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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희망, 한일교류 물꼬를 트다
시인의 희망, 한일교류 물꼬를 트다
  • 교수신문
  • 승인 2017.12.2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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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은(문병란)문학제에서 ‘한일공동 출판기념회’ 성료
히로오카 모리호 일본 주오대 교수
히로오카 모리호 일본 주오대 교수  사진=서은문학연구소

 

“얼음장 밑에서도/고기는 헤엄을 치고/눈보라 속에서도/매화는 꽃망울을 튼다//절망 속에서도/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보리는 뿌리를 뻗고/마늘은 빙점에서도/그 매운 맛 향기를 지닌다//절망은 희망의 어머니/고통은 행복의 스승/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문병란 시인 「희망가」 中)

문병란 시인의 작품 「희망가」다. 이 시는 1997년 시민들이 IMF 경제파탄에 직면해 불안과 실의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때, 시인이 많은 사람들에게 역경을 헤치고 다시 일어서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용기와 희망을 안겨준 시다. 이 시는 한일공동 작업의 시초였다. 2014년 가을 히로오카 모리호 주오대 교수가 이 시에 대해 필자에게 공감을 표해 공동 작업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본에서 번역본 문병란 『직녀에게· 1980년 5월 광주』와 국내에서 편저(일월서각 刊)가 동시기에 출간됐던 것이다.

일본 후바이샤(風媒社)에서 출간한 문병란 시집 『직녀에게·1980년 5월 광주』와 동제목의 ‘문병란 한·일 동시 출간기념 선집’ 국내 편저 출간을 기념한 한일공동 출판기념회가 지난 16일 윤장현 광주 시장을 비롯한 문인들, 광주시민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광주시 동구청 지하 대강당에서 열렸다. 윤시장은 “문병란 시인은 시대의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했던 고뇌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를 통해 투쟁하고 문학의 힘을 신뢰했다”, “시인이 남긴 문학적 가치가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광주의 유산으로 남기겠다”고 밝혔다.

문병란 문학 한일공동 작업은 지난 2013년 9월 남부대·전남과학대의 히로오카 교수 초청 세미나가 출발점이었다. 히로오카 교수는 세미나에서 ‘청소년 교류 필요성 역설’을 했고 그 이듬해 가을 주오대 법학부 학생 12명을 인솔해 광주를 다시 방문했으며, 남부대·전남과학대 학생들과 교류하며 역사·문화 탐방을 펼쳤었다. 그리고 국립 5·18민주묘지 추모관에서 5·18민중항쟁에 대한 강연(안종철 전 5·18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추진단장)을 듣고 근로정신대 양금덕 할머니의 증언을 듣는 등 광주의 현실을 체험했다. 그들이 5·18 현장을 둘러보고 귀국한 뒤, 광주 정신의 상징인 문병란 시인을 소개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던 필자가 「희망가」를 번역해 히로오카 교수에게 보냈고, 이에 히로오카 교수가 적극적으로 호응, 문병란 시인을 일본에 알리기 위한 공동 작업은 본격화됐던 것이다.

한일공동 출판기념회에서 히로오카 교수는 회고사를 통해 문병란 시인을 일본에 소개한 소회를 토로했다. 이곳에 회고사 전문을 연재한다. 

히로오카 모리호 일본 주오대 교수와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사진제공=서은문학연구소
히로오카 모리호 일본 주오대 교수와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사진제공=서은문학연구소

 

회고사
                                               

히로오카 모리호 주오대 교수
 
광주시민 여러분, 문병란의 시를 사랑하는 여러분, 문병란을 경애하는 여러분. 저는 히로오카 모리호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자리에서 말씀드릴 기회를 주신 점, 과분할 정도로 영광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선 여러분께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지난 10월 12일에 문병란시집 번역서를 일본에서 간행했습니다. 출판사는 풍매사입니다. 이 책은 저와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가 협조해 공동번역으로 출판했습니다. 우리들의 노력이 열매를 맺었기에 이 사실을 여러분께 알립니다.

그리고 6일 후인 10월 18일에 주오대에서 시를 테마로 심포지엄을 개최했습니다. 당시 김준태 시인께서 기조강연을 해주셨습니다. 훌륭한 강연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문병란의 장남 문찬기 님, 제자인 백명수 님, 그리고 서은문학연구소에서 12분이 참가해주셨습니다. 또한 홍영숙 님께서 「직녀에게」를, 강숙자 님께서 「희망가」를 낭독해주셨습니다. 

600명 정도 심포지엄에 오셨는데 대부분이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마음에 아름다운 시의 향기가 스며들었습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멀리에서 일부러 찾아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포지엄에서는 문병란 문학에 대해 보고를 해주었습니다.

문병란 시집 번역도 심포지엄도 저와 김 교수와의 협동 작업이었습니다. 여러모로 힘든 경우도 있었고 의견이 맞지 않아 논쟁한 적도 있었습니다. 상대방 나라의 관습을 알지 못해 오해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고 1년 이상의 시일을 보내면서 출판과 심포지엄 개최에 공을 들였습니다. 저는 이거야말로 진정한 한일교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광주는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장입니다. 불의에 대한 증오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용기 있는 사람들의 고장입니다. 무등산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고장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의 땅에서 싹이 움텄고 광주의 땅에서 성장했으며 광주의 땅에서 꽃을 피웠다고 생각합니다. 바다 너머 일본인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었고, 대륙에 전해져서 아시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는 필리핀이 민주화를 이루었고, 조금 지나서 인도네시아와 대만이 또한 민주화를 이루어냈습니다. 광주는 1980년대 이후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에 있어서 민주주의 원점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저는 아시인의 한사람으로서 광주 시민들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는 읽는 이에게 감동을 안겨줍니다. 그것은 시인의 언어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람을 행동에 나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시에는 그 정도의 힘은 없습니다. 시인의 언어가 사람의 행동을 부추기는 경우는 그 언어가 용기의 힘으로 발신될 때입니다.

일본에는 마루야마 가오루(丸山薰)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마루야마 가오루는 미일전쟁 때 「조선」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이 시는 식민지 지배를 받던 조선인들을 여성으로 비교한 작품으로 그 점에서 문병란의 「직녀에게」와 닮아 있습니다. 여성이 차별받던 시대에는 학대받는 사람들, 지배받는 사람들, 약자 등이 때때로 안타깝게도 여성에 비유됩니다. 이 시를 발표하려고 했을 때 친구들은 위험하니까 그만두라고 충고했습니다. 하지만 마루야마 가오루는 그것을 물리치고 이 시를 발표했습니다.

한국에서 문병란은 시인으로서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훌륭한 용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문병란의 용기는 한국 사람들은 물론, 우리 일본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아시아인들에게도, 아니 세계인들에게도 귀감이 될 것입니다. 저는 미력하지만 문병란이 표현한 용기를 일본인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된 점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김정훈 전남과학대·일본근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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