가 가버넌스(governance)로 나서겠는가.

전인수 / 홍익대·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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