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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感’을 연구하며
광고를, ‘感’을 연구하며
  • 김운한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 승인 2017.12.26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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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필자는 현업에서 십여 년 광고 아이디어 내는 일을 하다 대학으로 옮겨 광고 논문을 내며 살고 있다. 아이디어 내는 일도 학문 연구처럼 머리를 쓰는 일이다. 개인적으로야 ‘창의’이나 ‘창작’이라 말하기 좀 낯간지럽지만, 그래도 필자와 같은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그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창의란 사실을 찾고 따지고 사람의 속마음을 파헤치고 고민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땅’에서 툭 발견되는 거라 믿기에 열심히 땅을 뒤진다. 예술, 인문, 사회, 수학, 물리, 화학, 의학 등 세상의 지식과 자료라는 땅이다. 물론 대부분은 알아둬도 쓸모없는 잡학의 땅이다.

광고 실무 출신이 연구자로 바뀌면서 갈등을 많이 느낀다. 이론과 실제, 주제의 보편성과 특수성, 양적 방법과 질적 방법 사이에 고민이 많다. 우선 이론과 실제 사이. 이론은 과학과 추상을 말하지만 실제는 감과 추상을 말할 때가 많다. 필자는 창작을 했지 학문을 하지는 않았다. 창작을 연구라 부르진 않는다. 과학성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과학 그 이상의 뭔가 다른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이 논리와 객관성을 전제로 한다면, 창작은 논리라는 게 필요하지만 그 논리를 뛰어넘는 ‘感’이 추가돼야 한다. 감 또는 감각을 중시하는(강조하지만 ‘감’만으로 광고가 된다는 건 아니다), 연구 비슷하지만 상당히 다른 일을 해왔더니 연구 주제 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논문통과라는 현실(?)을 생각해야지. 심리학자 레빈은 이론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실제적인 것이라 한다.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도 있지만 언제까지 감을 좇을 수는 없다. 문제 그 이상의 시각으로 접근할 때 보이지 않던 문제의 면면이 보이고 해결책도 보일 수 있다. 문제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깊이 보려면 이론이란 눈이 필요하다. 이런 생각에 이론과 실제 사이에서 이론 손을 들어주기로 한다.

둘째는 주제의 보편성과 특수성. 연구란 스스로 좋아서 할 수도 있지만 논문은 전문가의 심사를 받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 보편적인 주제는 선행연구가 많아 시작하기 쉽다. 심사자들이 이해하기도 쉽겠지만 그만큼 비판도 거세다. 아직까지는 특수한 주제에 더 관심이 간다. 거시와 미시 사이에서도 주로 미시적 시각으로 연구해온 것 같다.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로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박사논문 지도받을 때가 생각난다. 끌어들인 이론과 현상 간 거리가 멀면 ‘선행연구가 없다’ 하고, 너무 가까우면 (이미 연구가 돼있으니) “의미가 없다” 했다. 결론은, 통과가 되는 쪽으로 쓰는 것이다. 학위 이후 소논문 쓸 때도 자꾸 ‘생산성 좋은’ 주제를 찾게 됐다. 그야말로 통과를 위한 기능적 글쓰기가 시작된 것이다. ‘매력적이고 친근감 있는 모델(광고 캐릭터)을 쓰면 그 광고를 더 좋아한다’, ‘실재감이 느껴지는 광고가 효과적이다’, ‘개인화된 메시지가 있는 광고에 더 호감을 느낀다’ 등… 돌아보니 뻔한 논리를 재확인하는, 하나마나한 논문들을 많이 썼다.

그나마 좀 새로운 아이디어를 담은 연구들이, 억지춘향 격이지만, 덜 부끄럽기는 하다. 코울리지의 시적 개념과 캐릭터 효과를 접목한 논문, 심리학의 장이론과 매체맥락을 연결한 논문, 비학술적인 ‘세렌디피티’ 개념을 옥외광고 효과에 접목한 논문, 개념적 타당도 확보에 시비를 걸 수 있는 인게이지먼트(engagement)와 크리에이티브를 접목한 논문 등 혼자 생각하고 혼자 쓴 논문들이 그렇다. 연관성이 별로 없는 현상들도 쪼개보면 관계있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연관성 있는 현상들도 따져보니 관계없음으로 판명나기도 했다. 

결과를 떠나 필자는 ‘크리에이티브’를 했던 사람인 것이 자랑스럽다. 깜냥도 되지 않을 ‘감’ 같은 것을 연구해 논문을 쓰고, 지극히 ‘좁은’ 내용을 비과학적인 방식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아무도 관심 주지 않는 ‘인용 제로’ 논문이면 또 어떤가. 궁금했던 ‘관계’를 파헤쳐보는 과정의 즐거움이 있는데. 혹자가 “광고 창작 경험이 논문 작업에 도움이 되는가?” 물으면 서슴없이 대답할 것이다. “물론이죠!”라고. 광고 크리에이티브 일을 하며, 일반인들보다 열심히 한 것이 있다면 아마 연상 훈련일 것이다. 서로 다른 사물들을 의미가 통하도록 갖다 붙여 보는 습관이 연구에 도움이 많이 된다.

셋째는 방법론에 관한 고민이다. 융합이라는 가치가 대세인 시대, 연구도 융합의 흐름을 타고 있다. 실용학문인 광고학이야 더욱 그 흐름을 피할 수 없다. 이미 해외 유수의 저널들이 광고, 커뮤니케이션, 심리, 마케팅 등 학문 간 융복합적 연구 성과물들을 발표하고 있다. 광고학 관련 연구들이 심리학, 커뮤니케이션학, 마케팅과 같은 ‘모(母) 학문’의 이론과 방법론을 빌려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광고 산업 변화에 따라 융복합적 학문과 연구에 대한 요구가 증대된 점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이에 따라 연구 내용도, 연구 접근 방식이나 세부적인 연구방법도 더 다양해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한편으로 반작용처럼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양이 아니라 질, 넓이가 아니라 깊이에 집중해야지.’ 어쩌다 학자로 전향한 사람에게, 광고 연구란 줄타기이다. 이론과 실제 사이, 보편과 특수사이, 연구방법 사이 갈등의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김운한 선문대·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연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광고홍보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브랜디드 콘텐츠』 등이 있다. 한국광고홍보학회 학술지 <광고연구> 편집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한국OOH광고학회 학술대회 톱페이퍼상, ICCT 국제학술대회 톱페이퍼상, 한국광고PR실학회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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