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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된 기록,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페미니즘 선언
역사가 된 기록,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페미니즘 선언
  • 손희정 문화평론가
  • 승인 2017.12.2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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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_ 『백래시』 수잔 팔루디 지음 | 황성원 옮김 | arte | 803쪽 | 38.000원

“이 논쟁적인 베스트셀러는 ‘페미니스트의 새로운 선언’으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 베티 프리던의 『여성의 신비』에 비견한다.”
『백래시』에 대한 데보라 G . 펠더의 평가다. 팔루디는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 진행되는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려는’ 반동에 ‘백래시’라는 이름을 붙이고 분석의 대상으로 객관화함으로써 페미니즘을 둘러싼 오해와 거짓말을 분쇄할 수 있는 관점과 언어를 제공했다. ‘사회 진보와 변화 등에 대한 대중의 반발’을 뜻는 ‘백래시’야말로 페미니즘에 대한 강력한 반작용을 설명할 수 있는 정확한 표현이었던 셈이다.

‘백래시’가 의도하는 것, 선전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무엇보다 백래시는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부당한 것에 ‘NO’라고 말하는 여성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좌절의 회로에 머물게 한다는 점에서 악질적이다. 여성의 불행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면서 여성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백래시』는 그 불행의 원인을 지목하는 손가락의 방향을 페미니즘에서 반페미니즘적인 반동으로 ‘제대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선언’라 할 만하다. 팔루디의 다음 문장이야말로 이 책의 핵심이다.
“‘반격’은 우연하게도 1947년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에서 제목으로 쓰인 적이 있다. 자신이 저지른 누명을 아내에게 덮어씌운 남자의 이야기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반격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반격의 수식어들은 반격이 자행하는 모든 범죄들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린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란 대체 무엇인가? 백래시는 가부장제의 유구한 전통 속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억압과 어떻게 다른가? 팔루디는 여성의 ‘진보’를 위험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여성이 크게 활보하고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여성의 독립성에 대한 적개심’이 불러일으키는 여러 증상들, 무엇보다 이 증상들이 급성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백래시’라는 이름을 붙이며, 가부장제하의 여성 억압이라는 현상과 백래시를 구분한다. 그렇게 보면 백래시는 “기반암처럼 단단하게 자리 잡은 여성 혐오만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개선하려는 현대 여성들의 각별한 노력” 때문에 촉발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페미니즘 운동과 그 성과가 백래시의 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래시는 페미니즘의 무기력을 증명한다기보다는 페미니즘의 파워를 증명한다. 그리고 그 힘이 셀수록 반격은 더 촘촘하게 문화에 스며든다. 이 책은 “세련되면서도 진부하고, 얼핏 보기엔 ‘진보적’이지만 동시에 보란 듯이 후진” 반격에 대한 정밀한 추적이자 반박이다.

『백래시』의 백미는 팔루디가 반페미니스트 이데올로그들의 주장을 논파할 때 드러나는 깊은 냉소와 서늘한 유머 감각이다. “페미니스트는 재미를 깨는 프로불편러”라는 세간의 편견과 달리, 팔루디의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때때로 낄낄거리게 한다. 책을 읽다 보면 고도로 직조된 빈정거림이 아니라면 페미니즘을 둘러싼 현실을 포착하고 설명할 방법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백래시들은 그 자체로 일종의 거대한 ‘헛소동’이기 때문이다. 팔루디는 치밀한 조사와 취재, 왜곡된 통계에 대한 정정, 그리고 그에 기반을 둔 급진적인 비평을 통해 백래시가 부르는 화려한 오페라들이 날조된 프레임 안에서 쓰인 판타지임을 폭로한다.

‘페미니즘 vs 백래시’의 싸움에서 페미니즘은 주춤했다. 『백래시』가 베스트셀러에 등극할 정도로 주목을 끌고 다양한 비평과 연구의 영역에서 영향을 미쳤지만, 퇴행의 거센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백래시의 결과는 명백했다. 팔루디에 따르면 여성들의 임금은 여전히 남성들보다 낮았고 유리 천장은 견고해졌다. 성차별과 성희롱 신고는 늘었고, 동등한 기회는 줄었다. 1977년~1989년 사이에 일흔일곱 곳의 출산 조절 클리닉이 폭탄이나 방화 테러에 노출됐고, 낙태를 할 수 없는 지역은 늘어났다. 정치 영역에서 여성의 자리는 급격히 줄었으며, 여성을 위한 연방 차원의 정책 역시 줄었다.

하지만 페미니즘의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건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여성들의 삶이 절벽으로 내몰렸을 때, 여성들은 다시 또 페미니즘을 말하기 시작한다. ‘반격’에 대한 ‘반격’으로서의 페미니즘, 이것은 수전 팔루디의 작업이 미처 포착하지 못한 부분이다.

페미니즘에 필요한 기술: 한계 안에서 싸우고 반복 속에서 버티기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마치기 전에 수전 팔루디가 공적 영역과 사적영역의 선명한 이분법을 바탕으로 작업했으며, 그가 다루고 있는 백래시가 대체로 백인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해야겠다. 여성학자 페기 펠런(Peggy Phelan)은 『백래시』가 ‘강력하게 백인 중심적이고 이성애 중심적’이며, 흑인 여성은 그저 통계상의 수치로 사라져 버렸다고 지적한다. 페미니즘 제2의 물결에 큰 영향을 미친 베티 프리던의 『여성의 신비』만큼, 팔루디의 『백래시』 역시 백인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의 한계에 갇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는 우리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팔루디의 작업을 참고하고 또 전유하고자 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고 예민하게 성찰해야 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아직 충분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고, 그것이 팔루디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이 ‘출산 결정권에 대한 반격’을 다루고 있는 점은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다.

2000년대 후반, 사회 전반적인 우경화와 함께 성 보수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났던 가장 두드러지는 사건 중 하나는 죽은 법이나 다름없었던 낙태죄가 실효를 가진 법으로 재탄생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2010년대 초에는 프로라이프의사회가 임신중절 시술을 한 의사들을 고발하고 헌법재판소는 이에 발맞춰 낙태죄가 합헌임을 승인했다. 하지만 전 지구적인 페미니즘 리부트와 함께 낙태를 비범죄화 혹은 합법화하라는 ‘검은 시위’가 들불처럼 일었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성들은 절박함 속에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정부는 여전히 낙태죄 폐지가 시기상조라고 말하고 있다.

여성의 몸 위에서 억압과 착취의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이렇게 반복되는 역사와 벌이는 싸움은, 시대적, 계급적, 인종적인 한계를 안고 있을지라도, 그 한계에 갇혀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운동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 운동이 야기하는 인식의 전환은 다른 문제들을 사고하는 데 뚜렷한 족적을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팔루디가 멈춘 자리가 우리가 멈추는 자리는 아니기를 바란다.

* 이 글은 『백래시』 ‘한국어판 해제’의 일부로, 출판사의 동의하에 내용을 가져왔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다.  연세대에서 영문학과 한국사학을 공부했고,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페미니즘 리부트: 혐오의 시대를 뚫고 나온 목소리들』을 썼으며, 『그럼에도 페미니즘』 등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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