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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저작자
인공지능과 저작자
  •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
  • 승인 2017.12.2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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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소설 『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댄 브라운이 신작 『오리진』을 내면서 미국에서만 200만 부를 찍었다는 소식이다. 한국어판도 지난달 출시돼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걸 보니 인기가 여전한 모양이다. 그는 이 소설을?탈고하는데 4년이 걸렸고, 그중 절반을 자료조사에 썼다고 한다. 그는 이 작품에서 창조론을 폐기하고 전지전능한 신으로 인공지능(AI)을 새롭게 옹립한다.

얼마 전, 모 문예지 특집을 위해 ‘인공지능 시대에 작가로서 살아가기’라는 주제로 아동문학가 5명이 좌담회를 열었다. 이슈는 크게 세 가지 정도였다.

하나는, AI가 똑똑해지지 못하도록 현역 작가의 저작물을 학습데이터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는데, 바로 반론에 부딪쳤다. 만일 그렇게 되면 톨스토이 같은 저작권이 풀린 작가들의 작품으로 AI가 창작기법을 익힐 것이고, 이런 AI에 오늘날 사회문제에 대한 빅데이터를 연결해 주면 톨스토이가 현대에 환생해서 소설을 쓰게 되는 것이므로, 현역 작가들은 역대급 대가들과 경쟁하는 구도가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AI가 쓴 작품을 정식 문학작품으로 인정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비록 그 작품이 독자의 사랑을 받아 베스트셀러가 되더라도, 인간의 감정이나 사상에 대해 사람이 쓴 것에만 저작권을 부여하는 현행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그래봤자 이 또한 조만간 썩게 될 동아줄이라는 반론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AI는 공자와 같은 聖人 반열이기 때문에 경계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있었다. AI는 본질적으로 ‘따라하기’라는 것이다. 이미 있는 데이터를 가지고 학습을 해서 그에 대해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절사’수준이라는 것. 자절사란 “공자께서는 네 가지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았고, 틀림없이 그렇다고 단언하지 않았고, 고집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아집을 부리는 일이 없었다(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는 뜻이다. AI가 인터넷에 연결되는 순간 다수의견을 채택하는 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사악한’ AI는 등장할 수 없고 범생이 AI만 존재하게 되며, 시키는 것, 질문하는 것에만 반응을 한다는 논리다.

이 좌담은, AI를 자료조사나 분석 같은 일을 맡기는 조수로서 적극 활용하고, 범생이인 AI가 흉내를 못 내도록 ‘삐딱하게’ 접근해야 하며(버그가 돼야 하며), 사유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작품,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결론을 어렵사리 도출했다.

MIT 물리학과 교수이자 다중우주론 분야 권위자인 맥스 테그마크가 쓴 『맥스 테그마크의 Life 3.0』(동아시아, 2017)를 보면, 앞서의 좌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약간은 허망해진다. 저자는 이 책의 서두에서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의 범용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을 등장시켜 이것이 바꾸게 될 우리의 미래를 한 편의 영화처럼 보여준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긴 하지만, 종착지는 보편적 인류가 꿈꿔온 유토피아다.

‘라이프 3.0’이란 개념은 소프트웨어는 물론 하드웨어도 설계할 수 있는 생명 형태다. 라이프 3.0 생명은 소프트웨어를 설계한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요즘에는 인간도 하드웨어의 일부를 설계할 수 있다. 치아를 임플란트로 바꾸거나 심장박동기를 삽입하는 식으로 하드웨어의 일부를 설계해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키를 10배로 늘리거나 뇌 용량을 1천배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이프 3.0은 이런 것까지 가능한, 일종의 궁극적인 생명 형태다. 맥스 테그마크는 미래의 AI가 라이프 3.0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말하자면 인간이 상상하는 것, AI 스스로가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는 형태가 된다는 말이다.

이쯤에서 작가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 예를 들어, 독자(소비자, 평가자)가 문제라면 AI는 빅데이터를 이용해 목표독자군의 삶의 패턴이나 목표를 분석한 자료와, 그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소구하는 방법을 모니터에 보여 줄 것이다. 그것도 댄 브라운처럼 2년씩 걸리지 않고 단 하루만에. 그러면 작가는 그 중 하나를 선택하여 AI에게 초고를 써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원고는 작가의 단독저작물인가, AI와의 공동저작물인가? 이러한 고민은 Ctrl+C, Ctrl+V에 이미 익숙해진, 연구논문이나 학술서적 저작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의 문제다. 그러나 라이프 3.0 시대에는 이러한 고민조차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AI는 성인의 반열이기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온 AI가 이왕이면 인류에게 이롭게 발전하도록, ‘사악하게’ 쓰(이)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악한 주장들이 난무했던 한해를 보내는 연말이어서 그런지 ‘자절사’의 의미 또한 새롭게 다가온다.

김정규 시인
김정규 시인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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