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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폐기장 유치운동
핵폐기장 유치운동
  • 이필렬 논설위원
  • 승인 2003.05.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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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전북의 어느 대학에서 핵폐기물 처분장과 양성자가속기 유치를 논의하기 위해 총학장단 회의를 열었다가 고창지역 주민들에게 곤욕을 치뤘다. 대학에서는 정읍에 들어서기로 예정된 방사선 연구소와 더불어 고창에 핵폐기장이 들어오고 이와 함께 양성자가속기까지 따라오면 대학발전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방사선 연구시설이나 양성자가속기가 생기면 대학의 연구자들이 연구에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기초과학은 물론이고 공학도 이들 기기의 혜택을 입을 수 있다. 그러니 대학발전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대학 총·학장의 처지에서는 이들 시설이 들어오는 것에 적극 찬성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핵폐기장이나 양성자가속기는 연구자들이 몸담고 있는 대학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이들 시설은 대학 실험실에 들어오는 작은 기기들과 달리 지역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방사능을 내뿜는 핵폐기물이 묻히거나 보관될 핵폐기장은 자칫 지역을 황폐화시킬 수 있고, 양성자가속기 또한 위험한 핵폐기물 처리에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고창지역 주민들이 대학에 몰려가서 항의를 한 것은 정당한 자기주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학도 신자유주의 시장질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 시대에, 대학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설을 유치하려는 보직자들의 몸부림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대학 구성원들이 우리사회의 지식인으로서 간직해야 할 것은 있다. 특히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을 학문활동의 바탕으로 삼아야 하는 기초학문 연구자들은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버리지 말아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인류 전체의 삶을 위협하는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대학 교수들이 이를 등한시한다면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포기하는 셈이다. 이점에서 전북지역 대학에서 핵폐기장 유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그 지역 교수들로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전북의 대학에서는 대학발전만을 생각하고 핵폐기물 처분장과 양성자가속기 유치를 찬성하고 있다.

이에 비해 고창 주민들은 단순히 핵폐기장을 반대하는 것보다 더 멀리 나아가서 우리 사회의 에너지 생산과 소비문제까지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위험한 핵폐기장만 들어오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핵폐기물을 내놓지도 않고 환경도 파괴하지 않는 에너지 개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이 대학보다 더 깊이 성찰하고 있는 셈이다. 대학 교수들도 이 문제를 놓고 좀더 넓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필렬 / 논설위원·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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