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빛 메밀이 탄생하기까지
핑크빛 메밀이 탄생하기까지
  • 우선희 충북대·식물자연환경화학부
  • 승인 2018.01.0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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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메밀은 타식성 작물의 대표적인 곡물이다. 필자의 메밀에 대한 애정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업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자연스레 생겨났다. 이러한 농사에 대한 호기심은 필자를 농학자로 성장시켰다. 메밀을 연구하게 된 동기는 박사과정에서 논문 주제를 고민하다가‘일본인들이 왜 메밀을 즐겨 먹을까’에서 메밀연구가 시작됐다. 식물이 자연(바람이나 곤충 등)에 의해 꽃이 피고 열매 맺는 데는 영양이나 수량에 있어서 한계가 있다. 필자는 메밀을 연구하면서, 미력하나마 육종연구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자가 돼 인류에 공헌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박사과정 논문 주제는‘메밀에 대한 이형예 현상(heterostylism, 꽃의 형태가 두 가지 이상이다. 암술이 수술보다 긴 것이 장주화, 짧으면 단주화)의 타파’였다. 하루 세끼중 한 끼는 메밀(そば)을 먹다시피 하는 일본인에게 메밀은 존칭어 오(お)까지 붙여서 오소바(おそば)라 할 정도로 격식이 있는 음식이다. 또한 메밀은 일본인에게 명절 전통음식이다. 한해가 저무는 마지막 날 밤 자정을 넘기면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덕담을 주고 받으며 메밀을 먹는다. 그러하니 일본 농업분야에서는 메밀에 관한 연구는 아주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메밀의 원산지인 중국 운남성에서 자생하는 야생종 유전자원을 이용해 연구에 몰두했다. 타식성 야생 메밀과 보통 메밀을 1만2천 번 교잡해 얻은 胚를 조직배양법을 이용해 잡종 10 개체를 얻었다. 여기에서 얻은 조직배양법으로 自殖性메밀 육성과 초유전자모델을 만들어 새로운 유전자를 명명하게 됐다. 이 연구는 세계 최초의 성과로 전 세계 많은 연구자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다윈이 저술한 종의 기원에서 장주화(pin type, ss)와 단주화(thrum type, Ss)의 발견이후 처음으로 동형화(homo type, ShSh)를 발견한 것이다.

연구성과가 나오기까지 필자는 오직 메밀과 동고동락하다시피 했다. 찬서리 내리는 새벽녘에 들어와 잠깐 눈을 붙였다 아침 일찍 연구실에 가면 연구실에서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많은 메밀 연구자들이 내게 메밀의 이형예현상을 타파하려면 밤낮 연구하더라도 10년 이상 더 걸린다고, 그렇지 않으면 전혀 불가능하니 다른 방향으로 바꿔보라고 했다. 필자는 남이 하지않는 것, 어려운 것을 해결하는 것이 연구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가족을 등지다시피 하며 연구에 매진했다. 매일 메밀과 함께한 결과, 아름다운 생명을 탄생시켰다.

‘메밀’하면 이효석의「메밀꽃 필 무렵」이 떠오른다. 소금을 뿌린 듯 하얀 메밀꽃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으나 필자가 탄생시킨 메밀은 볼그스레 달아오른 처녀의 볼 같은 연한 핑크빛이었다. 하얀 메밀꽃이 초대받지 못한 소박한 사람에게 장난스런 웃음을 흘려주는 꽃이라면, 핑크빛 메밀꽃은 그윽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만인에게 기쁨을 주는 세련된 꽃이다. 어디 그뿐인가. 메밀은 화형이 장주화와 단주화의 이형예현상으로 벌, 나비, 바람의 도움으로 자연생태계에서 겨우 10%의 결실에 지나지 않았다. 피나는 노력의 결실로 암술과 수술의 길이를 같게 해 이형예현상을 타파해 기존의 수량보다 몇 배나 높은 수량의 '자식성 메밀’이 세계 최초로 탄생하게 됐다. 그때 비로소 작물과 토양은 땀 흘린 만큼 결실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연구결과로 한국인 최초로 일본육종학회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 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에서 수여하는 제17회 과학기술우수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울러 세계식량학상 후보까지 올랐었다. 지고지순한 메밀에 대한 필자의 외사랑이 하나의 커다란 생명으로 탄생한 결과물이다.

어느덧 세계메밀학회와의 인연도 25여 년이 됐다. ‘메밀’연구 관련해서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메밀에 만큼은 세계란 단어에서 놓치고 싶지 않다. 요즘 우리나라도 메밀을 이용해 식품, 의학, 섬유업계 등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메밀은 연구재료로 무궁무진하게 활용할 수 있으며, 메밀 애호가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메밀연구’관한 정부지원은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아 아쉽다.

우리의 기후조건이나 토양의 질을 들어 국내 메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국가 경제발전에 일조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은 메밀로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우선희 충북대·식물자연환경화학부
일본 미야자키대에서 농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메밀을 벗겨라』가 있다. 세계메밀학회 회장, 아시아작물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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